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4 : 미래 전쟁의 시작 (Terminator Salvation, 2009)
아쉬움 가득한 터미네이터라는 이름의 4번째 작품


<터미네이터>는 단순한 영화 한 편, 혹은 시리즈라기 보다는 일종의 신드롬이자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여기서 그 얘기를 다 하자면 연작으로 해도 모자를 터이니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감독, 배우 등 다른 요소들에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터미네이터'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에 관심을 갖고 보게 될 이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실제로 <터미네이터 2>의 경우는 마니아층이 아주 두터운 작품이라 출시된 DVD의 경우만 해도 일반판, SE, CE, UE 등등 수 많은 에디션들과 각국에서 출시한 버전을 따로 컬렉팅하는 유저들이 유난히 많았던 작품으로도 기억되는 영화다. 엄청난 혹평을 받았던 3편을 뒤로하고(개인적으로는 3편의 엔딩이 참으로 마음에 드는 편이다) 4편이 제작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팬들 사이에서 기대보다 우려가 더 컸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도 크리스찬 베일이 존 코너를 연기한다고는 하지만 감독이 맥지(McG)라는 부분이 가장 불안요소였는데, 결과적으로 이 불안요소는 그대로 작용한 편이었고 <터미네이터 4>는(이 리뷰에서는 굳이 한국어 부제목인 '미래 전쟁의 시작'이라는 말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salvation'(구원)이라는 부제가 엄연히 있고 뜻하는 바가 분명 있는데 대중들이 혹할 만한 '미래'와 '전쟁'을 조합한 이 부제목은 역시나 아쉽다. 아마도 이 부제목은 이 영화가 5편, 6편쯤 갔을 때 실제 부제목으로 등장하지 않을까도 싶다), 호평 보다는 혹평이 더 쏟아지는 작품이 되어버렸다.



(이후 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아래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일단 불만 혹은 아쉬운 점을 꼽자면 아무래도 영화에 시나리오와 스토리 텔링 부분을 들 수 있겠다. 만약 이 영화가 '터미네이터'가 아닌 그냥 '미래 전쟁의 시작'이었다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SF 액션 블록버스터라고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이런 영화로서의 장점은 나중에..). 그런데 잘 알다시피 이 영화는 '터미네이터'다. 더군다나 대외적으로 프리퀄이라고 홍보한 것도 아니고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임을 자명하고 있는 작품이라는게 이 영화에 가장 아쉬운 점에 시작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를 보게 될 대부분의 관객은 그냥 액션 영화를 보자가 아니라 '터미네이터'의 새로운 시리즈는 어떨까?하는 궁금증과 기대치로 이 영화를 접하게 되기 때문에 일반 액션영화로서는 절대 이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영화 최대의 적이 '기대치'라는 점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터미네이터 : 살베이션>이 예상 보다 훨씬 더 큰 혹평을 받고 있는건, 이렇게 수년간 새로운 시리즈를 기다려온 팬들로 하여금 '아, 아쉽다'가 아니라 '이건 아니잖아'라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터미네이터라는 세계관에 맞지 않거나 어긋나게 묘사되고 있는 장면들과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잘 알다시피 <터미네이터>는 단순한 SF/액션 영화라기 보다는 자신 만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고 있는 하나의 '세계'이다. 이런 세계관이 있는 영화에서 디테일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시리즈는 너무도 이런 디테일을 놓치고 있는 장면이 많아 더 큰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1,2편을 보면서 상상했던 2018년의 모습은 스카이넷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인간들이 지하나 굴 속에 숨어 살며 존 코너를 중심으로 게릴라를 펼치는 것 정도(그러니까 스카이넷에 비해 굉장히 열악한 시설이라 해야할까)로 생각했었는데, <살베이션> 속에 등장하는 저항군의 위용(!)은 가끔 스카이넷과 동등하게 느껴질 정도다. 특히 가장 이해할 수 없던 장며는 저항군의 본부라 할 수 있는 곳에서 도망치는 마커스를 잡기 위해 대규모 공격과 폭격을 퍼붓는 장면이었는데, 이 장면에서 처음 총성이 났을 땐 나도 모르게 '어, 저러다가 스카이넷에게 들키겠다!' 했으나 스카이넷에 레이더는 자신들 기지 근방 몇미터에만 적용이 되는지, 밤중에 시끄럽도록 펑펑 총과 폭탄을 쏟아부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더라(더더군다나 물 속에는 이들을 공격하는 로봇도 있지 않았던가). 이와 비슷한 장면으로는 마커스와 블레어가 본부로 돌아가던 중 밤중에 장작을 모아 불을 피우는 장면이었는데, 사실 이 장면에서도 속으로 '불을 피우게 되면 스카이넷에서 열감지를 해서 걸리는게 아닌가'했지만 역시 걸리지 않았다. 나중에 스카이넷 본부에 존 코너가 소니 기계 하나 들고 마커스와 연락하여 유유히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존 코너를 막 쫓던 아놀드(!)가 카일 리스의 이야기로 잠시 갔다온 뒤엔 갑자기 거리가 멀어진 점도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었다. 저항군의 묘사에 있어서 A-10 전투기로 스카이넷의 비행선을 격추하는 장면등은 사실 전혀 의외이기도 했다.

