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2012)

나의 첫사랑과 90년대에게 바침



'건축학개론'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린 남자주인공을 맡은 이제훈 때문이었다. '파수꾼'을 통해 깊은 인상을 남긴 그였기에 신작이 기대되었던 것인데, 그래도 볼까말까를 고민하던 차에 들려온 시사회 평들은 더 큰 호기심을 갖게 했다. 그 가운데는 '시라노 : 연애조작단'을 떠올리게 한다 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시라노..'역시 처음에는 이민정만 믿고 갔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던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건축학개론' 역시 눈물을 이끌어낼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빼먹을 뻔 했는데 이제훈 만큼이나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한 것은 바로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었다. 나의 90년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전람회를 떠올렸을 때, 만약 이 작품 역시 전람회를 그런 추억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면 분명히 감동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건축학개론'은 '기억의 습작'만으로도 소름 돋게 만든 것은 물론, 나중에 가서는 안경이 뿌옇게 변할 정도로 눈물을 주르륵 주르륵 흘리도록 만든 '감동의 걸작' 이었다.



ⓒ 명필름. All rights reserved


#1 첫 사랑


'건축학개론'을 정의하는 첫 번째 단어는 아마도 '첫 사랑' 일 것이다. 첫 사랑을 담아낸 영화들은 대부분 애틋하고 간절하며 그립기 마련인데, '건축학개론'은 그 가운데서도 굉장히 디테일이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누구나 자신의 첫 사랑을 떠올려 보았을 때 미묘하지만 잘 나타나지 않았던 행동이나 감정들까지 이 영화는 정말 깨알같이 담고 있었다는 얘기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하나하나 다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 지난 첫 사랑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을 때 '맞아, 나도 저랬어' 하는 부분이 정말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디테일은 자연스럽게 공감대로 연결되었다.


너무나 내 추억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극중 어린 승민에게 감정이입이 되었고, 어린 서연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내 것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런데 이 영화가 첫 사랑을 그린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더 좋았던 점은, 첫 사랑의 상대에 대한 애정을 추억하는 것 보다는 누군가를 처음 사랑했던 '나'를 추억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나'의 행동과 감정 하나하나의 디테일이 깨알 같았기에 영화 속 승민에게 100% 감정이입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전 누군가를 첫 사랑했던 나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졌다. 그래서 쓸쓸한 동시에 행복함이 들었다. 이런 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 '건축학개론'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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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90년대


첫 사랑의 추억과 더불어 '건축학개론'이 이끌어낸 또 다른 추억은 90년대에 관한 것이었다.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많은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1970년대 생인 이용주 감독은 1980년대 생들까지 공감할 수 있는 90년대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당시의 패션이나 유행하던 브랜드의 활용은 물론이고 유행하던 가요들까지 적절히 배치하고 있어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그 때를 떠올리게 만든다. 아마도 영화가 어린 승민의 입장에서 진행된다는 점 때문에 같은 남자로서 더욱 공감할 수 밖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브랜드 티셔츠와 청바지 하나에 집착하던 모습이나 잘보이고 싶은 이성을 만날 때는 매번 갖고 있는 옷중에 가장 좋은 옷을 입으려고 했었던 추억이 떠올라 애잔한 감정마저 들었다.


그런데 단순히 '나는 별 것도 아닌 것을 그 때는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아니라, '그래, 그 때는 그것이 내게 무엇보다 중요했었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말 못할 무언가가 뭉클하며 끓어올랐달까. 내게 있어 첫 사랑 그 이상으로 중요한 시기였던, 어쩌면 지금까지 짧게나마 살아온 시절 가운데 가장 소중했던 시절이었던 90년대를, 가감없이 그대로 추억할 수 있어서 행복함과 동시에 말 못할 감정에 울컥했던 것 같다. CDP와 독서실, GUESS와 힙합 바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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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집'이라는 것


영화 제목이 '건축학개론'이기도 하지만, 제목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상당히 자주 '집'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반문하고 있다. 어린 서연이 제주도에서 홀로 서울에와서 독립해 살게 되는 공간으로서의 '집', 서연과 승민이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 공간으로서의 '집', '압서방'으로 불리는 이른바 강남이라는 상대적 우월감의 지역적 표현으로서의 '집', 어른이 된 서연이 아버지를 위해 고향 제주에 지으려고 하는 '집', 서연에게 고백하려는 승민이 그녀에게 선물해주고 싶어 직접 디자인 한 '집', 어른이 된 승민이 결혼을 위해 준비해야만 하는 '집', 그리고 승민의 어머니가 재개발되어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오래된 정릉의 '집' 등 '건축학개론'은 다양한 의미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 사회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집'이라는 존재에 대해 영화는 소소한 것부터 현실적인 것까지, 영화는 '건축학개론'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첫 사랑의 추억이라는 주제와 병행하여 은연 중에 '집'에 관한 이야기를 슬며시 들려주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좀 더 풀어서 자세하게 해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워낙에 앞선 주제들의 추억에 흠뻑 빠지다보니 분석적으로 달려들 동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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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건축학개론' 속 승민의 이야기에는 나의 90년대가 너무 많이 녹여져있었다. 완전히 영화 속 이야기라고 받아들였더라면 그냥 슬프거나 그냥 즐겁거나 했을 텐데, 이것이 내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다보니 이렇게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그야말로 오만가지 감정이 돋아나는 느낌이었다. 울고, 웃고, 후회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와중에 어느 덧 영화는 또 한 번 '기억의 습작'과 함께 젖어들고 있었다. 아.....나의 첫 사랑과 90년대를 심하게 떠올리게 했던 애틋하고 아픈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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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이런 한국영화에서 재미를 위해 등장하는 캐릭터는 너무 동떨어져 있거나 너무 오버하는 경향이 있어서 오히려 낯뜨거워질 때가 많았는데, '납뜩이'는 그야말로 존재 자체가 납득되는 매력적인 캐릭터였어요 ㅋ 그 깨알 같은 대사들과 연기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소리내어 웃게 만들었네요 ㅎ

2. 처음 옥상에서 '기억의 습작'이 나왔을 때 정말로 거짓말 안보태고 온몸에 다 소름이 돋았어요 ㅠ 정말 '버틸 수 없더'군요 ㅠㅠ

3. GUESS 티셔츠에 관한 에피소드는 정말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막 터져나오더군요. 어쩔 수 없이요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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