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주인공인 래리 (마이클 스털바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그는 곧 대학의 종신 재직권 심사를 앞두고 있고, 아들은 성인식을 치르게 될 예정이며, 옆집 사는 남자가 자꾸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침범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이고, 사회화가 부족한 동생이 조금 걱정거리이긴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런데 영화는 래리의 소개를 다 마치기도 전에 그의 주변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하나씩 꺼내어 놓는다.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은 한국 학생은 낙제만은 면하게 해달라며 슬쩍 돈봉투를 남기고 가버리고, 아내는 오랫동안 이웃으로 살아왔던 '싸이 에이블맨'과의 관계 때문에 이혼을 요구하며, 동생은 도박 혐의로 경찰들이 주목하고 있고, 큰 문제없이 해결될 것만 같았던 종신 재직권 심사에 악영향을 미칠 만한 악의적 편지들이 도착하는 등 너무 갑작스럽게 많은 일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정작 래리는 아무것도 '잘못 한 것'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래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마치 그를 둘러싼 주변은 모두 래리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진 냥 그를 둘러싸고 조여온다. 래리는 여기서 심각해(Serious)진다.
래리가 처한 상황과 그의 캐릭터를 간접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그의 집 안 구성과 디자인 적인 요소다. 이 집안의 구성원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의상 컨셉이 있는데, 딸은 항상 화려한 꽃무늬 잠옷을 입고 나오고, 방안의 벽지 역시 모두 다른 화려한 무늬를 가지고 있고, 집 안의 커튼 역시 방 마다 모두 다른 각각의 화려한 무늬를 하고 있다. 아내 역시 매번 다른 체크 무늬 의상을 입고 있다. 이런 이미지는 일종의 강박에 관한 암시다. 또한 여러 가지 패턴들 속에 살아가는 한 인물에 대한 강박이기도 하다. 관객들에게 강박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매사에 진지한 주인공과는 정반대되는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는 패턴으로 뭉쳐있는 집 안의 이미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래리라는 캐릭터에 공감지수를 드높여 준다.
(이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글에서는 미처 다 언급을 못했지만 래리의 아들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그의 이야기 역시 무언가 인과응보는 일어나지 않고 반드시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 필요한 순간에서 또 한 번 생각지도 않은 요인으로 인해 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마되는 것을 겪게 된다. 즉, 래리의 아들의 이야기도 '정답은 없다'라는 것과 '생각한대로 되지 만은 않는다' 라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스포일러 끝)
사실 영화는 보는 중간에는 키득 거리며 보는 시간이 더욱 길었지만 (마치 홍상수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볼 때와 비슷한 경우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삶의 대한 깊이가 더 와 닿는 작품이 ‘시리어스 맨’이 아닐까 싶다. 영화 속 래리는 너무 진지한 사람이라 (영화가 말하는 진지함은 '잘못됨'이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임' 이다), 젊은 랍비의 말처럼 그저 관조하지 못했지만, 코엔 형제가 이 영화를 그리는 방식은 분명 관조다. 시리어스 맨인 래리를 주인공으로 두고 래리에게 '그냥 주차장을 한 번 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주차장을 보세요'라는 대사는 이 영화의 명대사다 (웃음에서나 깊이에서나 말이다)
DVD 메뉴
DVD Quality
‘시리어스 맨’을 극장에서 보았을 때의 느낌은 ‘와, 디지털 상영도 아닌데 상당히 화질이 좋구나’라는 것이었는데, DVD의 화질에서도 그런 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본래의 촬영 소스가 훌륭하다 보니 마치 얼핏 얼핏은 HD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도 들 정도다. Super 35 소스를 디지털 4K로 마스터한 영상의 장점이 DVD에서도 조금이나마 확인된다고 볼 수 있겠다 (블루레이였다면 아마도 훨씬 더 좋은 영상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작품의 성격으로 미뤄봤을 때 국내 블루레이 출시는 어렵다고 봐야겠다)
돌비 5.1채널을 지원하는 사운드의 경우, 특별한 효과음이나 사운드 적인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는 작품은 아닌지라 큰 메리트는 없지만, 카터 버렐의 사운드 트랙들과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곡들의 전달 시에는 의외(?)로 괜찮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특히 ‘시리어스 맨’은 개인적으로 사운드 트랙을 해외주문을 통해 구매했을 정도로 인상적인 음악들을 수록하고 있는데, DVD에 수록된 사운드 퀄리티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DVD Special Features
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DVD에는 비교적 간단한 부가영상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양에 비해서는 질적인 면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Becoming Serious‘는 제작과정 영상을 담고 있는데, 코엔 형제의 인터뷰 및 배우들이 생각하는 영화에 대한 생각들이 담겨 있어, 코멘터리의 부제를 조금이나마 해소해 준다.
‘주차장을 보세요~’
총평
‘시리어스 맨’은 코엔 형제의 팬들 사이에서만 잠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긴 하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같이 더 큰 화제가 된 작품들과 비교해 보아도 철학적인 면에서는 전혀 뒤질 것이 없는, 그야말로 코엔 형제다운 명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영화적 퀄리티에 비해 DVD의 가격은 몹시 매력적인 수준으로 발매되었으니, 코엔 형제의 팬이라면 무조건 소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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