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녀, 칼의 기억 (Memories of the Sword, 2014)

내면의 소용돌이는 표현 못한 반쪽의 무협영화



처음 전도연과 김고은이 긴 옷자락을 휘날리며 검을 휘두르고 있는 스틸컷을 보았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 '협녀'라는 제목 때문이라도 박흥식 감독의 신작 '협녀, 칼의 기억'은 무협 영화의 팬으로서 몹시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국내에서 제대로 된 무협 영화를 찾아보기란 흔치 않은 현실에서 '협녀'라는 제목으로 개봉하는 작품이라면, '협녀'라는 제목의 무게를 스스로 견딜 준비가 될 작품이 아닐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미 연기력으로보나 1차원적인 이미지로보나 이병헌과 전도연의 캐스팅은 이보다 더 좋은 캐스팅이 쉽게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는 점도 기대에 큰 몫을 했다. 하지만 개봉일 챙겨보게 된 '협녀, 칼의 기억'은 우려했던 대로 무협의 정수를 제대로 담아내지는 못한 채 드라마와 이미지에 기댄 반쪽의 무협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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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영화가 꼭 이래야만 한다는 법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정통 무협 영화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이 작품은 많은 한국 혹은 한국형 영화가 그러하듯이 드라마의 비중이 몹시 강한데, 무협이라는 장르와 세계관을 묘사하려는 영화하면 드라마를 중심에 두더라도 이 경우처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영리하지 못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지금까지 인상 깊게 보았던 무협 영화들을 돌이켜 보자면 그 안에도 물론 드라마가 모두 존재했으나, 그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확실히 다른 장르 영화의 드라마와는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인물들 간의 갈등이나 그 갈등이 깊어지고 해소되는 과정을 그리 되, 구구절절 설명하기 보다는 아주 함축적이고 담백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영화적 감동과 멋을 느낄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협녀, 칼의 기억'은 이미지 측면의 무협 요소를 모두 제외하면 과연 이 영화를 무협 영화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 핵심의 요소가 빠진 듯한 느낌이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극 중 인물들의 행동들은 무협 영화의 인물들이라고 보기엔 조금은 사사롭고, 사사로운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문제가 없을 때에도 그 감정을 스스로 격하 시키는 듯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복수와 복수. 야망과 사랑이라는 감정들의 구도는 나쁘지 않았는데, 무언가 그 이음새가 그 감정의 무게를 견디기엔 너무 가벼운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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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배우들의 연기 자체는 모두 인상적이었다. 특히 유백 역을 맡은 이병헌의 연기는 마치 장예모의 '영웅'에 등장하는 한 인물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무협 영화의 캐릭터로서 강렬한 인상을 전달했다 ('영웅'에 대한 영화적 평가와는 별개로 그 만큼의 무게감을 줄 정도였다는 것). 사실상 악당이 등장하지 않고 세 인물 (유백, 월소, 홍이)이 서로 얽히는 구조에서, 악당이 등장하는 영화와 큰 차이 없이 끝까지 긴장감을 줄 수 있었던 건 이병헌의 연기가 만들어 낸 유백이라는 인물의 무게감 때문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캐릭터를 로맨스 드라마 중심의 이야기에 놓는 것 보다는 강력한 악당 성격의 캐릭터와 대립하는 구조의 드라마에 두었다면 더 강렬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또한 전도연이 연기한 월소라는 캐릭터 역시 이 독특한 삼자 구도에서 빛을 발하는 캐릭터라기 보다는 둘 중 한 명과 1:1 구도를 가졌을 때 더 돋보일 만한 캐릭터라는 점도 비슷한 아쉬움이었다. 전도연의 연기는 이번에도 나쁘지 않았으나 이병헌과는 다르게 월소라는 캐릭터의 한계가 분명해 연기로 살려내기엔 어려워 보였다. 김고은이 연기한 홍이의 경우, 그녀의 연기를 제대로 본 건 처음이라 감정을 폭발하는 장면에서의 임팩트는 나쁘지 않았는데, 역시 몇몇 대사에 있어서 시대를 넘나드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 것은 장점이라기 보다는 단점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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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는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을지라도 또 한 번 슬픈 감정을 전하기엔 충분한 이야기였으나, 이 복합적인 3자 구조와 드라마가 강조된 연출 방식은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던 것 같다. 사실 박흥식 감독의 전작들의 면면을 보자면 어느 정도 예상된 영화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래도) 무협 영화라는 점에서 매혹될 수 밖에 없는 장면들은 존재했다. 만약 이 기구한 인생에 놓인 인물들이 겪는 내면의 소용돌이를 표현하는 것에 성공했더라면 더 좋은, 더 매력적인 무협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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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런데 제목이 '칼의 기억' 보다는 '검의 기억'으로 해야 맞는 것 아닌가 싶은...

2.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가 선택되지 않는 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배우 이전의 사람 이병헌 때문일 수 있겠는데,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고 잘한 배우는 이병헌이라는 사실.

3. 이경영씨가 또! 나옵니다. 저번에 누가 그랬죠. '어벤져스 2' 보는데 이경영이 여기도 나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ㅋ

4. 김고은의 전작은 아직 보질 못했는데, 예고편이나 스틸컷 들만 봐도 어느 정도 이미지의 중복이 아니었나 싶어요. 다음 작품 선택이 중요할듯 (치즈 인더 트랩에서의 연기가 그래서 더 중요하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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