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 ((500)Days of Summer, 2009)
연애의 타임라인을 묘사하는 영화의 방식도 흥미로웠다. 일반적이었다면 500일이라는 시간동안의 이야기를 그릴 때, 감정의 변화에 따라 그러니까 시간의 순흐름에 따라 굴곡을 겪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렸을 텐데 (그래서 500일이 되면 모든 것이 마무리 되는), 마크 웹 감독이 이 '500일'을 그리는 방식은 조금 달랐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시간의 순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유자재로 시간대를 이동하며 두 남녀의 관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연애 초기에는 마냥 좋았던 그녀의 특징들, 공간들이 날짜를 며칠만 뒤로 돌려 보면 오히려 끔찍하고 불편한 것이 되어 버리는 연애의 굴곡을 짧은 호흡으로 전달한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관객에게 '이랬던 남녀가, 저렇게 변했다' 라는 짧은 재미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500일 밖에 안되는 시간 동안에도 수 많은 굴곡을 겪는 남녀 관계를 보여주면서 어찌보면 그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얘기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영화의 구성 방식을 통해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결국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그러니까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것 역시 인생이라는 긴 시간 속에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과정 중 하나라는 메시지를 주기도 하지만, 좀 더 정성적으로 생각해보자면 그렇게 좋았던 그녀의 모든 것을 잊고 살 수 있을 만큼 나는 성숙해졌는가 혹은 익숙해짐으로 인해 처음 느꼈던 설레임을 너무 쉽게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며 나의 추억과 현재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이번 단락은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의 엔딩을 떠올려보면 깜찍한 결말을 선사함과 동시에, 영화가 500일을 다루는 방식에서 보여주었듯이 새로운 1일이긴 하지만 어쩌면 썸머 와의 500일과 똑같은 500일이 다시 한번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들게 한다. 우연 마저 자연이 섭리로 이해하게 된 톰이긴 하지만, 연애는 또 다른 문제다. 가을 양과의 새로운 로맨스가 여름 양과의 로맨스와 완전히 다를 수 있을까?
물론 이런 취향의 주인공들을 내세운 것은 뮤직 비디오 감독 출신인 마크 웹 주변에 아무래도 이런 이들이 더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묻어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일반 관객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는 주인공이라는 점을 은근히 드러내고, 결국은 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아주 작은 장치라고 볼 수도 있겠다. 평소에 음악과 영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이 둘 간의 대화에서 소소한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들은 데뷔작에서 감각적인 영상들을 보여주긴 하지만, 가끔 스크린에서는 과도한 재주를 부려 부담스러운 경우가 있는데 마크 웹 감독의 경우는, 정말 '딱 좋은' 정도였던 것 같다. 세련됨으로 치장할 수 있었음에도 아련함과 따듯함으로 아우른 오프닝 시퀀스와 중간중간 등장한 올드한 느낌의 시퀀스는 감각적이면서도 그 '온도'는 잃지 않는 영리한 연출이었다.
1. 이 영화에는 마이클 니콜스 감독의 1967년작 <졸업 (The Graduate)>의 장면이 직접적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인용이 등장하는데, 특히 졸업의 그 유명한 장면을 패러디한 카메라 구도는 참 흥미롭더군요. 거기에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가 아닌 그들의 다른 곡을 배치한 것도 센스라면 센스!
2. <졸업>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조셉 고든-레빗의 연기 스타일이 고전적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여러 모로 더스틴 호프만이 연상되더군요. 확실히 장례가 촉망되는 배우에요.
3. 극 중 두 남녀의 대화 중에 썸머가 '너 토네이도 겪어 본 적 있어?'라는 대사도 재미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조이 양은 <오즈의 마법사>를 리메이크한 TV단편 시리즈 <틴맨 (Tinman, 2007)>에서 도로시 역이라고 볼 수 있는 주인공 역할을 맡았었거든요 ㅎ
4. 극 중 톰이 입고 나오는 뮤지션 티셔츠를 보는 재미도 쏠쏠해요. Joy Division이나 The Crash의 유명한 앨범 커버 티셔츠들을 입고 나오죠.
