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중앙시네마

개봉 영화 리뷰 2010. 6. 1. 13:19 Posted by 아쉬타카




안녕, 중앙시네마


미리 예고된 일이었고 더군다나 마지막 상영회에 가보지도 못했지만, 막상 그 간의 추억을 돌이켜 보려니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중앙시네마는 내게 있어 참 좋은 영화들을 여럿 만나게 해 주었던 소중한 '공간'이었다. 멀티플렉스가 지금처럼 성행하기 이전, 보고 싶은 영화들을 비교적 좋은 분위기 (영화 팬들에게 이 '좋은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요즘들어 자주 느끼곤 한다)에서 관람할 수 있었던 명동성당 아래 작은 극장이었다. 아니 1층에 위치한 1관은 제법 큰 관이었다. 1,2층으로 되어 있어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시야각이 나오기도 했다.




일단 중앙시네마에서 본 영화들이 여러 편 스쳐지나간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 (Dancer In The Dark, 2001)' 였다. 2001년 당시 홀로 극장에서 가서 마지막 회를 감상했었는데, 지금도 기억날 정도로 엔딩 크래딧이 다 끝날 때까지 눈시울을 적셨던게 생생히 기억난다. 사실 영화를 한 해에 100편 넘게 보는 터라 따로 티켓을 확인하거나 기록을 해두지 않는 이상, 제목만으로는 이 영화를 어느 극장에서 보았는지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은데, '어둠 속의 댄서'를 보았던 중앙시네마는 너무도 생생한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중앙시네마는 스폰지를 통해 일본 영화들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는데, 역시 폐관된 씨네콰논과 더불어 일본 영화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소중한 곳이기도 했다. 또한 위의 사진에 나와있는 거스 반 산트의 '파라노이드 파크 (Paranoid Park, 2007)'도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다. '파라노이드 파크'는 2층에 위치한 작은 상영관에서 보았는데 그 아름다운 화면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분위기였다. 아, 이 작은 관을 떠올리니 2008년 보았던 '렛 미 인 (Let The Right One In, Lat Den Ratte Komma In, 2008)'도 떠오른다. 사실 몇몇 장면은 더 큰 스크린으로 보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만, 겨울 스웨덴의 차갑고 고요한 풍경과 잘 맞아 떨어진 분위기였던 걸로 기억된다.





샐리 호킨스 주연의 '해피 고 럭키 (Happy-Go-Lucky, 2008)'는 2층 맨 앞 좌석에서 보았었고, 특별전을 통해 재개봉한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5)'도 일부러 찾아가서 다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런 좋고 작은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극장이 사라졌다는 것에 안타깝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저 '극장'이라는 공간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왜냐하면 대형 멀티플렉스와는 다른 '공간'의 추억과 의미가 있기 때문인데, 중앙시네마는 물론 영화를 볼 때 자주 찾던 곳이긴 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명동 주변을 거닐 때, 항상 명동성당 뒤 조용한 벤치에 잠시 앉았다가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와 코너를 꺽어 잠시 들렀던 '공간'으로서의 의미도 깊은 곳이기 때문이다. 씨네큐브, 씨네콰논, 필름포럼, 허리우드 극장 등은 분명 영화를 상영하는 의미로서의 극장도 극장이지만, 그냥 공간으로서 '극장' 그 자체로도 의미 깊은 곳이라 운영 주체가 바뀌고 개조되고 그런 것이 아닌 공간이 사라져버리는 이 현실이 더 눈물 겨울 수 밖에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지도 명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던 공간이 명동성당과 중앙시네마였기에 앞으로 다가올 후자의 부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 같다.








그냥 막연한 기억에 중앙시네마에 갈 때마다 혹은 자주 사진을 남겼던 것으로 기억했었는데, 막상 마지막을 남기려 사진을 찾아보니 정면 사진 하나 제대로 남겨둔 것이 없어 더 가슴이 아팠다. 누누히 얘기하지만 중앙시네마처럼 많은 추억이 깃든 공간은, 더 많은 좋은 영화를 상영하는 멀티플렉스가 들어선다 할지라도 쉽게 보상받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이제는 추억 속에서만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 되어버린 '중앙시네마'.


중앙시네마의 마지막 편지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짠하다.




안녕, 중앙시네마.

2010.06.01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domiae.tistory.com BlogIcon 도미애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마지막으로 찾았었는데 짠하더군요.
    안녕 중앙시네마! 그동안 고마웠어!

    2010.06.01 14:39
  2. Favicon of http://ssita.tistory.com BlogIcon ssita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곡. 중앙시네마가 없어지는군요. 지금은 지방에 살지만, 몇년전까지만해도 자주 다녔었는데 안타깝습니다. 아비정전을 비롯해서 렛미인까지 많은 영화들이 스쳐지나가는군요. 정말 안타깝네요. 좋은 것들은 어찌이리 다들 사라지는지...

    2010.06.01 15:22
  3. skysurfr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로에 있던 스폰지하우스(씨네코아였던가요?) 없어지고, 명동cqn없어지고, 이번엔 중앙극장이라니ㅠㅠ 애정 가는 곳마다 하나씩 없어지니 착잡하네요.

    2010.06.01 16:39
    • Favicon of https://realfolkblues.co.kr BlogIcon 아쉬타카  수정/삭제

      멀티플렉스 외에 지금 남아있는 작은 극장들도 그리 형편이 좋지 못한데, 지켜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어요.

      2010.06.02 22:01 신고

BLOG main image
the Real Folk Blues
블로그 이사했습니다. realfolkblues.net
by 아쉬타카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840)
개봉 영화 리뷰 (840)
기획 특집 (6)
블루레이 리뷰 (259)
아쉬타카의 Red Pill (23)
음반 공연 리뷰 (229)
애니메이션 영화 리뷰 (66)
도서 리뷰 (15)
잡담 (46)
Traveling (61)
etc (292)
아쉬타카'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