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 2010 Tour '그대랑'
이적과 함께한 15년의 시간


칼 바람이 불던 지난 일요일, '패닉'이자 '카니발'이자 '긱스'이자 '이적'인 솔로 이적의 2010 Tour '그대랑' 공연을 보러 갔었다. 예전 소극장 공연이나 그 보고 싶었던 '카니발' 공연을 못 가봤던 것을 되새기며 이번에는 꼭 공연장에서 진짜 이적을 만나보자 라는 생각에 결코 쉽지 만은 않았던 예매전쟁을 거쳐 연대 대강당 2층 앞좌석을 예매할 수 있었다. 사실 공연을 예매하게 된 것은 이번 새 앨범에서 먼저 공개되었던 '빨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동적인 감정 때문이었다. 뭐, 이적의 신곡을 처음 듣게 되었을 때는 거의 다 그랬던 것 같은데, '빨래'를 처음 들었을 때도 '아,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라이브로 이 곡을 비롯한 이적의 곡들을 들어야만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어느덧 내 손에는 공연 티켓이 쥐어져 있었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공연 예매는 분명 충동적인 부분이 있었다. 넉넉치 않은 주머니 사정 탓도 있었겠지만, 내가 과연 이적의 공연을 어렵사리 예매할 만큼 좋아했던 뮤지션이였던가를 떠올려보았을 때, 패닉과 카니발, 긱스까지 모든 앨범을 소장하고 있긴 했지만 살짝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아주 작은 의심은 공연이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 저절로 다 풀려버렸다. 나는 무려 이적의 음악과 1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적의 말대로 체력을 적절히 안배한 공연은 미친듯이 달리다가도 가슴 한 켠이 뜨거워졌다가 다시금 달리기를 반복했다. '다툼' '두통' 등 신보에 담긴 곡들을 비롯해 그의 솔로 앨범과 카니발, 긱스 시절의 곡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었다. 패닉 곡을 할 때는 종종 김진표의 빈자리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속으로 혼자 '나 어릴적 끝도 없이 가다, 지쳐버려 무릎 꿇어버린 바다'를 중얼 거리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색다른 감흥도 있었다. 일단 가장 처음으로 나를 흔들어 놓은 곡은 'UFO'였다. 그 오프닝의 피아노 선율이 딱 한음만 나왔는데도 바로 알아차리고 좌석을 박차고 일어나버리게 만들었던 곡. 이 자리를 빌어서 이야기하자면 패닉 2집은 당시로도 충격적인 앨범이었지만, 두고두고 들어도 새록새록 좋은 패닉 최고의 앨범이 아닐까 싶다. 확실히 이 2집을 통해 '패닉'이라는 그룹의 정체성을 확실히 한 동시에, 기대하는 바가 더 분명해졌던 것 같다. 'UFO'나 '그 어릿 광대의...'도 물론 좋지만 '불면증' 같은 곡은 요새 들으면 들을 수록 '와, 정말 대곡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어쨋든 그 'UFO'가 나왔을 때의 흥분이란!

'날아와 머리위로~'




그리고 패닉 3집에 수록되었던 곡 중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품 같은 곡 '뿔'을 라이브로 듣게 되니 참 감회가 새로웠다. '뿔'만큼이나 반가웠던 건 어느 한 팬이 이야기해 짧게나마 들을 수 있었던 '적이네 집'이었는데, 정말 완전히 잊고 있었던 이 곡을 여기서 만나니 우선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 곡은 이적이 별밤지기 시절, 중간에 삽입되었던 짧은 곡이었는데, 이 곡을 거의 10년만에 듣고나니 당시 매일 밤 별밤을 듣던 내 모습이 떠올라 만감이 교차했다.

김동률 없이 혼자 부르는 '거위의 꿈', 역시 혼자불렀지만 엄청나게 신났던 (이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정말 엄청나게 신났다!) '그녀를 잡아요', 내 노래방 18번 중 하나인 솔로 데뷔곡 'Rain'까지. Rain은 최근 방송에서 편곡된 버전을 미리 만나볼 기회가 있어 살짝 예상할 수는 있었지만, 워낙에 원곡의 그 절절함에 감동 받았던터라 오리지널로 만나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 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그리고 이번 공연을 예매하게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빨래'도 좋았고 (그런데 오히려 다른 곡들의 감동이 마구 솟아나다보니 오히려 기대했던 '빨래'의 감동이 아주 조금은 덜해진 감도 있었다 ㅎ).
 




피아노와 기타를 오가며 자신의 곡들을 2시간 동안 선사한 이적의 공연은, 그야말로 그의 15년인 동시에 나의 15년을 되새겨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내 낡은 서랍속의 바다'가 수록된 패닉 3집 테입을 선물받았던 고등학교 시절, 듣고나서 놀라움과 대단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패닉 2집,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참여했던 공연에 주제곡으로 수록되었던 터라, 정말 많이도 불렀던, 많은 무대에서 불렀었던 나의 또 다른 주제곡 '달팽이', 잠시 다녔던 서울재즈아카데미 시절 더 흥겹게 들었던 긱스의 음악들, 그리고 내 가슴을 매번 저리게 했던 카니발과 이적의 솔로 앨범들까지.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적의 음악이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내 인생에 머물러, 아니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고마워요, 이적!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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