5. 극중 언급이 되는 The Smith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추억이 있어서 조금 남달랐었는데, CD/DVD 쇼핑몰을 운영하던 때에 해외뮤직비디오 DVD주문시 스미스를 껴넣으면 사장님이 항상 그랬었거든요, '이거 누가 사겠니?';;; 전 그 때마다 그랬었구요. '네, 이거 한 개씩은 꼭 나가요'. 꼭 스미스 뿐만 아니라 도대체 누가 살까 싶은 앨범들도 꼭 몇 장씩은 판매되죠. 그 때 생각이 나서 재미있었어요.
6. 사운드트랙은 너무 좋죠. 사운드트랙 음반 리뷰는 http://www.realfolkblues.co.kr/1186 여기서 만나보실 수 있어요~
7. 아, 참고로 제가 운영하는 조이 데샤넬 양의 팬블로그는 http://zooey.textcube.com 입니다 ^^; 조이당 여러분은 여기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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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 2010.01.25 21:44
여자인 제가 보기에도 썸머는 너무나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우며, 무서울만큼 잔인한 여자더군요 ㅠㅠ 모든 남자들의 가슴속에는 상처를 주고 떠난 사랑이 한명씩은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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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희 2010.01.25 22:31
별생각없이 보다가...
중간중간쌩뚱맞게 나오던... 뮤지컬같은 장면이 ㅋㅋ 뮤직비디오 감독이라 나온것이군요 ㅋ
마지막에 썸머와의 대화장면이랑.. 면접대기실이 참..
영화를 보고난후 많은생각을 하게하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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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좋아 2010.01.26 00:30
조이 데샤넬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요..
만약 조이가 한국에 와서 길을 지나다가 제 등뒤에서 'excuse me..'하면..
와..드디어 조이가 한국에 왔구나.. 하고 느낄수 정도랍니다..ㅎㅎ
그럼 저는 말하겠죠..
welcome Joy..I always waiting you..
근데 남편은 같이 안왔으면 좋겠네요..ㅎㅎ -
oskar 2010.01.26 00:43
역시 아는만큼 보이는 거군요. 마크웹 감독이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이었군요.
리뷰를 읽고 나니 ost가 듣고 싶어지네요 ㅎㅎ -
Bahia 2010.01.26 01:03
누구나 저 나이때 한 번씩 겪게 되는 사랑의 감정을 아주 훌륭히 그려냈더군요.
사랑이라고 믿었던, 실은 너무나 어려서 사랑인지 외로움인지, 절심함인지 심심함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는
그때의 감정들을 말이죠.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봄날은 간다'가 많이 떠올랐어요.
남자라면 누구나 그 젊은 날의 '그녀와의 이해할 수 없었던 이별' 이야기가 담겨 있는.. -
코코리짱 2010.01.26 01:14
조셉 고든-레빗을 보면서 더스틴 호프만이 연상되셨군요.
저는 "너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10가지 이유"에서 이 친구가 히스 레저와 함께 나온 걸 봐서 그런지...
(그때도 히스 레저 동생인가 싶었는데...)
히스 레저가 연상되는 느낌이예요.
조이 데샤넬은 참 귀여운 아가씨지요. -
진사야 2010.01.26 03:37
이야~ 애정이 철철 넘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전 어제 두 번째로 봤는데, 이거 한 번 더 봐야 하나 심각한 고민 중이네요. 흠흠.
조셉 고든-레빗의 군무 장면은 너무 재미있었죠. 보다가 빵터진 장면 ㅠㅠ
이번 영화를 통해 조이 데샤넬은 제 2순위 선호 여배우로 확실히 자리잡겠네요.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 예뻐요 : ) -
몬스터 2010.01.26 09:28
'내게도 썸머가 있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제목... (나만 그런가? ㅎ)
티셔츠에 찍힌 썸머를 바라보는 포스터보다
500개(세보진 않았는데 그렇다는 얘기가)의 조이의 사진이 찍혀있는 저 포스터가 훨씬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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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2010.01.26 16:18
헉! 주이 디샤넬의 팬 페이지까지 운영하시고 계셨군요.
이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배우로서의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아쉬타카님께 조금 미안해지기도 하네요..
(팬 페이지 놀러가봐야겠습니다. 아쉬타카님은 멀티 플레이어!! ^^) -
뿅 2010.01.27 03:02
어쩜 이렇게 꼼꼼한 리뷰를!
제가 생각했(었지만 잊어버렸)던 것들이 여기 다 있네요.
한 문장 한 문장 공감하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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