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멸망보고서 (Doomsday Book, 2001)

대한민국 사회 풍자 3부작



김지운 감독과 임필성 감독이 함께 옴니버스 형식으로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영화 팬으로서 당연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인류멸망보고서'라는 제목 역시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는데, 로봇이 등장하는 포스터와 더불어 이 두 감독이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무척이나 기대도 되었다. 개인적으로 제목과 포스터 등에서 미뤄 짐작한 이 영화의 분위기는 '인류멸망'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맞게 굉장히 어두운 스릴러나 드라마였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유머의 비중이 상당히 큰 풍자 성격이 짙은 작품이었다. 특히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천상의 피조물'을 제외한 임필성 감독의 나머지 두 편 '멋진 신세계'와 '해피 버스데이'는 풍자 성격이 아주 강한 작품이라 조금 의외스럽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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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는 제목에서 부터 이미 풍자의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는데, 좀비물의 아이디어를 가져와 현대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강도 높은 풍자와 조롱을, 공포 섞인 분위기로 그리고 있다. '멋진 신세계'는 개인적으로 풍자와 공포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선택한 작품이라고 생각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게임 '데드 라이징'처럼 좀 더 좀비물의 특성을 극대화했다면 오히려 좀 더 효과적인 풍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머의 강도나 풍자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방식이 조금 직접적이다보니 오히려, 이 풍자물과 좀비물 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 같아 보였다. 사실 메시지로만 보자면 세 개의 작품 가운데 가장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실제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전개라), 그 섬뜩함을 좀비물이라는 영화적 특성과 더불어 더 가혹하게 그렸다면 (유머를 조금 덜하고), 영화를 보는 이들이 '그래, 우리도 저 좀비들과 다를게 뭔가' 하는 섬뜩한 풍자와 공포를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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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천상의 피조물'은 로봇의 자각이라는 SF의 흔한 설정을 좀 더 구체화하고 확대하여, 로봇이 '열반(Nirvana)'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미래 사회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 이런 소재는 이미 여러번 있어 왔기 때문에 신선함을 갖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짧은 러닝 타임 동안 비교적 효과적으로 그 분위기를 잘 전달했다고 생각된다. 김지운 감독의 작품답게 메탈릭한 로봇의 디자인과 나무로 이뤄진 절 내의 디자인이 절묘한 미장센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미래 사회를 표현한 심플한 디자인들도 과하지 않아 효과적이었다. 사실 '천상의 피조물'의 이야기는 장편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오히려 단편으로 만든 것이 장편에서 범할 수 있는 위험들을 잘 빗겨간 선택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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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작품인 '해피 버스데이'는 상당히 모험적인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인류멸망보고서'가 전체적으로 조금 모호해 진데에는 '해피 버스데이'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데, 노골적인 풍자와 과감한 메시지 전달 방법은 조금 당황스러운 점이 없지 않았지만, 다시 생각해볼 수록 참 과감했다는 생각이 남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이야기가 비슷한 아이디어들을 여러번 생각해보았었는데, 그 아이디어를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영화화로 옮긴 감독의 과감한 모험은 대단했으나 개인적으로는 여기에도 풍자를 생각한 나머지, 좀 과하다 싶게 적용된 웃음 코드와 포인트가 전반적으로 애매해지는 결과를 만든 것 같다. 즉,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영화들 처럼 대놓고 낄낄 거리며 웃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디스트릭트 9'처럼 실감나지도 않는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결과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정말 다시 생각해도 과감한 시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과감하다는 것은 유치한 것을 거대하게 포장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굉장히 노골적인 풍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인데, 이 메시지를 더 많은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면 좀 더 웃음의 강도를 조절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 아무래도 제작비 문제로 처음 기획했던 대로 완성되지 못한 것이 더 완벽한 구조를 갖추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나 싶네요.


2. 임필성 감독의 신작을 어서 극장에서 보고 싶습니다!


3. 봉준호 감독이 감독 출신으로서는 까메오 연기에 수준이 매번 가장 높은 것 같아요 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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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E BEATZ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쩌면 마지막 연출작이 될지도 모를 임필성 감독 신작에 기대를 해봅니다.

    2012.04.18 15:02
  2. THE BEATZ  수정/삭제  댓글쓰기

    넵, 박해일씨와 송새벽을 주인공으로 현실적인 코미디물을 만드신다고 합니다.

    2012.04.1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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