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보았다 (I Saw The Devil, 2010)
악마를 본 자의 대답


비가 추적추적 내리길 오락가락하던 지난 13일의 금요일. 우연치 않게 이 날에 딱 들어맞는 영화 한 편을 보았으니 바로 김지운 감독의 신작 '악마를 보았다'였다. 박찬욱, 봉준호 등과 함께 국내 감독 중 신작을 낼 때마다 기대를 갖게 하는 감독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개인적으로는 그의 이전 작품들을 앞서 언급한 감독들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널 뛰듯 만족스러움의 정도가 각각 달랐고 느끼는 완성도의 차이도 그러했다. 그의 전작들에게서 느껴지는 첫 번째 감정이라면 무언가 조금 부족한 듯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래서 항상 기대는 갖게 하지만 막상 결과물을 보고나면 또 허전함을 느끼게 되곤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제한 상영판정과 삭제 뒤 개봉 등으로 화제가 된 그의 신작 '악마를 보았다'를 보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악마를 보았다'에서는 김지운 감독의 전작들에서 느껴지던 그 부족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과잉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의미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의미없지 않은' 이야기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하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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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악마를 보았다'라는 제목과 이병헌, 최민식이라는 두배우 그리고 분위기를 암시하는 포스터의 문구와 배치 등을 통해 대략적으로 이 영화가 단순히 악마같은 상대와 주인공의 대결 구도가 아닌, 관객에게 누가 악마인지를 묻는 다던가, 혹은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 더한 악마가 되어가는 일반적인 구조로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사실 어떤 측면에서보면 이 영화는 포스터의 홍보문구처럼 분명 '광기의 대결'이자 '복수의 두 얼굴'이라고 볼 수 있으나 내가 본 시점은 오히려 악마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일방적인 구조로 받아들여졌다. 즉, 악마는 최민식이 연기한 '장경철'이고 그를 본 사람은 이병헌이 연기한 '김수현'인 것이다. 영화는 일단 '악마'로 불리는 장경철의 캐릭터를 관객에게 설명한다. 대부분 이런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처럼, 장경철 역시 악마적인 행동들을 먼저 보여준 뒤 그가 어떤 개인적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천천히 알려준다 (물론 이 영화는 장경철의 캐릭터에 대한 연민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개인사를 묘사함에 있어 이런 여지를 두지 않고 있다). 

그와 반대로 김수현을 설명하는 방식은 그가 국정원의 요원임에도 이 특수한 사실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한 여인의 애인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다시 말해 그가 국정원 요원이라는 배경 설정은 있으면 이야기에 큰 도움이 되지만 (캡슐로된 GPS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나 강력계 형사 여럿을 무기력하게 만들 정도의 격투실력) 반대로 말하면 요원이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충분히 끌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이다 (똑같은 예로 들자면 캡슐 GPS는 암시장을 통해 구하고, 본래 격투에 능하다고 설정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장경철을 압도하는 것으로 설정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영화는 애초부터 악마가 또 다른 악마를 상대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악마를 만나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려한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도 악마가 되어버리는 것에 집중하지만, 김지운의 '악마를 보았다'는 그 제목처럼 '보았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악마가 되어가는 듯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던 한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김지운 감독의 작품들은 항상 미장센은 돋보이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굴곡이 있다고 여겼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악마를 보았다'에 와서야 미장센이 그저 보기 좋은 그림으로만 활용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공간에 미적인 매력만이 아니라 영화의 감성과 분위기를 담아낸 좋은 결과물로 느껴졌으며, 장면을 그리는 방법 역시 작정하고 만든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마치 수현의 '이제 시작인데' 라는 대사처럼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 붙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기존의 느껴졌던 아쉬움이 훨씬 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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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은 처음부터 지독한 복수를 결심한다. 그냥 총을 구해 한 방에 죽음으로 이끄는 방식이 아닌, 그리고 무엇보다 단 한번의 고통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지속적이고 상대가 공포에 벌벌 떨게 만들 복수를 구상한다. 그래서 장경철을 흠씬 두들겨 패고 난 뒤 풀어주고, 또 그가 나쁜 짓을 저지르려고 하면 나타나 몸을 부숴트리고 또 놔주기를 반복한다. 장경철의 친구인 태주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냥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 김지운 감독이 정말 복수를 위해 사냥을 즐기게 까지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려 했다면 좀 더 그럴 듯한 설정이 있었어야 했을 것이다. 필요 이상의 폭력이나 간섭으로 일을 그르친다거나 확대시키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구성이 있었다면, 정말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더한 악마가 되어가는 흐름에 따라가게 되었겠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흐름은 없다. 

