사실 극장 내 에티켓에 대해서는 이미 다들 아실테고, 수도 없이 반복되긴 했지만 마치 불법다운로드는 범죄라고 여기저기서 얘기해도 사그라들기는 커녕 오히려 불법이 더 조장되는 것처럼, 극장 내 에티켓 역시 알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영역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영화 팬들은 불편을 무릎쓰고라도 비교적 테러를 당할 확률이 낮은 조조 상영을(제 주변 분들 가운데는 가격 때문이 아니라 이 같은 이유로 조조를 관람하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찾는다던가 분위기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전용관을 찾는 것으로 우회하여 영화를 즐기게 되었던 것 같네요. 저는 워낙에 누구랑 시비걸고 싶어하지 않고 가능하면 참아보자라는 주의이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그냥 참고 넘어가는 부류에 속하지만(그리고 위 같은 방법들도 자주 사용하구요), 어제는 오랜 만에 제대로 테러를(전 우리말 속에 숨어있는 전쟁 관련 단어들 사용을 정말 싫어하는 편인데, 이건 정말 테러라 아니 부를 수 없네요) 당했더니 도저히 어디든지 글로라도 풀지 않으면 병 날 것 같아서, 그냥 넋두리 해봅니다. 어제 제 옆에 앉았던 여성분들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에요. 듣고 고칠 사람들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말했겠죠 -_-;;


1. 일단 어제 본 영화는 박찬옥 감독의 <파주>였습니다. 영화는 참 좋았습니다. <질투는 나의 힘>보다 제 취향은 이쪽에 더 가깝더군요. 자세한 리뷰는 곧 포스팅 할 예정이구요.

2. <파주>는 분명 그리 친절한 영화는 아닙니다. 스토리의 진행 방식도 그렇고 그 안에 숨쉬는 캐릭터들의 이야기도 그렇구요.

3. 그런데 마치 홍보는 형부와 처제의 불륜을 다룬 '격정 멜로' 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이 설명 가운데는 맞는 말이 많지만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그 '의미'는 아니거든요. 하지만 저 홍보방법이 낚았든지, 아니면 이선균, 서우라는 배우들이 낚은 것인지, 아니면 영등포 CGV라는 극장 자체가 낚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별로 본 적이 없는 분들이) 어제 극장에는 대부분이었습니다.

4. 영화 시작시간으로 알려진 정시보다 거의 10분 넘게 광고를 했음에도 5분 정도 늦게 들어오신 여자 두 분이 제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이미 앉으면서부터 걸걸한 입에서는 X가 포함되지 않은 말이 없을 정도로 술술 말들이 흘러 나옵니다. 얼핏 봐서는 이제 막 20살에 접어드신 분들 같았는데...왜 있잖아요, 욕을 하려는게 아니더라도 그냥 모든 말에 'X나'가 붙은 분들. 그런 분들이었습니다.

5. 앉자마자 영화의 모든 상황을 입밖으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극중 이선균의 상대역 여자배우가 조금 이상한 행동을 하자 '미친x 왜 저래?' '헐' '재수없어' 등 극중 이선균 캐릭터에 순식간에 동화되었는지 영화 속에 주인공이 된냥 여자역에게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6.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어려운 영화를 이해할 수 없으면 극장에 오지 마라 라는게 아니에요. 영화야 다 개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정답이 없는 예술이니 감독조차도 이것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죠. 다만 그 태도를 문제 삼는 것입니다. 재미 없고 이해안될 수 있죠. 왜 그걸 재미있는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어가면서 불만을 겉으로 표시해야만 성에 차느냐 말입니다. 그렇게 꼭 '뭐야 이거, 스토리 완전 x같잖아' 라고 몇번씩 말씀해주셔야 하는지 말입니다. 영화가 끝나고나서 나가는 길에 같이 본 분과 '이선균 엉덩이 말곤 볼게 없네'라고 영화를 폄하해 주셔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하다보니 말투가 무슨 '여성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말투네요 -_-;;).

