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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먼곳에 (2008)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본 님은 먼곳에


본인은 의도한 바가 없다고 했지만 어쨋든 <라디오스타> <즐거운 인생>에 이어 음악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린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곳에>는 분명 기대작이었다. 지금까지 이준익 감독의 영화들은
엄청난 흥행 성공을 거둔 <왕의 남자>를 굳이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황산벌>부터 <즐거운 인생>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어느 정도의 완성도와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에 신작에 대해서도 아주 큰 기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준익'이라면 하는 기대감이 분명 있었기에 신작 <님은 먼곳에>도 요즘같이 볼 영화와 영화제로
가득 넘치는 가운데도 개봉일날 관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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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 쭈욱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의 대략적인 내용은 3대 독자인 신랑(엄태웅)을 군대에 보낸 시골 아낙내 순이(수애)가 남편이 군대에서
사고를 쳐 월남에 가게 되자, 이에 노한 시어머니의 등살에 떠밀려 할 수 없이 월남까지 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슬쩍 보면 전쟁마저도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었던 기적적인 두 남녀의 애뜻한 사랑이야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님은 먼곳에>에는 이런 이야기에 가장 기본이 되는 '사랑'이 일단 없다.
상길은 부인 말고도 더 사랑하는 듯한 애인이 있으며, 면회를 온 순이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지만,
순이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다. 시어머니의 대를 이으라는 명령에 휘둘려 매달 면회를 꼬바꼬박 같지만,
아마도 단 한번도 잠자리를 하지 않은 것 같은 분위기로 미뤄봐도 순이와 상길 사이에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단순히 손자를 낳기 위한 시어머니의 도구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 의문이 생기는데 이 두 남녀가 어쩌다가(별로 좋아하는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런 것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처음부터 원하지 않는 정략 결혼이었는지, 아니면 처음엔 사랑했으나 애인이 생기고 소극적이고 시골처녀인
순이는 그저 이혼하면 집으로도 돌아오지 말라는 친부모의 호령이 무서워, 죽은듯이 살아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가장 큰 의문점이 생긴다. 결론적으로 상길은 물론, 순이 역시 상길에게 특별히 사랑하는 감정이
없는데, 월남까지 상길을 만나기 위해 쫓아간다는 설정 자체의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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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를 좀 긍정적으로 보는 편인 내겐 다른 시각으로 영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영화가 전쟁이라는 시련을 겪는 두 남녀의, 혹은 한 여성이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을 서사적으로 다뤘다기
보다는, 한 여성의 이야기는 맞지만 분위기에서 느껴지듯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억눌리고 강요만 당해왔던
자아를 우연치 않은 기회에(이 역시도 강요에 의한 기회로 인해)찾게 되고, 나중에는 마치 자기 최면에 빠지듯
자신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완전히 잊어버렸을 정도로, 오기가 본래 의도마저(본래 의도라는 것이
있었다면)모두 잠식해버리고 마는, 소외되고 억눌려 있던 순수한 한 여성의 원치않는 극적인 변화를 그린
하나의 무서운 여성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이는 시어머니 강요에 못이겨 월남으로 갈 방법을 찾던 중에 정만(정진영)의 도움과 꼬임에 넘어가
밴드 멤버로 월남에 가게 되고, 그들과 함께 공연을 하며 실패와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결국 남편이 있는
호이얀으로 갈 기회를 잡게 된다. 순이는 영화의 중반부까지 거의 표정이 없는, 반응도 무척 늦는
건조한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자신의 자의로 월남에 왔다기 보다는 하는 수 없이, 피할 수 없어서
여기까지 끌려오듯 오게 된 자신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하지만 노래하는걸 그저 좋아했던 순이는
처음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지만, 팝송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조금씩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 자체에 대한 반감도 사라지게 된다. 이것을 '즐기게 된다'로 볼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시작이 자의로 온 것이 아니라 오기에 가깝게 시작된 것으로 본다면 '즐긴다'라기 보다는
이 역시 웃는게 웃는게 아닌 '오기'로 보는 편이 더 가깝겠다.

