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커 (Stoker, 2012)

불안함으로 가득 찬 공간의 영화



박찬욱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 '스토커 (Stoker, 2012)'를 보았다. 미아 바시코브스카와 니콜 키드먼, 매튜 구드 같은 좋은 배우들 혹은 재료를 가지고 박찬욱 감독이 어떤 요리를 해낼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평소 자신이 잘 하는 요리를 해낼지가 가장 기대되는 점이었는데, 헐리웃에서의 첫 작품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우울함과 우아함, 그리고 기괴함까지 엿보이는 미장센과 이미지, 분위기는 누가봐도 박찬욱 영화라는 점을 알 수 밖에 없게끔 하고 있어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다. 영화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연출해 내는 이안 감독 같은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색깔과 스타일을 견고히 하고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는 감독들이 더 많은데, 박찬욱의 '스토커'는 그런 점에서 자신의 색깔이 분명해 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스토커'는 내러티브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이미지가, 분위기가 앞서는 영화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극중 인디아의 심리 변화나 갈등을 많은 관객이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매튜 구드가 연기한 찰리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디아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에 대해 이런 반응과 갈등을 겪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까지 볼 수 있을 텐데, 이 심리를 박찬욱은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인디아의 입장에 조금 만 더 빠져들고자 하면 더 복잡하고 슬픈 이야기가 성립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인디아의 심리에 100%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인디아의 집 내부 공간이 주는 분위기, 인물들 간의 대화나 시선이 교차될 때 흐르는 긴장감은 그 자체로도 '불안함'을 만들어 내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영화 내내 흐르던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안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커'에서 어떤 사건이 직접적으로 일어나거나 밝혀질 때 보다는 오히려 그 이전에 무언가 불안한 그 상태를 묘사하는 것들이 더 매력적이고 집중되었던 것 같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웬트워스 밀러의 각본이 히치콕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상당히 고전적인 우아함과 동시에 영화적인 구도와 장치들로 채워져 있다. 흥미로웠던 점은 각 캐릭터들을 어떤 공간에 넣어두고 그 공간과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이미지로 녹여버리는 부분이었는데, 류성희 미술감독도 함께 참여했나 하고 생각될 정도로 기존 박찬욱 영화에서 보여주던 분위기를 거의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한 폭의 이미지가 되어버린 배우들의 연기와 외모는 탁월한 캐스팅과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찰리 역을 연기한 매튜 구드의 매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왓치맨'에서 오지맨디아스 역할을 맡아 강한 인상을 주었던 그는, 불안함과 그 분위기 자체가 핵심인 이 영화에서 바로 그 표정과 실루엣 만으로 우아함과 동시에 공포스러움을 탁월하게 표현해 낸다. 개인적으로 '스토커'하면 앞으로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은 바로 매튜 구드의 그 미소가 아닐까 싶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또한 '스토커'는 여백을 다루는 솜씨가 능란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공간과 인물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바로 그 공간과 인물, 인물과 인물 사이에 발생한 여백을 두고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해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리듬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는 데에 또 다른 공로자는 바로 영화 음악을 맡은 클린트 만셀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 박찬욱 감독이 헐리웃에 진출했다고 했을 때 가장 반가웠던 스텝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을 맡은 클린트 만셀이었는데, 역시 그 기대에 맞게 불안하고 우울하면서도 우아하고 슬픈 음악으로 영화 전체를 표현해 내고 있었다. 또 하나 '스토커'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편집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비교적 많은 장면에서 교차 편집을 통해 인디아의 심리를 복합적으로 표현해 내려 했으며, 직접적인 표현 없이도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해 냈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이야기 자체가 주는 강렬함까지 더해졌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박찬욱 감독이 가장 잘하는 것을 자신의 방법으로 거침 없이 표현해 냈다는 점에서 여전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벌써부터 그의 헐리웃 두 번째 작품은 어떤 작품일지, 또 누구와 함께 하게 될 지 기대된다.
아마도 많은 헐리웃 영화 관계자들이 이 영화를 통해 박찬욱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느꼈으리라 의심치 않는다.



1. 각본가가 배우로 너무 알려져 있다보니 각본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 이상으로 화제가 논의가 되는 경향이 있는데, 전 이에 대해 특별한 의견은 없어요. 박찬욱 감독이 선택했고, 표현했고, 그 결과물을 본 거니까요.


2.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를 보았을 때도 그랬는데, '스토커' 역시 보는 순간 박찬욱 영화라는게 너무 확실해서 반갑더라구요. 과연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역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기대가 되네요.


3. 아, 미처 정정훈 촬영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는데, 이 영화는 박찬욱의 헐리웃 데뷔인 동시에 정정훈의 데뷔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인상적인 촬영이었던 것 같아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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