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불확실성, 그래서 관조하다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정작 래리는 아무것도 '잘못 한 것'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래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마치 그를 둘러싼 주변은 모두 래리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진냥 그를 둘러싸고 조여온다. 래리는 여기서 심각해진다.
보통 같았으면 영화에서 특별히 자막까지 삽입해 가며 이 랍비와의 만남의 중요성을 이끌어 갔던 구성상, 마르샥이 모두가 공감할 만한 깨우침을 주고 (그것이 허허실실, 공수레공수거 일지라도) 래리가 이로 인해 삶이 변화를 얻는 것으로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코엔 형제는 래리에게 마르샥과의 만남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다. 고대했던 정답을 마르샥이 갖고 있다 없다를 떠나서, 현실은 이렇듯 생각대로, 단계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돌려 이야기하는 것이다.
글에서는 미처 다 언급을 못했지만 래리의 아들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첫 시간에 마리화나를 산 돈 20달러와 함께 라디오를 빼았긴 아들 대니는, 영화 내내 이 돈을 값지 못해 쫓겨다녔지만 성인식 때 랍비 마르샥을 만나 조언을 듣고 라디오와 돈을 그대로 돌려받는다 (마르샥과 대니의 만남을 보면, 만약 래리가 마르샥을 만났더라면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래서 영화는 이 둘의 만남을 성사시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드디어 돈을 돌려주려고 친구를 불렀을 때 그들의 앞에는 커다란 토네이도가 닥쳐온다. 여기서 토네이도가 이들 모두를 덮쳐 죽음이나 큰 사고에 이를 것인가 말 것인가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영화가 계속 말하는 불확실성에 대한 것처럼, 저 토네이도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불확실성 그 자체에 가깝다. 내내 불편했던 돈을 드디어 값을 수 있게 된 순간에 토네이도를 만나 모두 망쳐버릴 현실에 맞닥들이게 된 것은, 역시 '정답은 없다'라는 것과 '생각한대로 되지 만은 않는다'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프롤로그에 사용된 외국어처럼, 영화는 내내 이 언어에서 오는 불확실성을 통해 주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국인 학생 클라이브의 너무나 외국인스러운 딱딱한 발음과 억양은 그를 이해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었으며, 아들 대니가 친구들과 사용하는 언어가 대부분 욕설로 이루어져 있는 것 역시 래리와 대니의 관계의 거리를 보여주는 장치이며, 래리가 아내와의 이혼을 위해 이혼증명서라는 뜻의 랍비 언어를 매번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것 역시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서로간의 불확실성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안테나를 바로 잡으러 올라간 지붕 위에서 옆집 부인의 나체를 보게 되는 것 역시 우연을 가장한 불확실성이다.
사실 영화는 보는 중간에는 키득 거리며 보는 시간이 더욱 길었지만 (마치 홍상수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볼 때와 비슷한 경우였다), 글로 정리하려 되돌아보니 영화 중간 중간 느껴졌던 삶의 대한 깊이가 더 와닿는 작품이었다. 영화 속 래리는 너무 진지한 사람이라 (영화가 말하는 진지함은 '잘못됨'이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임' 이다), 젊은 랍비의 말처럼 그저 관조하지 못했지만, 코엔 형제가 이 영화를 그리는 방식은 분명 관조다. 시리어스 맨인 래리를 주인공으로 두고 래리에게 '그냥 주차장을 한 번 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주차장을 봐'라는 대사는 이 영화의 명대사다 (웃음에서나 깊이에서나 말이다).
2.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보았는데 특별히 디지털 상영이라는 말은 없었던 거 같은데, 이건 분명 필름의 화질 수준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화질이 무척이나 좋더군요.
3.
사운드트랙은 아무래도 아마존에 주문을 해야겠네요. (했습니다 -_-v)
4. 마이클 스털바그의 모습에서 은근히 톰 행크스의 모습이 연상되더군요. 아마 예전 같으면 <레이디 킬러>의 경우처럼 톰 행크스가 했을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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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ge7 2010.04.07 02:07
글잘읽었습니다^^
저도 보다가 빅뱅이론의 유대인으로 나온 사이몬이 여기선 그냥 일반 유대인도 아닌 랍비로 나와서
엄청 킥킥댔습니다...근데 아쉽게도 주변 분들 중에 웃는 분은 없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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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린 2010.04.19 05:55
"그냥 주차장을 한번 봐!"를 최고의 대사로 뽑는 것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네요. 글구 100프로 공감하고요. 이 영화가 절묘하게 나의 삶의 부분 부분과 결합될 거란 묘한 예감을 느꼈어요. 최근 본 영화 중 최고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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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 굿 -_- b 2010.05.26 22:27
와우...
시리어스 맨 최고의 포스팅 이네요 ...
사실 이 영화가 웃기진 않았는데...
여기 써놓으신 글을 보고나서 이해되는 점이 아주 많네요 ...놓친부분도 많구...
감사합니닷 -
NOTHING 2010.07.31 04:24
리뷰가 너무정리도잘되있고 이해도 잘되구.. 잘봤어요 감사해요'-'
근데 궁금한게 있어서요ㅜ
맨처음 그 시퀀스부분? 이잇잖아요
당췌 무슨의민지 이해가 안가거든요...
왜 프롤로그로 그 이상한영상이 나왓는지 뭐그런..
코엔형제영화중에 항상 100프로 이해한영화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벽히 이해하려고 했던 영화도 없구요
근데 궁금해서요...그냥 궁금해서요'-'
( 뭐 감독도 100프로 이해하라고 만든 영화도 아닌것같지만요;;) -
고갱 2011.01.31 11:19
전 이렇게 이해했어요.
한가지 대상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인생의 미스테리 혹은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남편)과 그것을 무시하고 자신이 갖고있는 논리적인 사고,독트린(또는 교리, 교의)에 따라 사는 사람(아내)의 서로 다른 반응이라고요.
그 친절을 배풀었던 친척분이 다시 살아왔으면 어떻고 유령이면 어떻습니까? 자기 남편을 도와주었고 자신의 집의 손님으로 왔으니 설사 유령일지라도 따뜻하게 맞아주어야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애해하려고 자신을 괴롭히거나 혹은 끊임없이 그 대상을 몰아내려합니다.
저는 가슴에 칼을 맞고 차가운 거리로 나간 그 사람이 왠지 현실속에서 운명에 맞서 외롭게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처럼 씁쓸하게 여겨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