그러던 와중에 베트콩에게 포로로 잡혀 굴속에서 잠시 생활하기도 하고, 다시 미군에게 구출(?)되기도 하는
곡절을 겪으면서 점차 순이의 오기는 강해진다. 그래서 구출된 미군 장교를 위해 과감히 몸을 파는
일까지 서슴치 않게 되는데, 앞서 보았듯이 남편인 상길과도 잠자리를 하지 않았던(물론 이 부분은 상길과 순이의
과거 얘기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확실치는 않지만)순이가 그 좋아하지도 않는 상길을 만나기 위해
미군 장교와 잠자리를 하게 되는 설정이야 말로, 주객이 전도되고, 왜 이러는지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게 되어버린
순이 자신의 오기가 극에 달한 장면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것보다 더
설명이 되지 않는 이상한 설정은 개인적으로 정만이 베트콩에게 풀려나 미군에게 구출된 뒤, 한 번만
미군들을 위해 공연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정성껏 사정하는 모습이었다. 정만은 그저 돈을 벌러 온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임이 분명한데, 설사 순이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 위해 그랬다하더라도
이 설정은 정만이라는 캐릭터가 갑자기 선의를 보인 이상한 장면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이 전 장면에서 '님은 먼곳에'를 예쁘게가 아니라 거칠게 부르던 순이의 모습에서는 확실히 오기가 불러낸
자아의 혼란을 겪는 심리상태를 엿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영화를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엔딩장면에도 있었다.
드디어 상길을 만난 순이는 달려가 포옹하거나 하지 않고, 말도 없이 상길을 뺨을 여러번 친다. 그리고
서로 눈물을 흘리며 그것으로 영화는 마무리 된다. 얼핏 보기에 이건 전쟁이라는 지옥같은 상황 속에서
드디어 만난 두 남녀가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하고 흘리는 눈물이라기 보다는, 순이가 드디어 조금이나마
자신의 여기까지 오기의 일들을 떠올리며, '내가 왜 이래야 했나' 혹은 '자 봐라, 내가 이 전쟁통에도 니들이
하라는대로 다 해줬다. 됐냐?'라는 식의 회환에서 오는 자기 연민에 눈물로 느껴졌다.
(그렇다면 상길의 눈물의 의미는 단순히 아파서? --;;)

결국 자신의 의견 한 번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소박하게 살아가던 한 시골 여성이,
시어머니의 강요에 못이겨 시작된 월남의 전쟁통을 겪으며, 억눌린 자아를 오기로 풀어내는
그래서 결국은 사회가 원하는 여성의 모습을 스스로 보여주고,'자 됐냐?'하며 쓸쓸히 눈물 지으며 퇴장하는
씁씁할 한 여성의 슬픈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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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중요한건 나중에 이준익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이런 의도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것 같아
아쉬움이 들었다. 내 생각과 달라서 아쉬운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저런 의도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의 여러가지 설정들이 억지스러움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칭찬하는 수애의 연기는 개인적으로는 캐릭터 자체의 미스테리가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으나, 나중에 '님은 먼곳에'를 오기에 받쳐 거칠게 부르는 장면에서는 살짝 소름도 돋을 정도로
인상적인 연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준익 영화의 가장 전형적인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정만 역할의 정진영은
연기 자체가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역시나 이것도 캐릭터 자체의 미묘함이 있어서 뭐라 평하기는 힘들듯.
(만약 순이의 의도가 정말 상길을 사랑해서, 사랑하는 남편을 찾기 위해 월남까지 온 것이라면, 이 밴드의
남자 멤버들이 이런 순이의 갸륵함에 동화되어 나중에는 몸을 써 군인들을 막아가며 순이가 호이안으로
가게 끔 하는 행동이 살짝 이해도 가지만, 내 생각처럼 오기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 밴드멤버들도
홀딱 속은 것 밖에는 되지 않겠다 ㅎ)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괜찮은 설정이 있었다면, 월남에 참전한 한국군을 그저 돈벌러 왔다는 것으로
직접적으로 묘사한 대사와, 베트콩을 미지의 악당들이 아니라,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로 묘사한 점,
미군들의 잔혹함을 묘사한 점은, 베트남전을 침략한 가해자인 미군 위주로 그린 다른 영화들과는 차별되는
점이라 마음에 들었다.




1. 그런데 3대 독자이면 당시에 군대 면제가 아니었나? 이것도 의문.
2. 헬기타고 프로펠러이 바람에 셔츠가 펄럭이는 남은 사람들의 장면을 보면, 여지없이 <영웅본색 3>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더라.
3. 아무리 그래도 미군이 한국병사 1명을 찾기 위해 수색대를 특별히 조직하거나, 국군이 민간인 여성을
   작전지역에 그렇게 쉽게 데려가는 것도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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