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이다 (Ida, blu-ray by Plain)

내면의 소용돌이주목하라



시놉시스


고아로 수녀원에서 자란 소녀 ‘안나’는 수녀가 되기 직전, 유일한 혈육인 이모 ‘완다’의 존재를 알고 그녀를 찾아 간다. 하지만 이모는 ‘안나’가 유대인이며 본명은 ‘이다’라는 뜻밖의 이야기를 전하고, 그녀는 혼란에 빠진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알고 싶어진 ‘이다’ 그리고 이모 ‘완다’는 자신들의 가족사에 얽힌 숨겨진 비밀을 밝히기 위해 동행을 시작하는데







파웰 파울리코우스키 감독의 '이다 (Ida, 2013)'는 그의 조국인 폴란드가 갖고 있는 아픈 홀로코스트의 역사와 수녀 서원을 앞두고 있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낸, 고요하고 강렬한 작품이다. 최근 천만 관객을 넘어 화제가 되고 있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을 보면서도 새삼 느꼈던 바이지만, 영화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할 때 과정적으로나 (특히) 결론적으로 효과적인 방법은 그 메시지를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서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다른 이야기에 녹여 내거나 다른 큰 이야기의 그림자로서 등장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다'의 시놉시스는 아주 적절하고 효과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다'라는 제목도 그렇고 수녀복을 입고 있는 이다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의 이미지는 얼핏 이 작품을 수녀 서원을 앞둔 이다 라는 한 소녀의 불안함과 고민을 다룬 이야기로 오해하기 쉬운데, 이 작품은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다 못지 않게 완다 라는 그녀의 이모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드러나는 이미지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영화는 분명 두 명의 여성에 관한 동등한 비중의 영화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이다와 완다가 각각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다는 시놉시스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수녀가 되기 직전 영화 속 여정을 통해 자신이 유대인이며 '이다'가 본명이고, 자신의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완다는 어느 날 찾아온 이다로 인해 (아마도) 오랜 시간동안 자신을 괴롭혀 왔을 과거에 대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이 둘의 여정은 정반대의 지점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다는 일종의 무지의 시점에서 출발해 하나씩 진실을 알게 되는 과정을 통해 그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겪어 가는 여정이라면, 완다의 경우는 과거를 되짚음으로서 다시 한 번 과거에 대해 스스로 평가 혹은 속죄 할 수 있는 순간을 제공하는 여정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여정은 혈연 관계라는 것보다 역사의 아픔에 더 깊게 관여되어 있다. 사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나 다른 매체를 통해 종종 접하긴 했지만 그 가운데 폴란드의 이야기는 물론 자세한 역사적 진실까지 알고 있기는 쉽지 않은데, 나는 우연히 이 영화를 블루레이로 보게 된 바로 몇 시간 전에 TV에서 방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폴란드 인으로서 홀로코스트를 겪었던 이야기에 대한 작품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이해가 쉬운 편이었는데,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의 기본적인 내용 만이라도 인지하고 있는 것이 작품 감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다'는 정치적, 역사적 근거에 초점을 두고 이를 파해치려는 다큐멘터리 적 성격을 지닌 작품이 아니다. 이는 파웰 파울리코우스키 감독의 정체성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는 폴란드인이기는 하지만 어린 시절 폴란드를 떠나 여러 나라를 떠돌다가 영국에 정착한 경우라 스스로도 폴란드인으로서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려는 시도를 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굉장히 조심스럽게 마치 영화 속 이다의 모습처럼 자신의 뿌리에 대해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로 담담히 그려내고자 한 쪽에 가까웠다. 영화를 보고나서도 감독의 이러한 정체성이 영화에 아주 강한 장점으로 작용했다는 생각을 재차 하게 되었는데, 만약 그가 폴란드인으로서 뿌리 깊은 정체성의 인식과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오히려 완다라는 캐릭터에 대해 다른 시각을 보였거나, 이다라는 캐릭터를 훨씬 더 활동적으로 묘사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 때문이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홀로코스트라는, 결코 그 앞에서 담담해지기 힘든 아픈 과거를 다루면서도 그 갈등과 분노와 아픔을 모든 인물들이 내면의 소용돌이로 표현해 내고 있다는 점인데, 만약 화자의 입장에 있는 감독이 더 당사자 혹은 피해자의 입장이었다면 쉽지 않았을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아름다운 영상미와 정성이 느껴지는 블루레이