이렇게 시나리오 측면에서 '터미네이터'임을 망각하고 단순 'SF/액션' 정도로만 접근하고 있는 부분은 이것 외에도 상당히 많다. 각 인물들의 행동들에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면에 있어서도 아쉬운 점이 많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언급하자면 분명 스카이넷에서는 '카일 리스'를 중요 인물로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끝까지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위에서 계속 언급한 헛점들 가운데 몇가지는 굉장히 이 작품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풀어보자면 나중에 만들어질 5편 혹은 6편에서 본격적으로 풀어내기위해 던져둔 떡밥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과연 그럴까 싶기도 하지만). 왜 스카이넷이 카일 리스를 계속 그냥 두는가. 마커스의 모호한 존재에 대한 설명. 그리고 엔딩에 드러난 마커스와 존 코너의 애매한 결말 같은 경우는 후속편에서 설명하고자 하면 설을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이렇게 후속편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해 던져둔 설정들이라고 해도, <살베이션>의 구성은 너무 헛점이 많았고 팬들로 하여금 아쉬움이 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수준임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감독인 맥지가 이 영화가 '터미네이터'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굉장히 고려하려고 노력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기존에 <터미네이터>를 인상 깊게 보았던 사람들이라면 쉽게 눈치챌만한 오마주와 설정 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것들에 앞서서 전체적인 이야기의 짜임새가 선행되지 못하다 보니 이런 오마주들 마저 감동적이라기 보다는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효과를 낳고 있다(얼마전 개봉했던 <스타트렉>의 경우와 좋은 비교가 될 것 같다). 사라 코너의 내레이션을 오마주한 존 코너의 내레이션도 그렇고, 카일 리스와 아놀드가 분했던 터미네이터의 그 유명한 대사(I'll be back은 정말로 전혀 살리지 못한 것 같다)도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고, 공장을 배경으로 용광로가 등장하는 장면도 그렇고, 100% CG캐릭터로 새롭게 태어난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모습도 <스타트랙>의 경우가 감동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아무리 CG캐릭터라고는 하지만 터미네이터 라기 보다는 마치 이안 감독의 '헐크'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맥지 감독은 이런 장면들과 설정들을 삽입하면서 무언가 이 시리즈의 팬들의 향수와 호응을 불러일으킬 것을 기대했을 것 같은데, 물론 그런 부분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100% 성공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MTV스타일의 화려하고 볼거리 가득한 액션 장면을 만들어내곤 했던 맥지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이런 액션 장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토바이 형식의 터미네이터와 추격전을 펼치는 액션 장면도 괜찮고, 헬기와 비행선을 통해 벌어지는 액션 장면들도 나쁘지 않으며, 대형 로봇이 등장하는 장면도 <트랜스포머>에 까지는 못 미치지만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관객이 얻으려고 하는 재미는 충분히 전달하는 편이다. 그리고 카메라 앵글 같은 경우도 일부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더 실감나도록 하는 앵글을 사용하여(헬기 추락씬 같은 경우) 체감을 더하고 있기도 하다. 액션 장면들이 SF/액션 영화로서 부족한 편은 아니지만 아예 액션을 강조한 오락영화의 길을 택하던지 아니면 마커스를 중심으로한 필립 K.딕의 세계관을 통해 고민하는 철학적 내용으로 담아내었던지(물론 가장 좋은 건 이 두가지의 조화일 것이나) 하면 조금 더 좋을 수도 있었겠으나, 맥지 감독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결국 다 놓쳐버린 꼴이 되어버린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마커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샘 워싱턴이 연기한 마커스 라이트는 사실상 <터미네이터 : 살베이션>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분명 존 코너의 감정선 보다는 마커스의 감정선을 따르고 있으며, 캐릭터가 주는 임팩트도 오히려 마커스가 존 코너보다 나은 편이다. 마커스라는 캐릭터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이기도 한 필립 K.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에서 영향을 받은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래도 샘 워싱턴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연기한 완전한 로봇 같은 이미지보다는 본인이 인간임을 굳게 믿는 존재로서의 혼란스런 가치관을 잘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었으며, 그 여정에 어느 정도 설득력도 있어 보였다. 만약 이렇게 마커스라는 새로운 캐릭터에게 큰 비중을 주고 있는 영화라면 오히려 더 마커스에게 집중해서 그의 가치관과 존재의 비밀까지 파해치는 영화가 되었으면 (존 코너는 거들 뿐) 차라리 색깔있는 시리즈 중 한편으로 인정받지 않았을까도 싶다.

