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밖에 없는 지하철 안. 한 소녀가 긴 칼집을 어깨에 비스듬히 세우고 앉아있다. 긴장된 얼굴의 그녀는 지하철이 어두워졌을 때 긴 일본도를 뽑아들고 사내를 내리친다. 베트남전이 끝난 후 일본의 요코타 미군기지. 베트남전 패배의 상처가 아직 남아있는 이 기지내부에는 인간을 노리는 위협적인 존재가 있다. 바로 뱀파이어들. 그들을 처리하는 마지막 전사는 어느것하나 알려진바 없는 세라복에 일본도를 든 소녀 사야. 떠들썩한 분위기에 흥겨운 할로윈 파티 장에서 뱀파이어 헌터 사야는 마지막 뱀파이어를 처치하기 위해 비밀정보요원과 함께 추격을 시작한다.



프로덕션 I.G는 [인랑], [공각기동대]등의 작품으로 이미 많은 이들에게 자신들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 시킨 몇 안 되는 아니메 제작소이다. 두 가지 각각 다른 스타일의 작품으로 아니메의 새 장을 열었던 프로덕션 I.G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블러드 : 라스트 뱀파이어](이하 블러드)는, 많은 아니메 마니아들의 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 전의 그들의 작품과는 또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아니메를 탄생시켰다. 급하게 결론부터 짓자면 [블러드]는 이제부터 프로덕션 I.G가 만든 작품이라고 하면 더 따져볼 것도 없이 극장을 찾고, 타이틀을 구매하게 될 만한 결정타를 날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물론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이미 [인랑]으로 인해 강한 결정타를 맞은 뒤이긴 했다).



팬들의 기대가 기대인 만큼, [블러드]는 감독인 키타쿠보 히로유키를 비롯해, 기획 협력을 맡은 오시이 마모루, 각본의 [공각기동대]시리즈로 유명한 카미야마 켄지, 디자인에 데라다 카츠야 등 많은 스텝들이 노력한 흔적이 묻어나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스텝들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번 [블러드]의 서플 디스크에 담긴 영상들을 보면서 새삼스레 느낀 것이지만, 이렇게 짧은 러닝 타임으로 이루어진 애니메이션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새새한 파트까지 분업이 이루어져 장면 하나하나에도 전혀 소홀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짧은 러닝 타임이 더 이들의 능력과 재능을 집중되게 하는 이유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택한 새로운 스타일은 흔하지 않은 특별한 뱀파이어 헌터 물이었는데, 무언가 새롭고 기존의 동일 장르의 작품들과는 다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이들은 100% 풀 디지털 제작 방식을 사용하였다. 대부분 애니메이션은 셀 애니메이션이 주를 이루고 디지털 방식은 일부 사용되는 것이 보통인 것에 반해, 100% 디지털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아마도 [스타워즈 에피소드 2]와 이 작품 [블러드]뿐이 아닌가 싶다. 디지털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상은 아날로그 방식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많은 놀라움을 전해주는데, [블러드]에서는 몇몇 장면에서 그러한 기술적 완성도를 느낄 수 있다. 시작부분 지하철역에서 역의 배경 디테일과 열차의 디테일은 흡사 실사라 해도 믿을 만큼 완벽한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미군 기지 내에서 비행기가 이륙하는 장면에서도 역시, 이 같은 높은 영상의 퀄리티를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셀 애니메이션이 아닌 풀 디지털로 이루어진 영상은, DVD라는 매체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 부합하는 영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타이틀의 화질과 사운드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뒤에 다시 하도록 하겠다.



[블러드]에 대한 인지도가 아무래도 조금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래에 시상 내역들이 이같이 부족한 인지도를 조금이나마 만회해줄 요소가 될지도 모르겠다. 일단 평성 12년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애니메이션 부분 대상을 수상하였고, 제6회 애니메이션 고베 개인상, WAC 2001 극장 영화부문 1위 수상, 그리고 2000년 7월 부산 국제 판타스틱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소개되어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블러드 : 더 라스트 뱀파이어]는 일단 묵직한 크기의 케이스부터 내용물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데, 뚜껑을 열어보면 이 같은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줄 만한 소장가치 높은 아이템들이 수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패키지에 포함된 목록을 살펴보면 일단 일반판 디스크 한 장, Digital Master Version 디스크 한 장, 그리고 서플먼트를 담은 디스크 한 장, 이렇게 3장의 디스크가 수록되어 있고, 대본 책자와 스토리 보드 책자가 각각 한 개씩 수록되어 있다. 타이틀의 정보에 보면 미니 포스터가 수록되어 있다고 나와 있는데, 그야말로 한정판 케이스 크기의 미니 포스터이니, 포스터를 찾느라 고생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수록된 내용물들은 대본집과 스토리보드가 포함된 일본반과 동일한 패키지로 구성되어 많은 마니아들의 구미를 더욱 당기고 있다(이미 일본반을 구입한 이들만 눈물을 짓고 있다). 특히 스토리보드와 빨간 색의 대본 책자는 고급스럽고 상당한 소장가치를 느끼게 하는데, 이것들이 [블러드]를 진정한 한정판으로 불리게 하는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겠다.



화질과 사운드는 생각했던 것 보다는 기대 이상에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다. 화질은 100%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된 터라 더 이렇다 말할 것도 없이 완벽함을 선보이고 있음을 짐작했지만, 사운드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던 터라 타이틀을 감상하고 난 뒤에는 그 충격이 더 컸다고 할 수 있겠다. 일단 화질은 작품 자체가 어두운 분위기로 이루어져 있고, 안개가 낀 듯한 분위기와 화려한 색들 보다는 어두운 계통의 색이 주로 쓰였음에도 불가하고(또 한 번 말하지만), 풀 디지털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상답게 높은 퀄리티의 화질을 재공하고 있다.



사운드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이라 그랬었는지는 몰라도, DTS가 아닌 돌비디지털 5.1채널 치고는 상당히 강력한 음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채널의 분리도도 높은 점수를 줄 수 있겠고, 효과음과 배경음의 전달도 아주 강력하고 부드럽게 이루어졌다.



일반 아날로그 버전이 수록된 첫 번째 디스크와는 달리 두 번째 디스크에는 디지털 마스터 버전의 본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일반 TV에서는 그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높은 플레이 환경에서는 아마도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디스크에는 다양한 서플먼트가 수록되어 있는데, 감독과 스펩들의 인터뷰를 통해 제작의도, 캐릭터 설정, 디지털과 3D를 이용한 제작 방식들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외에도 더빙을 맡은 성우의 인터뷰 영상과 한국어 더빙 현장 스케치, 성우 인터뷰 영상이 수록되어 있다.



2003.10.29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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