흑백 영화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스탠다드 비율로 촬영 된 영화라는 점은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이다'의 독특한 화면 비율은 단순한 영상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스탠다드 비율의 영상에서 가장 주의 깊게 볼 점이라면 영화가 인물을 화면의 어느 위치에 두느냐 일텐데, '이다'의 스탠다드 영상은 대부분 인물을 중심의 주변에 머물게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가운데에 두기 보다는 가장 자리나 한 쪽으로 치우친 곳에 두면서 (특히 이다의 경우), 이다가 이 여정의 중심에 서 있기 보다는 계속 조심스럽고 주변에 머물고 있음을 암시하고자 하는 듯 했다. 이러한 카메라 워크는 앞서 언급한 감독이 이 영화를 대하는 시선에 관한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아마도 많은 블루레이 유저들은 흑백 영상에 더군다나 스탠다드 비율이라고 했을 때 블루레이로서 화질이나 보는 재미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을 수 있는데, 그 생각은 아마 첫 장면을 보는 순간 부터 깨지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도 어떤 흑백 버전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마도 '미스트' 혹은 '마더' 였을 듯) 블루레이의 장점이 꼭 필요한 영화가 바로 흑백 영화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는데, '이다'를 보면서 여러 순간 감탄을 했을 정도로 블루레이로 표현되는 흑백의 영상미는 고혹적이었다. 올해도 정말 영상미가 돋보이는 여러 영화들을 봤지만 영상미 측면만 보자면 흑백과 스탠다드 영상으로 그려낸 '이다'가 올해 최고의 작품이었다. 카메라가 어떤 움직임도 갖고 있지 않는대도 그 어떤 영화보다 절제 된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흑백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질감과 대비는 어떤 수사적 표현을 더하기 이전에 그냥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확실히 블루레이로 볼 때 더 효과적이었다.





플레인의 블루레이 퀄리티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번 '이다' 역시 더 말할 필요가 없음에도 또 말하고 싶어지는 정도의 퀄리티라고 하면 딱 설명이 될 듯 하다. 최근 플레인에서는 소비자의 더 효과적인 선택을 위해 A,B 타입으로 커버를 다르게 출시하곤 하는데, 만약 내가 이 작품을 극장 개봉시 보았더라면 아마 A타입의 커버가 아니라 B타입을 선택하거나 둘 다 구입했었을 것이다. 단순 디자인 측면만 보자면 이다의 이미지가 깔끔하게 담긴 A타입이 더 취향이기는 한데, 후면의 디자인을 보았을 때 완다가 등장하는 B타입 후면의 이미지는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였기에, 이 후면의 이미지만으로도 B타입을 선택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내가 구입한 건 디자인 A타입)


처음 미니 사이즈 영화카드가 담긴 봉투에 인장 처리를 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이 작업이 티저에 그치지 않을까 했었는데 (왜냐하면 수백장을 직접 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이 작업이 얼마나 필요 이상의 디테일이 필요한 일인지 잘 알기 때문), 그치기는 커녕 계속 발전하고 있는 듯 했다. 컬러 역시 작품 이미지와 통일성을 주기 위해 핑크색을 선택한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보통은 이 인장 부분을 그대로 뜯지만 이번엔 도저히 아까워서 그럴 수 없었기에 봉투 옆부분을 개봉하는 방식으로 이 인장을 100% 보존하는 쪽으로 소장을 결정했다. 소책자에는 평소 씨네 21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인상 깊게 읽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 수석 프로그래머김성욱 님의 글이 수록되어 있어 무엇보다 유익했다.





이번 블루레이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점이 바로 가변 자막인데, 영화 자체가 스탠다드 화면비로 제작 된 영상이라 가변 자막의 이슈는 어쩌면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점을 실제로 타이틀에 적용하여 제공한 것은 플레인의 정성이라고 분명 말할 수 있겠다. 스탠다드 화면비의 영상에 이 작품처럼 인물을 영상의 중앙이 아니라 대부분 가장 자리, 특히 아래 좌우 측면에 배치하는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자막이 인물의 얼굴에 직접적으로 매번 겹쳐지게 되기 때문에 자막으로 영화를 감상해야 하는 경우 100%의 영화를 즐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흥미로운건 보통의 영미 감독들은 자막으로 영화를 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나, 폴란드 출신인 파웰 파울리코우스키의 경우 나중이기는 했지만 제작 과정 중에 '나중에 자막이 문제가 되겠구나'라는 점을 인지했다는 점이다). 대사 만큼이나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배우의 얼굴이 대부분 가려지고, 또한 자막과 겹침으로서 표정을 함께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다'에 가변 자막은 필수적인 요소였다고도 말할 수 있을 텐데, 이번 플레인의 '이다' 블루레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점 중 하나는 가변 자막만 수록한 것이 아니라 고정 자막도 함께 수록해 선태권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가변 자막이 물론 편의를 위한 기능이기는 하지만 소수일지라도 일부 관객의 경우엔 그래도 고정 자막을 선호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에 두 버전 모두를 수록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나 역시 가변 자막을 선호하면서도 이를 선택했을 경우 부가적으로 발생하는 요소 때문에 조금 걱정되는 측면이 있는데, 가변 자막을 선택하게 될 경우 일부 장면에서 자막이 일종의 디자인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감독이 의도하지 않은 일종의 연출이 발생하게 되, 해당 장면에서 원치 않은 이미지나 인상을 받게 될 수도 있기에 가변 자막은 대부분 장점이 부각되지만, 극히 소수나마 단점도 존재하는 편이다.




