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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The World of Us, 2015)

현실의 굴레를 꿰뚫은 치명적 섬세함의 결정체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들 (The World of Us, 2015)'은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전체관람가의 영화다. 하지만 요즈음은 보기 드문, 말그대로 전체가 관람해야 할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다. 처음 이 작품을 접하게 된 건 화려한 색감과 일러스트가 인상적이었던 포스터 이미지에 끌렸기 때문이었는데, 이 포스터를 보고 '혹시...'했던 기대감은 '역시...'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가 연상되는 데뷔작인데, 대한민국의 현시점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누구도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잔인하리만큼 섬세한 시선으로, 하지만 아이들이라는 순백의 도화지로 투명하게 그려낸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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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마도 집안의 경제적인 수준으로 인한 이유 때문에 선이 (최수인)는 보라 (이서연)를 비롯한 같은 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외톨이다. 그러던 어느 날, 4학년 여름방학을 앞 둔 날 전학을 오게 된 지아 (설혜인)와 처음 만나게 된 선이는 바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많은 시간을 함께 놀며 보내게 된다. 그렇게 같은 반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던 선이는 지아와 친해지면서 하루 하루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지아가 같은 학원을 다니는 보라와 친해지게 되면서 지아 역시 선이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 


'우리들'은 초등학교 4학년 여자 아이들이 겪게 되는 작지만 큰 우주의 이야기로 봐도 좋다. 극 중 방학을 맞아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너희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알아?'라며 방학동안 알차게 보낼 것을 당부하는데, 이 대사는 처음에 들으면 '피식'하고 웃게 되는 농담 같은 이야기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정말로 그 나이 때의 아이들에게 그 시간들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를 깨닫고 피식했던 웃음을 지우게 된다. 아이들이 한 인간으로서 자아와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 그 중요한 시기에, 친구와의 관계에서 겪게 되는 모든 일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반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왜 자신을 따돌리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가 왜 그런지 궁금하지만 그보다는 그 친구에게 어떻게 더 다가갈 수 있을지 조심스럽고. 선이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매일 같이 노는 친구에게 맞고 오는 선이의 동생 윤이 (강민준)에게는 그럼에도 그 친구와 노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어른들에게는 그저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고, 다투고 하루하루 다들 그렇게 보내는거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또래의 아이들에겐 마음이 통했으면 하는 친구와 사이가 좋지 못한 것 보다 더 큰 고민과 괴로움은 없을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선이와 지아의 이야기를 통해 이 아이들이 겪는 복잡한 삶의 고민을 아주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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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의 관계에서 답답함과 힘겨움을 느끼는 선이를 보니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 때 나는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당시에는 나를 싫어하는 친구가 있는 경우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가 있다는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엄청난 괴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이야 '그럴 수도 있지'라는 어른의 가치관이 생겨버렸지만, 그 당시에는 '왜 나를 싫어하지?' '나는 잘못한게 없는데 무슨 오해가 있는거지?'라며 그 상황과 분위기 자체를 견디기 힘들어 했었던 것 같다.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선이와 지아의 이야기는 아마도 대부분의 어른들이 겪었을 어린 시절의 고민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미움을 받는 것. 그래서 그 미움이 왜 발생했는지 그 이유를 따져 묻기 이전에 당황스러움이 먼저 들게 되는 감정의 변화는 처음에는 누구나 겪었을 생경함이었을 거다. '우리들'이 놀라운 건 누구나 겪었지만 제대로 풀어내거나 표현된 적은 드물었던 어린 시절의 감정과 처음 겪었던 답답함들을 정말로 100%에 가깝게 묘사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3D입체영화도, 물과 바람이 뿜어져 나오는 4D영화도 아니었으나 '우리들'은 가히 내가 영화 속으로 들어가 체험하고 있다는 실감이 날 만큼 섬세한 감정선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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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들'이 더 강렬하게 다가왔던 건 영화 속 아이들의 감정과 관계의 뒤틀림 뒤에 보일 듯 말듯 존재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 때문이었다. 즉, 선이와 지아 그리고 보라가 겪게 되는 문제의 원인이 되는 어른들의 현실의 문제 말이다. 경제적으로 잘 살고 못살고 하는 문제. 