존 코너 역할의 크리스찬 베일은 나쁘지는 않으나 영화 속에서 존 코너라는 캐릭터 자체가 큰 인상을 주지 못하다보니 별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많은 팬들이 '그래도 크리스찬 베일이라면....'하고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을 듯 하다(이건 본인의 연기문제라기 보다는 시나리오상의 문제겠지요). 카일 리스 역을 맡은 안톤 옐친은 <스타트렉>에 이어 자주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한 관객분이 '원래 영어 잘하네'라는 말을 하시던데, 공감한다 ㅎ 카일 리스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라는 점에 비춰봤을 때에는 역시 아쉬운 부분이 들기도 한다. 블레어 윌리엄스 역할을 맡은 문 블러드굿은 딱 기대했던 정도의 모습이랄까. 왠지 메간 폭스를 떠올리게 하는 느낌도 있었다. 초반에 살짝 등장해주었던 헬레나 본햄 카터는 뭐 비중이 크지 않아 별로 할 말이 없을 듯 하고, 이젠 영화배우로서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커먼(common)은 개인적으로는 더 멋진 앨범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이클 아이언사이드는 출연여부를 몰랐기 때문에 등장만으로도 상당히 반가웠었는데 반가움 이상으로 발전할 비중은 없었던 것 같다. 케이트 역을 맡은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아마도 속편을 위한 떡밥을 담당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괜찮았다.




결과적으로 이번 작품 <터미네이터 : 살베이션>은 터미네이터의 새로운 시리즈를 기다렸던 많은 팬들에겐 아쉬운 작품이 될 것 같다. 분명 후속편을 염두해 두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 과연 앞으로 기대로 작용하게 될지 더 큰 불안요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터미네이터>를 액션 영화로만 접근하면 어떤 아쉬움을 자아내는지 스스로 보여준 영화가 아닐까(그렇다면 5편은 아예 철학적 난해한 텍스트로? ㅎ).


1. 이 영화는 터미네이터의 창조자 '스탠 윈스턴'에게 헌정되었습니다.

2. 본문에도 있지만 맥지 감독이 기존 팬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건 느낄 수 있었어요.

3. 롯데시네마 였던가 이 영화 예고편을 패러디해서 '매너전쟁'이라는 캠페인 광고를 만들었었는데, 크리스찬 베일이 극중에서 'we are all dead'할 때 자꾸 매너전쟁이 오버랩되서 곤란했다는 ---;;;

4. 그런데 블레어 눈 주위에 붉은 색은 처음에는 비행선에서 탈출할 때 헬멧을 오래 쓰고 있어 생긴 자국인줄 알았는데, 마지막 장면에 다시 등장하더라구요. 위장이고 하기엔 좀 어색한 것 같은데. 사실 로봇과 전쟁하는데 얼굴에 위장하는건 소용없는 일이잖아요;;

5. 완전 잡담으로, 전 언제부터가 영화에서 헬기타고 떠나기만 하면 <영웅본색 3>가 떠올라요 -_-;;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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