(가변 자막은 아주 드물게 위의 장면처럼 자막의 위치가 곧 또 다른 이미지가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위 장면을 보면 알겠지만 저 위치 말고는 자막을 넣을 곳이 없다는게 함정)


이동진 평론가의 로컬 음성해설과 부가영상들


국내 블루레이 시장 상황을 어느 정도라도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현재 국내에서 로컬 타이틀 만을 위해 부가영상을 특별히 제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로컬 부가영상을 별도로 제작을 꿈꾸기 이전에 해외 판에 수록된 부가영상을 온전히 수록하는 것도 제작비 등의 문제로 인해 여의치 않은 경우도 많은 편이다. 해외 영화의 경우 국내에서 별도의 부가영상을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여건상 불가능한 경우인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평론가나 감독 등이 참여하는 음성해설을 별도로 제작한다는 것은 정말 다시 생각해도 대단한 오버 투자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플레인은 이러한 노력을 서서히 계속해 가고 있다. 곧 발매될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의 경우 류승완 감독과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이 참여한 음성해설을 별도로 제작하였고, 워낙 공을 오래 들이는 탓에 계획보다는 출시가 늦어지고 있지만 (아마도) 최고의 판본이 될 '올드보이' 블루레이의 경우 부가영상만을 위해 거의 다큐멘터리 영화 급의 영상을 따로 제작했을 정도다. 조금이나마 사정을 아는 입장에서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러한 로컬 부가영상, 음성해설 등의 제작이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비용과 노력이 들어가는 작업이라는 점이다. 솔직히 말하면 한 편으론 쓸데없는 고퀄리티로 부르고 싶을 정도로 체감하는 것 이상의 노력과 비용이 소요된다.




(내가 '이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이번 '이다' 블루레이 역시 이동진 평론가가 참여한 음성해설이 이 블루레이 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수록되었는데, 위에 언급한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라고 보면 되겠다. 작품이 작품이니만큼 영화적으로 소개하거나 부가 설명이 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이동진 평론가의 음성해설은 꼭 한 번 들어볼 만한 트랙이다. '이다'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은 전체적으로 그리 풍성한 양은 아니지만, 이를 보완하는 로컬 음성해설의 특별 수록으로 전반적인 타이틀의 소장 가치가 더해진 느낌이다.





부가영상으로 수록된 '감독과의 대화'에서는 2013년 10월 BFI 런던영화제에서 진행된 감독과의 대화 수록되었는데, 진행자와 관객들의 여러 질문들에 대한 감독의 답변들을 통해 영화 제작과정과 뒷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다. 극 중 완다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을 만나게 된 것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는 뒷이야기와 젊은 수녀와 한물간 마르크스 주의자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작품이라는 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감독은 처음부터 흑백화면과 스탠다드의 화면비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일부러 움직임을 최소화 한 영화를 만들고자 함이었다. 움직임이 거의 없는 카메라 워크도 마찬가지다. 더 재미있는 건 이 인상적인 촬영을 맡은 촬영감독이 원래 캐스팅 된 이가 아니라 본래 촬영감독이 촬영 첫날 아파서 부득이하게 교체해야 하는 바람에 다른 대책이 없어서 급하게 어린 카메라 오퍼레이터였던 루카즈(지금의 촬영감독)에게 맡기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는 또 한 번 우연의 놀라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 밖에 '메이킹 영상'에서는 약 11분 분량의 영상으로 감독과 제작자의 인터뷰가 주로 등장한다. 여기에서는 남자 배우인 다비드 오그로드닉의 이야기도 수록되었는데 극중 색소폰 연주자로 등장하는 그가 실제로도 연주가 가능했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조금 아쉬웠던 건 두 여자 주인공의 인터뷰가 수록되지 않았다는 점인데 이는 마치 두 캐릭터(배우)를 영화 속에만 남겨두고자 하는 감독의 바람이 적용된 듯 한 느낌이라 묘하게 수긍할 수 밖에는 없는 분위기였다.





'이다'를 보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시기가 시기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아, 우리도 이런 식으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담아내는 영화가 있었으면 좋겠다'하는 점이었다. 아직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에 대해 현재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세대와 그 다음 세대에까지 관심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역사를 처음 받아들이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다'는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영화였다. 완성도 높은 블루레이로 꼭 한 번씩 감상하시길.


이다 블루레이 구입처

http://plainarchive.co.kr/product/detail.html?product_no=56&cate_no=1&display_group=2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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