누군가는 더 큰 집에 살고, 누군가는 더 작은 집에 살고, 누구는 좋은 차를 타고, 누구는 차가 없고. 누구는 생일을 맞아 어디서 어떻게 파티를 할까 고민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는 생일 선물을 살 돈이 없어서 속앓이를 해야만 하는. 더 나아가 반 친구들이 다 다니는 학원을 다니고 싶지만 우리 집 형편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어서 스스로 마음을 접어야 하는 이런 현실 말이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부터 언젠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이 같은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었는데, 아무리 고민해도 그 답은 쉽게 내릴 수가 없었다. 쉽게 생각하면 태어나면서부터 경제적인 환경을 통해 경쟁이 시작되는 아이들의 현실을 탈피해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아이로 키워내고 싶지만, 이건 자칫 부모의 과욕 혹은 자만일 수도 있다는 불확신 역시 드는 부분이었다. 다시 말해 부모는 현실의 불합리함을 벗어나 현명한 삶을 이루고자 한다고 하지만, 그로 인해 아이가 겪어야 할 여러가지 문제들, 영화 속에서도 등장했던 따돌림이나 사회의 일원으로 속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괴로움 들을, 그 작은 아이에게 선택권 없이 겪도록 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인지에 대해서는 선뜻 답을 내놓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바로 이 지점을 잔인하리만큼 꿰뚫고 있는 영화다. 그 섬세함이 좋았던 건 이 현실을 그리면서 더 극적인 효과를 위해 과장되거나 섣부른 판단을 하는 지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선이의 부모에 대한 묘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이런 고민을 겪는 외로운 어린이 주인공을 그린 다른 영화였다면 아버지는 그야말로 알콜 중독자고, 어머니 역시 빠듯한 살림고로 인해 아이의 고민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완전히 무시하는 인물로 그려졌을 텐데, 이 영화 속 선이의 어머니는 빠듯한 살림고 속에도 최대한 두 아이의 삶을 돌보려 노력하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무시해가며 아이에게 헌신하지도 않으며 매일 같이 반복되는 어린 아들의 트러블에도 현명하게 대처해 낸다. 나는 그래서 선이 만큼이나 선이 어머니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더 심장이 조마조마 하고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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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선이의 아버지가 알콜 중독자로 아주 나쁜 아빠였다면, 그리고 선이의 엄마도 하루하루 사는 것에 목 매달려 선이의 삶은 관심 조차 없는 무정한 엄마였다면, 그리고 선이를 따돌리는 보라도 어쩜 저렇게 나쁜 애가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약한 아이였다면, 선이가 겪는 고민과 힘겨움들에 오히려 탈출구가 보였을 텐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너무 현실적이었기에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앞서 내가 내 아이를 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키워가야 할지에 대해 아직도 명확한 답, 아니 방향성을 갖지 못했다는 것처럼, 영화 속 선이와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것도 쉽게 해결하거나 매듭지어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경제적인 생활 수준의 차이는 선이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같을 수 없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교육(학원)의 차이 역시 발생할 수 밖에는 없으며, 이 차이로 인해 아이들이 겪게 될 아픔 역시 그저 어린 아이들 보고 현명하게 대처하라고 놔둘 수는 없는 어른의 문제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이 현실의 문제에 대해 그 어떤 영화보다 섬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어떤 답도 선뜻 내리지 않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선이는 반친구들과의 피구 게임에서 맨 마지막에 지목되는 것에서 결국 벗어나게 되었지만, 이것이 과연 해결이라고 영화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이 문제에 대해 영화가 섣불리 답을 내놓지 않은 태도가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그 문제의 본질의 깊이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자신 만의 답을 내놓는 것에 비하자면, 윤가은 감독은 깊이있게 파고들어 이해한 덕분인지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음을 알아차린 듯 했다. 그래서 이 영화엔 막연한 긍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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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현실 속에서 답을 찾지 못했던 문제가 고스란히 재현된 탓에 심장이 답답하고 또 울컥하게 만드는 순간도 여럿 있었다. 그 만큼이나 슬펐던 건 객석 뒤에서 영화 중반 소리 내어 훌쩍이던 어느 어머님 때문이기도 했다. 아마도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계실 그 분의 울음 소리는 이 영화가 얼마나 현실을 꿰뚫고 있는 지에 대한 증거인 동시에, 우리가 처한 어려운 문제를 재차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도 얼마 전 아빠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더 특별한 영화일 수 밖에는 없었다.



1. 진짜 아역 배우분들 어쩜 이렇게 연기를 다 다 다! 잘하나요!!! 이선 역할을 연기한 최수인 배우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욧! 

2. 올해 '우리들'보다 더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나올까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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