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2012)

아버지 세대의 생존에 대한 씁쓸한 연민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자 (2005)'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윤종빈 감독의 신작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보았다. 이 작품은 윤종빈 감독의 신작이어서 기대가 되었던 점도 있지만, 최민식, 하정우, 조진중, 마동석, 곽도원 등 한꺼번에 이름을 늘어 놓으니 뭔가 일을 벌려도 확실히 벌일 것 같은 배우들 때문에 더 큰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다. 개봉전 시사를 통해 들려오는 평들도 한국판 '대부'다, '좋은 친구들'이다 라는 얘기 등 더욱 기대를 갖게 하는 것들이었기에, 오랜만에 걸죽한 한국영화 한 편을 볼 생각으로 극장을 찾았더랬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지면 '대부'보다는 '좋은 친구들'에 더 가까운 작품이었다). '범죄와의 전쟁'은 제목이나 풍기는 뉘앙스에서 알 수 있듯이 흔히 말하는 폭력 조직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막상 보게 된 영화는 조직 폭력과 남자들의 세계 그 자체보다는, 영화의 부제처럼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살아 남아야만 했던 아버지 세대들에 대한 풍자와 연민이 담긴 '생존'에 관한 영화였다. 즉, 겨우 2~30년 전이었던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조명하는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가 결국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고 있다는 씁쓸한 담론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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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최민식이 연기한 '최익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적당히 뇌물도 먹고 뒷돈도 챙기던 부산 세관 직원으로 시작해 우연한 기회에 마약을 손에 쥐게 되면서 만나게 된 조직 폭력배 두목 '최형배 (하정우)'가 먼 친척이라는 것을 이용해, 급속하게 조직 폭력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고 이후 정치사회의 시류를 이용하고 또 이용 당하며 이 세계에서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맛보았던 최익현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하정우가 연기한 최형배나 조진웅이 연기한 '김판호'로 대표되는 부산 조직폭력의 세계는 말그대로 '세계'로서 존재한다. 최익현이 생존해야할 세계 말이다.


최익현이 생존해야할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세계에는 이들 조직 폭력배들의 세계 말고도 이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 그리고 최익현이 부양해야 할 가족이라는 세계가 더 있다. 영화 속 최익현의 행동을 보면 단순히 본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움직인다기보다는 그것이 그릇된 방법이었을지언정 가족,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다음에 자신의 아들을 출세시키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아서 더 좋았는데, 중간중간 이를 암시하는 장면들과 마지막에 등장한 현재의 이야기를 통해 최익현(아버지 세대)의 삶이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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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이 처한 시대가 의롭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주인공 역시 의롭지 않다는 것에 있다. 즉, 조직폭력배를 그리지만 미화할 만한 구석을 거의 만들지 않고 있고 (그럼에도 매력적인 건 관객의 심리를 이용한 것일까;;) 범죄와의 전쟁에 앞장 선 검사 역시 정의로운 듯 하지만 그 방식이나 결과에 있어서 결국 이 시대에 편승한 인물 그 이상으로 그려지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 최익현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 쉽게 말해 '어지러운 시대에 휘말려 버린 주인공'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 시대를 철저하게 이용해 살아 남은 존재로 그리면서도 묘한 연민이 들도록 남겨두었는데, 이것이 바로 '범죄와의 전쟁'이 일반적인 범죄 영화나 갱스터 영화와는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그렇다고 완전히 신파로 끌고 가서 가족과 아들을 출세시키기 위해 뭐든지 하는 인물로 그리지도 않았고, 반대로 난세의 영웅의 성공과 몰락으로 끌고 가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생존해야 했다는 이유가 보여 좋았고,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그의 행보가 '살아있어'서 좋았다. 누군가는 취향에 따라 차라리 더 갱스터 영화이길 바랬을 수도 있고, 반대로 최익현에게 더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바랬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미묘한 지점을 줄타는 윤종빈의 선택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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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최익현을 그리는 방식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바로 '권총' 아니 '빈총'의 이미지였다. 야쿠자와의 거래를 통해 최익현은 선물로 권총 한 자루를 선물 받게 되는데, 최형배로 대표되는 조직 세계와 태생적으로 완전히 같은 편이 될 수는 없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최익현은 이 권총을 자신 만의 무기(자신감)로 항상 몸에 지니게 된다. 그리고 이 권총을 자신이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중요한 순간에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중요한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이 총이 빈총임을 몇 번씩 중요하게 확인시켜준다. 사실 최익현에게 연민이 들었던 가장 큰 지점은 바로 이 빈총의 이미지였다. 대사에서는 장난처럼 '제발 총알 좀 구해달라고'라는 말도 나오지만, 어쩌면 그런 위치에 있었음에도 총알 하나 구할 수 없었던 그의 존재와 허울만 그럴싸하고 속은 텅 빈 빈총을 무기로 삼아 생존해야 했던 그에게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겹쳐보이는 순간 연민이 느껴졌던 것이다. 아마도 윤종빈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정서는 바로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빈총으로 살아남았던 아버지들의 관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을 옹호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그저 연민의 시선이 느껴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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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했던 흐름을 흥미로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이를 배경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아직까지도 관통하고 있는 정서에 대해 시대와 시대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던져놓은 작품이라 더 마음 들었던 경우였다. 배우들의 열연은 말할 것도 없고, 조연들의 연기가 특히 하나 하나 '살아있는' 것이 느껴져 그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드는 작품이었고.



1. 미리 무대인사 시간을 확인한 뒤 예매해서 감독과 배우분들이 함께한 무대인사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잠원동에서 온 하정우씨도 재미있었지만, 최민식씨가 인사를 할 땐 극장에서 모두 '최민식! 최민식'을 열호하기도!!


2. 조범석(검사) 역할을 맡은 곽도원씨의 연기와 캐릭터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더 풍성해지는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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