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Dooman River, 2009)
경계와 경유 그리고 약속


장률 감독의 신작 '두만강'을 보았다. 그는 전작들을 통해 메마르고 황폐하고 남겨진 인물과 장소를 통해 자신 만의 인장을 깊게 새겨왔었다. 항상 장소에 국한되는, 혹은 그곳이어야만 가능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장률 감독은 이번에도 역시 '두만강'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영화를 완성했으며, 이 곳은 감독 자신이 자란 곳이기도 헀다. 어쩔 수 없이, 아니면 필연적으로 자신이 겪고 느꼈던 과거가 담길 수 밖에 없었던 '두만강'은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극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그저 상황에 인물들을 던져두고 멀리서 지켜보거나, 상황에 처한 인물들 역시 처연하게 일들을 겪어가는 인상을 깊게 남겼던 전작들과는 달리, 조금은 더 감정적인 동요가 일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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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변의 한 작은 마을. 이 곳은 북한 함경도에서 탈북해오는 북한 주민들이 경유하는 곳으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리적 배경에 놓인 곳이다. 장률 감독은 바로 이 민감한 두만강 변의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많은 비유를 들어 관객들이 더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한 편, 정 반대로 특별할 수 밖에는 없는 이 곳에 살고 있는 인물들 (아이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정서가 특수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어른들로 대변되는 외부의 요인들이 아이들의 세계를 어떻게 잠식해 가는 지에 대한 과정을 섬뜩할 정도로 강렬하게 그려낸다. 

결국 '두만강'의 일들은 '경계'와 '경유'의 의미로 인해 발생하게 된다. 경계 넘어의 곳인 동시에 돌아가기 위한 경유지였으나 예전에는 존재했던 경계 간의 다리가 사라지면서 결국 그대로 남겨지게 된 두만강 변의 마을. 삶과 죽음의 거리 역시 그 어느 곳보다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이 곳은 마치 카톨릭에서 이야기하는 '연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난 때문이기는 하지만 모든 마을 사람들이 항상 같은 옷을 입는 모양새, 배고픔에 경계를 넘어온 아이들 중 하나가 죽어도 '숨이 없어'라고 덤덤히 말하고는 그냥 갈 길을 가는 아이들의 뒷 모습, 그리고 영화 내내 드리워진 겨울의 차가운 공기까지. 마치 이 마을은 어떤 외부의 힘도 깨기 어려운 철옹성이라기 보다는, 조금만 물들여도 쉽게 물들고 마는 순백의 편견없는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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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탈북자들의 문제가 점점 커지면서 이 마을의 어른들은 '어쩔 수 없이' 어느 한 편에 서서 탈북자들을 공안에 신고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마을의 변화는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감정적으로 전달되고, 아이들의 세상 역시 어른들의 그것으로 물들어 간다. 그런데 여기에는 글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음'으로 이해되는 부분, 그러니까 누구하나 쉽게 단정지을 정도의 절대적 악한은 등장하지 않는다. 순희가 차려준 밥상을 받고는 무릎 꿇고 감사를 표시하던 탈북자의 행동은 거짓이 아니었으며, 그가 순희에게 범한 일은 물론 옳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그 역시 가해자라기 보다는 피해자로서 볼 수 있는 면이 분명 존재하며, 탈북자들을 도왔던 같은 마을 사람을 신고한 다른 마을 사람들의 행동도 보상금을 타려고 한 일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던 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 이야기는 정치적인 메시지에 대해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장률 감독은 정치적일 수 밖에 없는 부분을 애써 피해가지 않고 오히려 분명하게 드러냄으로서 결과적으로 정치적으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보편적인 가치를 얻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역시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보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입장에서 바라볼 수 밖에는 없는 조건에 있다. 두만강 건너 편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또 다른 건너 편에서 바라보게 되는 시선 말이다. 상영 후 가졌던 대담에서 장률 감독이 했던 얘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 중 하나는, 그가 살고 있는 중국이나 연변에서 두만강 건너 편을 바라보면 전혀 경계가 느껴지지 않는데, 남한에 와서 두만강 쪽을 바라보면 경계가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우리 역시 남한이라는 정치적, 지리적 공간에 살고 있는 이들로서 또 다른 경계와 맞닿아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떨쳐내려해도 결국 단순하게 넘길 수는 없는 이야기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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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약속의 의미. 이 영화를 아이들의 세계를 중심으로 그린 이유는 아주 미약한 희망 때문이거나 혹은 그 미약한 희망마저 사라져버린 더 큰 슬픔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영화에서 어린 창호와 정진은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약속을 하게 되는데, 결국 이 약속을 지켰기 때문에 이 아이들은 어른들과 현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룰에 따라 상처를 받게 된다. 정진은 위험을 무릎쓰고 창호와의 약속을 지켰고, 창호 역시 자신 만의 방식, 아니 아무것도 방법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방식으로 정진과의 약속을 지키게 된다. 이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아이들이 지켜낸 약속의 의미는 결코 희망적이지 만은 않다. 상상 속의 다리가 희망을 꿈꾸게 하기 보다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씁쓸함을 안기는 것처럼, 아이들이 스스로 지켜낸 이 약속의 방식은 더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맨 처음 '두만강'을 장률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하면서 몹시 감정적으로 '극적'이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정말로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자극적인 영상과 음악으로 치장된 영화들에 못지 않은 감정적인 떨림이 있었다. 실제로 너무 심장이 뛰는 나머지 가슴을 부여잡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들  정도의 동요가 있었는데, 장률 감독의 작품에서 이런 극적인 떨림을 겪게 될 줄은 사실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 큰 인상을 주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포스터에 새겨진 '삶의 슬픔이 침묵으로 흐른다'라는 문구를 그저 머리로만 받아들일 수 밖에는 없었는데, 보고 나니 이 문구에 담긴 정서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두만강'에는 삶의 슬픔이 침묵으로 흐른다.





1. 영화가 끝나고 장률 감독과 정성일 평론가가 함께한 대담은 정말 의미있고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일단 장률 감독에 작품 세계와 '두만강'에 대한 깊은 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는데,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정도로 공감되고 궁금했던 이야기들을 가득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성일 평론가와의 친분에서 오는 '까페 느와르' 농담들과 더불어 정말로 '재미'있는 얘기들도 많았구요.

2. 이번 '두만강' 시사회는 장률 감독특별전을 통해 상영되는 방식이었는데, 그래서 인지 시네마테크를 찾은 관객들의 대부분이 장률 감독의 팬분들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오는 질문들의 깊이가 결코 가볍지 않아 2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3. 장률 감독의 전작들을 인상깊게 본 분들은 물론, 그렇지 않았던 분들에게도 조심스레 추천하고픈 작품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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