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 (2010)
개싸움으로 풀어낸 카오스의 세계


나홍진 감독의 2008년 작 '추격자'는 분명 잘 빠진 데뷔작이었다. 영화의 호불호를 떠나서 감독이 하고자 하는 바를 끝까지 밀어붙인 힘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작품인 동시에, 극적인 공감대를 통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던 깊은 색의 작품이었다. 그런 그가 '추격자'의 김윤석, 하정우와 함께 또 한번 호흡을 맞춘 신작 '황해'는, 동일한 배우와 몇몇 추격하는 장면 탓에 비슷한 느낌의 작품이 아닐까 오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전작과는 구성자체가 전혀 다른 감독의 야심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홍진 감독의 '황해'는 의도하지 않았던 카오스를 통해 어떤 결론을 도출하려는 것이 아니라, 카오스 그 자체에 관한 담론이라 해야할 것이다. (이제 고작 그의 작품을 두 작품 보았을 뿐이지만) 어쩌면 나홍진 감독의 스타일이야말로 카오스를 그려내기에 가장 적합한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황해'는 괜찮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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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속 문구처럼 면정학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김구남에게는 그간 겪고 있던 삶의 고통보다 더한 카오스를 맞이하게 된다)

영화는 4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제목은 (택시운전사, 살인자, 조선족, 황해) 단순하게는 주인공 김구남 (하정우)의 현실 혹은 상황을 가리키고 있으며, 더나아가 이 막 구성은 카오스를 그리게 된 영화적 특성을 보완하려는 친절한 구성으로 받아들일 수도 겠다. 어쨋든 '황해'가 흥미로운 것은 초중반까지는 김구남을 주인공으로 그가 매달려있는 구심점에 동조하도록 의도하지만, 갑자기 이 구심점이 변하고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김구남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더이상 김구남 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전작인 '추격자'와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추격자' 같은 경우는 확실한 극적인 구심점이 있었기 때문에 (하긴 '추격자'는 이 구심점을 아예 처음부터 노출하고 시작한 작품이라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관객이 끝까지 공감대를 이어갈 수 있었던 반면, '황해'는 어느 정도 중심의 이야기로 흘러가나 싶더니 이 이야기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에 잠식되어 갈피를 잃게 되는 동시에, '어? 지금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라고 막 느끼게 될 때쯤 이미 카오스의 중심에 서있게 되는, 그러니까 카오스 자체가 구심점이 되어버리는 흥미로운 구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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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는 이번에도 도망자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황해'의 김구남은 자신도 모르는 일에 휩쓸려 도망치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물론 여기서 갈피를 잃었다던가 구심점을 잃게 되었다는 것은,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얘기가 복잡해져서 흔들렸다가 아니라 의도적인 흔들기로 볼 수 있겠다. 제목 역시 '서해'가 아니라 '황해'라고 한 것은 무언가 뿌연 느낌과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모호함을 의도하기 위한 제목이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이 처럼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는 일들에 우연 혹은 더 큰 권력과 시스템에 의해 이용되어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린 영화들은 많은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황해'의 구남은 그냥 휩쓸린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도박을 한 셈이라는 점이다. 조선족으로 많은 빚을 지며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고 미래를 꿈꿀 수 없었던 구남은 여분의 돈만 생기면 마작을 통해 더 큰 돈을 벌려고 하지만 매번 여의치가 않다. 그런 그에게 브로커인 면정학 (김윤석)이 접근하게 되고 김구남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도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초반 마작을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오는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준다. 이 도박이라는 점은 앞서처럼 무고한 인물이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와는 달리 공감대에 있어서 취약할 수 밖에는 없다. 특히나 이 영화에서 관객이 김구남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라고는 그가 꾸는 꿈과 단편적인 이야기들 뿐이라 더더욱 그러한데, 이 점 역시 앞서 얘기한 카오스론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의도적으로 관객들이 구남에게, 일반적으로 주인공에게 느끼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면서 영화가 끝나고, 구남과 면정학 그리고 김태원 (조성하)의 이야기가 모두 마무리 되어도 그저 뿌연 안개같은 모호함만 남게 되는 결과를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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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은 이러한 카오스를 더 극대화 시키기 위해 폭력성과 잔인성을 가미한다. 