수현은 치밀하고 무엇보다 복수의 뜨거움보다는 차가운 머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더 큰 고통을 주기 위해서 딱 필요 만큼의 고통만 주고 풀어주는 것에 계속 성공한다. 마지막에 한번 실수 하지만 (사실 이 실수도 그의 부하 요원이 경철이 잠든 줄 알고 했던 말을 경철이 들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겠다), 그 이후에도 재빨리 상황을 수습한 뒤 '니 말대로 너를 과소평가 했던 것 같다'라고 말하며 본인이 준비한 복수의 마지막을 치뤄내는 것을 보면, 이는 분명 '악마' 그 자체가 되는 것보다는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한 차가운 감정이 더 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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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자신의 방식대로 복수를 성공한 수현의 오열은 이 영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훌륭한 엔딩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오열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첫 째로 약혼자를 처참한 죽음으로 잃게 된 슬픔과 자신의 복수 때문에 역시 처첨한 고통을 당한 장인어른과 처제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감정이라면 복수를 하기 위해 스스로도 악마처럼 변해버린 모습 (장경철에게만 복수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전혀 상관없는 가족들에게 똑같이 고통을 돌려주는 방식을 택한 것)과 이제는 절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버린 것에 대한 후회도 담겨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감정이라면 이 '악마'를 잡기 위해 자신이 예상한대로, 원했던 방법으로 모두 복수를 행했음에도 결국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자괴감과 여기서 오는 진정한 공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택한 이 마지막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런 구조의 이야기가 갖는 마지막에는 몇 가지 선택의 옵션이 있는데, 하나는 대부분의 '착한' 영화들처럼 주인공이 마지막에 악마를 죽음으로 응징하지 않고 법의 잣대로 판결하게 되는 것이고 (대부분 이런 이야기의 경우 주인공이 경찰인 경우가 많다), 다른 하나는 마치 '세븐'의 경우처럼 법이 아닌 죽음으로 응징하였으나 이것조차 악마의 의도였다는 것 때문에 더 황량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전자의 경우는 주인공과 한 편이 되어  '법대로 처리하지 말고 저 악마를 그냥 죽여버려'라는 내 안의 악마성을 드러내게 되고, 후자의 경우는 그런 악마성의 결과물로서 황폐함을 얻게 된다고 볼 수 있는데, '악마를 보았다'는 후자와 비슷한 듯 하지만 조금 다른 결말을 택했다고 볼 수 있겠다.

언급한 '세븐'과는 다르게 영화 속 장경철의 죽음은 그가 스스로 계획한 것이 아니라 모두 수현이 계획한 것 그대로였다. 즉, '세븐'의 브래드 피트는 제 손으로 악마를 제거하고서도 결국 악마의 손에 놀아난 것에 대한 후회와 이겨내지 못한 자괴감에 빠져들었다면, '악마를 보았다'의 수현의 경우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복수를 다 행했음에도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대로 복수를 다 이룬다 한들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고, 그걸 알면서도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자신과 이 상황에 대한 공포가 서린 오열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보여준 가장 큰 메시지는 이것이라고 생각된다. 끝을 알면서도 갈 수 밖에는 없었던 주인공이 그 끝을 만났을 때 예상했음에도 겪게 되는 공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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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 상영판정 논란과 더불어 고어한 표현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 일단 극장에서 본 '악마를 보았다'의 고어 수준은 분명 일반 관객에게 있어 (고어 영화를 즐기는 팬들이 아닌)서는 '고어'라 부를 만한 수위의 것이었다. 매번 변하는 등급위원회의 평가 잣대 때문에 이번 제한 상영판정 논란은 '도대체 얼마나 고어하길래?'하는 다른 감상 포인트를 일부에게 제공하고야 말았는데, 물론 '호스텔' 등을 비롯한 고어 영화들에 비해서는 그 수준이 심심한 것도 사실이나, 스타 감독과 배우들이 출연하는 국내 영화에서 표현된 수준으로는 분명 고어한 수준이 맞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이 정도가 뭐가 고어냐?'라는 논란은 전혀 의미가 없다. 이 영화의 핵심은 고어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악마를 보았다'에 담긴 고어한 장면들이 중요한 이유는, 다른 영화에서는 굳이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장면들을 굳이 보여주었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그냥 안보이는 것으로 처리하거나, 소리나 효과로만 처리할 수도 있고, 컷 전환을 통해 결과만 알려주어도 될 것을, 이 영화는 굳이 여러 차례 내리치는 장면이라던가 찢어지는 입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터져나오고 뭉게지는 신체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것은 이 장면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더 크기 때문이다. 가학적이고 공포스러운 표현과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과연 이 복수가 성공한 것인가 아닌가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 대신에 마지막의 오열과 더불어, '이 복수는 처음부터 성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악마에게는 복수를 성공할 수 없다'라는 것을 이야기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요즘은 뉴스에서 이 보다도 더한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운 뉴스들을 접하게 된다. 만약 그것이 내 가족, 내 약혼자의 이야기였다면 누구든지 마음만은 영화 속 수현과 같았을 것이고, 그 중 몇은 수현처럼 복수를 결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이미 그런 일을 겪은 한 남자, 즉 악마를 본 남자의 대답을 들려준다. 여기서 아이러니하면서 공포스러운 점은, 영화 속 수현처럼 이 대답을 충실히 들은 관객이라 할지라도 똑같은 상황에 닥친다면 수현처럼 끝을 알면서도 이 길을 택할 수 밖에는 없을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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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장에 관객들이 정말 견디기 어려워하더군요.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그래서 극중 수현에게 '그냥 차라리 빨리 끝내'라고 소리내어 말하는 분도 계셨던 것 같구요. 이런 몰입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2. 장경철의 학원버스 안 그 천사날개 조명도 인상적이었어요. 이 조명이 처음에는 악마의 눈처럼 보인다는게 흥미로웠죠.

3. 가제였던 '아열대의 밤'이나 '사냥꾼의 밤'보다 '악마를 보았다'가 더 좋은 것 같아요. 만약 이 제목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글의 부제목으로라도 이 제목을 자연스레 썼었을 것 같아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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