7. 두 분은 그렇게 계속 서로 간의 대화와 극중 인물과의 대화를 번갈아 나누시는 와중에도 한 손으론 열심히 핸드폰 문자를 주고 받으시더군요. 무슨 재미있는 문자가 왔는지 서로에게 보여주고 웃기도 합니다.

8.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제 옆자리에 앉은 분의 생각이 제게 들리는 초능력이 생긴 것 같았어요. 분명 속마음으로나 할 얘기들인데 제 귀에 다 들리더라구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런 초능력이 등장했던 영화들처럼 이 능력은 정말 없는게 훨 낫네요.

9. 사실 이 두 분만으로도 벅찬데, 이곳 저곳에서 여러 분들이 '나도 좀 주목해 달라'며 여기저기서 활약을 해주십니다. 어떤 아저씨는 중요한 업무를 통화로 해결하셨구요.

10. 좀 이해가 안갔던게 용산참사가 없었다면 모르지만, 근래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도 철거민들이 용역깡패들과 대치하면서 싸우는 장면 중에 용역이 고무줄 새총으로 돌을 쏘아대는 장면에서 몇몇 분들이 웃음을 터트리시 더라구요. 어디가 우스운 건지. 돌이 우습게 생겼던가요? 철거민이 몸개그라도 한걸 제가 놓친걸까요? (물론 이 와중에도 제 옆자리 분들은 '왜 그래?' '짜증나'를 연발하고 계십니다)

11. 영화가 끝나자 역시나 '뭐야 이거 스토리 x같잖아' '에이 xx, 집에가서 네이버 줄거리 봐야겠네'라고 하시며 커다란 팝콘통은 어지럽게 바닥에 둔채 그냥 쿨하게 자리를 떠나십니다. 저는 원래 어떤 영화든 엔딩 크래딧이 모두 끝날 때까지 관람하는데(보너스 장면이 있고 없고는 전혀 상관없이요), 어제는 몇몇 분들이 나가시면서 저를 힐끔힐끔 쳐다보시더군요. 아마도 '왜 끝났는데 계속 앉아있지?' 였던거 같아요. 이상했겠죠. 이 장면에선 왠지 잘못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12. 자, 제발 영화를 보면서 속마음 좀 겉으로 말하지 맙시다. 속마음은 그냥 속으로만 담아두세요. 그리고 입에 욕을 붙이고 사는 분들은 욕하는 것이 챙피한 줄 좀 알았으면 좋겠구요(그걸 알면 미안해라도 했겠지만..에휴). 그리고 재미없으면 차라리 중간에 나가주세요. 왜 비싼 돈 주고 재미도 없고 불편한 영화를 욕을 해가며 앉아있는지 모르겠네요. 진짜 돈주고 내보내고 싶은 심정이더군요.

13. 어제의 마지막 분위기는 어땠냐면, 다들 '이 영화 뭐야, 완전 최악이잖아' (여기서 최악은 저만의 순화된 표현입니다) 하는 중간에 저만 혼자, '야, 이거 멋진데'하는 분위기였어요. 영화가 누군가에게는 최고일 수도 있고, 또 최악일 수도 있죠. 이걸 굳이 말해야 되는 이유도 모르겠지만, 공공장소라는 것에 의미를 한 번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나 외에 다른 사람도 있다는 사실말이죠.

14. 이거 넋두리를 하다보니 리뷰 쓸 때보다 글이 술술 써지는군요. 빛의 속도로 써내려오다보니 어느덧 14번. 확실히 요즘은 안전지대가 없는 것 같아요. 예술영화 전용관도 더이상 100%를 장담할 수 없구요. 여튼 영화 팬으로서 살아가기 점점 힘들어집니다. 좀 있으면 불법다운로드가 '공식적으로' 문제 없는 일이 될 것도 같고, 엔딩 크래딧 다보고 앉아있으면 바보 소리 들어도 싼 날들이 올 것만 같고, 극장 간다고 하면 '왜 불편하게 극장엘 가?'하는 날이 그리 머지 않은 때에 올 것만 같아 피곤함이 느껴집니다.

15. 그냥 넋두리 들어주신 분들 감사드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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