즉, 깔끔한 액션이 아닌 이른바 '개싸움'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대놓고 이런 '개싸움'의 이미지를 여기저기서 드러내고 있다). 인물들은 상대를 맞아 엄청난 칼부림과 도끼질을 휘두르는데, 여기에는 리얼리즘과 판타지적인 요소를 모두 느낄 수 있다. 개싸움이라고 했던 만큼 주인공들은 멋진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서로 뒹굴고 서로 상처를 입는 싸움이 계속된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개싸움 와중에도 구남이나 명정학은 항상 그 상황을 빠져나오거나 이겨낸다. 특히 이 정도 스케일을 모르고 휘말리게 된 구남의 생명력은 판타지에 가깝다. 전국의 수배령이 내려지고 뉴스 속보로 자신의 얼굴이 연일 나오는 과정 속에서 몇번이나 직접적으로 맞닥들였음에도 동에 번쩌 서에 번쩍하며 도망다니는 구남의 모습을 보면, 이걸 단순히 공권력에 대한 조롱으로 보기에도 너무 과한 건너 뛰기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면정학의 경우는 구남과는 다르게 애초 캐릭터 설정에서 부터 일반인과는 다른 아우라를 갖은 캐릭터로 그리고 있다. 후반부 면정학의 모습을 보면 마치 신적인 존재로까지 느껴질 정도로 리얼리즘을 뛰어넘는 존재로 묘사되는데, 처음부터 판타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리얼리즘에 근거하여 이런 존재의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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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나홍진 감독의 '황해'가 조금 아쉬운 부분은, 이왕 카오스 그 자체를 그리려고 했던 것이라면 구남과 아내의 관한 부분을 좀 더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주인공에게 공감대를 완전히 실어 관객이 '구남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하기 보다는, 이 미칠듯한 개싸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길 의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여기에 관객이 계속 구남에게 여지를 남기도록 하는 부분이 바로 아내에 관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참으로 애매했다. 그러니까 의도한 모호함이 아니라 그냥 애매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결국 죽었는가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엔딩은 그런 의미에서 모호함을 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구남이 영화 내내 오해하고 의심했던 부분에 대한 따듯한 위로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구남이 카오스에 빠져들게 된 동기로 그치지 않고 영화 내내 구남을 지배하는 구석으로 남아, 영화에 극적인 온기를 불어넣으려 하고 있다는 점인데, 개인적으로는 이보다는 오히려 이 감정적일 수 있는 부분을 과감히 정리하고, (어차피 카오스에 집중하려고 했던 만큼) 구남에게도 잔인하리만큼 황폐함을 남겨주었다면 더 강렬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부분이 상업영화로서 마지막으로 포기할 수 없었던 부분일 수도 있고, 아니면 구남에게 주는 위로가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이왕 가기로 마음 먹은거 더 밀어 붙였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 황폐함과 카오스의 끝으로 말이다 (쓰고보니 너무 잔인한 바램인 것 같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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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황해'는 다시 한번 나홍진 감독의 스타일을 확고히 하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아무리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 해도 감독이 자신의 스타일을 꺽으면서까지 대중과의 타협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즉, '나는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지만 관객에게는 내가 생각해도 불편한 작품일 것 같다'라고 생각될 때 타협을 하게 되는 것 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추격자'에 이어 좀 더 자신의 스타일이 투영된 '황해'를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더 확고히 한 것은 그의 팬에게도 팬이 아닌 이들에게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팬이던 팬이 아니던 앞으로 나홍진 감독의 신작이 나왔을 때 더 확실한 선택을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1.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갔다던 카체이스 장면은 나쁘지 않았으나, 너무 카오스를 강조하려는 나머지 필요이상으로 카메라를 흔들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조금만 덜 흔들었어도 좀 더 멋진 카체이스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네요. 개인적 바램은 이렇지만, 감독은 분명 더, 더를 외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ㅎ

2. '추격자'의 마지막 슈퍼 장면에서 많은 이들이 허술함을 지적했던 점을 미뤄봤을 때, '황해'에는 이를 뛰어넘는 비약과 건너 뜀이 훨씬 많은 편이에요. 특히 구남이 도망치는 부분에 있어서 그렇죠. 여기서 너무 많이 '풋..'하게 되면 이 후의 개싸움도 빠져들기 어려울 것 같아요

3. 하정우, 김윤석의 경우 스크린에 보여지는 표정만 봐도, 얼마나 '찌들어 있는지' 그 질감이 느껴지더군요. 두 배우 모두 쉽게 '황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듯 싶네요.

4. 초반 김구남이 살인을 계획하는 시퀀스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멋진 장면이었네요. 이런 카오스가 주제인 작품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장면이라는 점만 빼면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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