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최고의 스타일리쉬 액션스릴러

영화의 줄거리는 사실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범죄에 손을 담근 주인공이나 그 뒤에 버티고 있는 마피아 세력, 그리고 이들의 약점을 잡아 거래를 하는 경찰 등 이런 식의 범죄 액션 영화는 이전에도 많이 있어왔다. 여기에 스릴러 장르의 맛과 반전의 묘미를 추가한 액션 영화들도(결국 사건에 범인이 누구였는지 혹은 누가 배신하게 되는지 등) 최근 들어 자주 만나볼 수 있었다. 최근 이런 비슷한 유의 영화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이 작품 ‘러닝 스케어드’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부턴가 스타일리쉬한 액션 영화에 개봉 홍보 문구에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한 마디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영화에도 훈장처럼 타란티노의 칭찬 문구가 겉을 치장하고 있다.



스타일리쉬 하다는 것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영상, 그 중에서도 카메라웍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카메라웍에 있어서 ‘러닝 스케어드’는 동일 장르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영상을 선사한다. 감독 중에는 한 장면을 여러 대의 카메라의 동원하여 촬영한 뒤 편집 시에 가장 좋은 영상을 본편에 수록하는 경우와(최근의 경향) 카메라 한 대로 원하는 영상만을 롱 테이크로 촬영하는 경우가(고전적인 방식) 있는데, 보통의 스타일리쉬한 영상을 담은 영화에서는 전자의 경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화면 전환이 빠르고 더 많은 양의 영상과 좋은 구도를 담기 위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영상을 조합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닝 스케어드’의 감독인 웨인 크레머는 고전적인 방식을 선택하였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멋진 영상은 더욱 놀랍게 느껴진다.



이런 방식으로도 긴박감 넘치고 ‘때깔’나는 영상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촬영 자체의 기술 못지않게 시나리오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 영화가 한 대의 카메라를 주로 사용하는 촬영 방식을 사용했음에도 멋진 영상을 만들어낸 데에는, 감독인 웨인 크레머가 연출 뿐 아니라 시나리오도 직접 썼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장면 장면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구도가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매우 세밀한 카메라웍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만들어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영화 초반에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완전히 빠져들게 만드는 좁은 방에서의 총격 씬은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 카메라웍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멋진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러닝 타임 거의 내내 등장하는 멋진 차를 훑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멋진 차를 더욱 멋지게 그려낸다. 그리고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거리에 어스름한 불빛과 네온 사인 등 조명의 효과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충격적인 내용만큼이나 인상 깊은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식스센스’ 이후 봇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한 이른바 ‘반전’ 영화들 덕택에 요즘 관객들은 여느 반전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와일드씽’처럼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장치를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영화들도 등장하는 한 편, 영화의 10분만 보고도 반전을 눈치 챌 수 있는 영화도 생겼고, 마침내 반전이 공개되었을 때에도 놀라움 보다는 아쉬움이 드는 영화들도 속출했다. 사실 이런 경향이 팽배한 최근에는 ‘반전’이라는 홍보 문구만 봐도 기대와 걱정이 앞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러닝 스케어드’는 이 같은 기대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기 보다는, 탄탄한 시나리오를 통해 엄청난 반전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극의 연결과 해결이 적당히 자연스러울 정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즉 반전을 기대하고 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하지만 소소한 트릭들과 짜임새 있는 이야기는 반전에 실망한 이들의 아쉬움마저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패스트 앤 퓨리어스’ 시리즈를 통해 빈 디젤과는 또 다른 멋진 남성 캐릭터를 만들어낸 폴 워커는 ‘러닝 스케어드’를 통해 단순히 멋진 몸을 위주로 한 액션만이 아니라 극 연기에도 훌륭한 재능이 있음을,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여전히 액션이 많은 스릴러 영화이긴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손에 땀을 쥐며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단연 폴 워커의 실감나는 연기가 큰 역할을 했다. 마치 다이하드 시리즈의 존 맥클레인을 연상시키는 주인공 ‘조이’의 캐릭터는 폴 워커의 남성적인 이미지가 더해져 더욱 극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역시 폴 워커에게는 ‘에이트 빌로우’처럼 가족영화가 아닌 이런 고생하는 영화가 어울린다). ‘갓센드’를 통해 할리조엘 오스먼드와는 또 다른 공포물의 아역 캐릭터를 연기하며 주목을 받았던 카메론 브라이트 연기도 인상적이다. ‘갓센드’의 공포스러움이 연상되는 신비하면서도 공포스런 표정의 ‘올렉’ 역할을 맡은 카메론 브라이트는, 그 특유의 표정만으로도 이 영화에 스릴러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하게 했다. 이 밖에도 부패한 경찰 역할로 멋진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체즈 팰민테리와 이 영화를 통해 인상적인 연기력과 매력을 알게 된 테레사 역할의 베라 파미가의 연기도 절대 빼놓을 수 없을 듯.



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러닝 스케어드' DVD는 1장으로 출시된 것에 비하며 비교적 영양가 있는 서플먼트와 스펙을 수록한 타이틀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먼저 2.35: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신작답게 수준급의 화질을 담고 있는데, 어두운 조명에 장면이 많았으나 암부 표현 정도도 수준급이어서 시청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DTS-ES 6.1채널의 사운드는 레퍼런스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수준급이다. 특히 영화 초반 총격 씬에서의 채널 분리도는 근래 본 타이틀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다 채널을 활용하고 있는 장면으로 여겨진다. 총 소리와 차 엔진 소리 등은 우퍼 스피커를 통해 더욱 묵직하게 전달되며, 큰 소리에 가려모르고 지나치는 미세한 생활 소음들도 매우 세세하게 전달되고 있는 것을 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표현력이 우수하다. 아무래도 돌비디지털 5.1채널 보다는 DTS-ES 6.1채널이 더욱 긴박하고 박진감있는 본편을 감상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서플먼트로는 감독인 웨인 크라이머의 음성해설과 메이킹 필름 등을 수록하고 있는데, 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타이틀 치고는 불필요한 서플이 없이 알찬 영상들을 담고 있다. 특히 감독의 음성해설에서는 70,80년대 유행했던 범죄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의도와 더불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또한 존 웨인을 숭배하는 계부 캐릭터를 위해 실제 존 웨인의 아들에게 허락을 받기도 했다는 에피소드 같이 음성해설에서만 들을 수 있는 정보들도 가득하다. ‘거울을 통해 본 모습’이라는 제목의 메이킹 영상에서는 주 조연 배우들의 인터뷰를 통해 제작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들려준다. 특히 이 메이킹 영상은 와이드스크린으로 수록되어 있어 더욱 반갑다 (감독의 인터뷰 장면에서는 본편과도 같은 우수한 화질을 수록하였다). 이 밖에 한국과 미국 버전의 예고편이 각각 수록되었다. 메이킹 영상만 수록된 서플먼트가 조금 아쉽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비교적 짜임새 있는 메이킹 영상과 더욱 흥미로운 음성해설은 그 부족함을 채워주기에 충분할 듯 하다 (참고로 영화가 끝난 뒤,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일러스트로 요약하여 펼쳐지는 엔딩크래딧을 놓치지 말 것).
 
2003.06.27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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