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 호스 (War Horse, 2011)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고전의 감동



존경해마지 않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이지만 의외로 조용하게 적은 상영관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던 '워 호스 (War Horse, 2011)'는 어쩌면 최근 영화계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우직하고 클래식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최근 몇 달 간 극장에서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평소 남들보다 울컥하기를 잘 하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이기는 하지만, 평소에 잘 일어나지 않는 일요일 오전 시간임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상대적으로도 많은 양의 눈물이었으리라. '워 호스'가 감정을 자아내는 방식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직설적이고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때 같으면 '에이~ 이거 다 아는, 뻔한 방식이잖아'하며 울컥할 포인트를 스스로 지나쳤겠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 달랐다. 자주 얘기하는 점이지만, '전형적'이라는 건 결코 '별로다'와 동일하게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전형적이 되었다는 것은 그 방식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이라는 걸 이미 입증했다는 것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전형적이라도 그 핵심을 깨닫고 제대로만 전달한다면 충분히 관객을 울리고 웃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는 바로 이 방식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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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호스'의 줄거리는 예상할 수 있는 그 것, 딱 그 정도다.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말과 어린 주인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예상되는 대부분의 얘기가 그대로 등장한다. 물론 여기에 가장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워 호스'는 제목 그대로 사람이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철저하게 '말'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처음 '조이'의 주인이 되는 알버트 (제레미 어바인)와 조이의 우정을 비중있게 다룬 것이 아니라, 조이의 입장에서 겪게 되는 일들을 따라간다고 해도 좋을 만큼 조이에게 포커스가 맞춰져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워 호스'의 이야기는 정말로 대부분 예상할 수 있는 바이고, 그 예상하는 바도 최근의 것이 아니라 매우 고전적 이야기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눈물이 났다는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그리고 영화를 본 날이 동물농장이 하는 일요일 오전시간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치 TV동물농장을 보고 울컥하는 것처럼 이 영화에는 다 알면서도 울 수 밖에는 없는 감동의 포인트가 있었고, 이 포인트를 우직하고 정직하게 그려내고 있어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후반 부의 감동 포인트야 말할 것도 없고, 초반 알버트가 조이와 함께 처음 밭을 갈 때부터 눈물을 흘렸으니 이거 뭐 말 다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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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영화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단순히 알버트와 조이와의 끊어질래야 끊어질 수 없는 우정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조이의 입장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겪게 되는 일들의 비중을 과감하게 열어두었다는 점이다. 즉, 보통 같았으면 관객들은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알버트와 조이가 재회했으면 좋겠다 라는 한 가지 생각만을 하게 되지만, 이 경우는 조이가 중간 중간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비중을 적지 않게 그리고 알버트와 마찬가지로 따듯한 사람으로 그리면서 누군가는 '그래 알버트와 만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조이가 다른 사람과 맺은 인연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니 그의 입장도 무시할 순 없겠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이가 겪게 되는 일들이 전쟁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전쟁영화라기 보다는 결국 스필버그 영화답게 가족영화의 틀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잘 살펴보면 조이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가족과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는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소작농으로서 부모와 함께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알버트야 말할 것도 없고, 중간에 만나게 되는 독일군 형제며 어린 딸과 할아버지의 관계에서도 '가족'이라는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는 조이가 그들 가족에게 어떤 의미로 (혹은 어떤 결핍의 해결이나 치유의 의미로) 전달되었는가를 이야기한다. 이것이야말로 스필버그가 '워 호스'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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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으로도 스필버그와 촬영 감독 야누즈 카민스키는 완벽에 가까운 순간들을 선사한다. 스필버그와 카민스키는 이 고전적 스토리를 다루면서 영상 측면으로도 상당히 고전적인 방식들을 채용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으로 알버트가 살고 있는 집과 집 근처의 풍광을 그리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이 연상될 정도로 지는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한 강한 역광의 사용과 더불어 이 시퀀스에서 자주 사용되는 타이트한 클로즈업(배우의 얼굴 외에는 노을 빛이나 하늘 만이 자리잡고 있는)의 활용은, 이 고전적 스토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뭐랄까, 전형성을 넘기 위해 일부러 어울리지 않는 새로운 옷을 입으려 고민하기보단 예전에 가장 잘 어울렸던 옷을 잘 다려서 다시 꺼내 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워 호스'의 가장 명장면 중 하나는 역시 조이가 전장을 누비는 장면을 들 수 있을 텐데, 사실 이 장면이 담고자 했던 의미까지 100% 와닿지는 않았던 장면이었지만 그 영상미나 장면 자체가 주는 압도하는 느낌 만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스필버그는 종종 자신의 작품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나 논리로 설명되기 보다는 그저 두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는 없는, 설명 불가한 순간을 또 만들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참호 속을 질주하는 조이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던 군인들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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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워 호스'는 뻔하고 유치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지점, 말도 안되는 판타지라고 여겨지는 지점이 분명했음에도 이런 의심을 적어도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갖을 수 없었을 정도의 우직한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극장을 나와 평정심을 찾은 뒤 다시 이야기를 생각해보니 곱씹어 볼 것도 없이 '그게 말이 돼?' '너무 심한 판타지잖아'라는 생각들이 바로 들었지만, 글의 맨 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워 호스'는 그럼에도 최근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던 영화였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힘이다.



1. 말이 주연이라서 돋보이지는 않지만 좋은 배우들이 참 많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예언자'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닐스 아르스트럽과 '해피 고 럭키'에서 역시 좋은 연기를 펼쳤던 에디 마산, '토르' 동생 톰 히들스톤과 루핀 교수 데이빗 튤리스 그리고 셜록 배네딕트 컴버배치까지.


2. 조이 역의 말 연기가 정말 대단합니다. 정말로 연기를 하더군요! 총 14마리의 말이 나눠서 연기를 했다고 하는데, 정말 연출로 만들어냈다기 보다 말이 연기를 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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