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k High - Epilogue
아날로그의 따스함

1. 서랍
2. Run
3. 바보 featuring Bumkey
4. Wordkill
5. Blossom
6. 비늘 featuring Yankie
7. 잡음
8. Coffee featuring 성아
9. Over
10. 숲



에픽하이가 지금과 같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전, 그들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곡은 '평화의 날'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에픽하이가 지금과도 같은 범대중적인 힙합 그룹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어쨋든 '평화의 날' 이후 계속 주의 깊게 들어보았던 에픽하이의 음악은 언더스러움과 대중적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자신들만의 브랜드 입지를 점차 넓혀나갔다. 한참 그들이 음악프로에 나오던 시절의 대중적인 음악들은 사실 개인적으로는 실망스러운 점이 많았었다. 음악이 대중적이어서 실망스러웠던 것이 아니라, 에픽하이에게 기대하던 바는 그 이상이었기 때문에 '힙합'이라기 보다는 '가요'에 가까운 대중적인 곡들을 들고 나왔을 때는 아쉬움이 컸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앨범 'Epilogue'는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에픽하이의 지난 앨범들을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드는 앨범이라 부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힙합 음악을 듣는 취향이 그리 대중적인 편은 아니라서 이번 앨범이 얼마나 대중적으로 성공할런지는 모르겠지만, 음악적 완성도나 퀄리티 역시 '앨범'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느껴진다.

이번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Nujabes'를 떠올리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프로듀서 중 한명인 'Nujabes'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더 크다 하겠다. 'Nujabes'의 비트를 연상시키는 에픽하이의 비트는 심플하지만 감성적이고 아날로그하면서 무척이나 감성적이다. 타블로와 미쓰라의 플로우도 비트위에 과하지 않게 드리워져 있다.

앨범의 인트로라고 할 수 있는 '서랍'으로 앨범의 전체 분위기를 엿보기는 사실 쉽지 않다.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이 반복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다음에 어떻게 전개될지 정확한 방향성은 보여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인 'Run'은 전형적인 에픽하이 스타일의 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에픽하이의 곡들 가운데는 유난히 이렇게 '달리는 리듬'의 곡들이 많은데, 적어도 이런 '달리는 리듬'의 곡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이다. 특히 후렴구 바로 직전에 삽입된 마디의 느낌이 매우 신선했다. 일반적인 전개에서 살짝 벗어나면서 곡에 전체적인 긴장감을 주고 있다. 피처링으로 참여한 Bumkey의 보컬이 간드러지는 곡 '바보' 같은 곡은, 전체적인 앨범 구성에서 그저 구색에 머물러 버릴 수도 있는 곡이었음에도 적절한 피처링의 멜로디 부분이 곡을 살리고 있다(그렇다고 다른 부분이 미흡하다는건 아니다).

앨범을 딱 한 번 들었을 때 가장 뇌리에 남는 곡은 '
Wordkill'이었다. 마치 기타 연주에서 커팅효과를 주듯, 끊어지는 리듬과 그 사이에 위치한 묘한 효과음 만으로도 이 곡의 세련됨이 전해진다. 후렴구에서 다른 verse로 넘어갈 때의 샘플링도 참 좋다. 'Blossom'은 'Nujabes'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아마도 다 그렇게 느끼겠지만 가장 'Nujabes' 스러운 인스트루멘탈 곡이다. 이 정도면 'Nujabes'의 앨범 중 한 트랙이라고 해도 믿겠다(표절이라는 것이 아니다). 타블로가 'Nujabes' 팬임이 분명하다;

수록곡들 가운데 가장 임팩트 있는 랩플로우를 만나볼 수 있는 '
비늘'과 Kanye를 연상시키는 백그라운드 사운드와 곡 구성이 엿보이는 '잡음'을 지나, 피처링 보컬의 우리말 가사가 왠지 모르게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Coffee'가 이어진다. 'Coffee' 같은 곡이 국내 대중음악에 힙합음악을 좀 더 깊이 뿌리내리도록 만드는 매개체가 되는 곡이 아닐까 싶다. 대중적인 요소를 여럿 갖췄지만 너무 뻔하지만은 않고, 블랙뮤직 본연의 느낌을 대중적인 코드 속에서 잘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적절한 정도의 곡이 아닐까 싶다. '성아'가 피처링한 멜로디의 가사는 왠일인지 정말 쏙쏙 들어온다. 다시 들어도 참 쏙쏙 들어온다.

'Over'는 앨범이 마지막으로 달리며 다시
'Nujabes' 풍의 감성을 전한다. 이런 감성은 흉내내기는 쉬워도 (사실 쉽지는 않다) 제대로 우려내기는 쉽지 않은데, 에픽하이의 이번 앨범은 이런 감성을 담담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이것이 이번 앨범이 마음에 드는 가장 큰 이유다. 인스트루멘탈 곡 '숲'을 끝으로 앨범 'Epilogue'는 마무리 된다. 사실 요즘 앨범들은 '앨범'의 구성 면에서 보자면 아쉬운 경우가 많은데, 에픽하이의 'Epilogue'는 마치 한 권은 작은 책을 읽고 덮어두게 되는 듯한 구성을 느낄 수 있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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