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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끝까지 단단하고 새롭기까지 한 역대급 사극



지상파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 한 것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최근엔 별로 재밌게 본 작품이 없었는데, '육룡이 나르샤' 역시 첨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었다. 아마도 제목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퓨전 사극 냄새가 나는 '육룡이 나르샤'라는 제목이 처음 내용을 몰랐을 땐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봐야지 했던 이유는 역시 배우들이었다. '베테랑' '사도' 등으로 한창 뜨거웠던 유아인을 비롯해 김명민, 천호진, 신세경 등은 물론 개인적으로 '미생' 이후 더 주목하게 된 변요한까지 출연한다는 소식은, 최소한 일단 시작은 해봐도 좋겠다는 결론을 내기에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였던 배우들은, 이 작품을 더 역대급으로 만들어 내는 완벽한 조각이기도 했다.


50부작에 달하는 내용을 하나 하나 다 이야기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전체적인 감상과 마지막 회 위주로 간략하게 이야기해볼 텐데, 첫 째는 역시 완성도다. 보통 50부작이나 되는 TV드라마의 경우 완성도 측면에서 있어서 들쑥날쑥한 경우가 많은데, 그건 국내 드라마의 퍽퍽한 제작 여건도 부정적으로 작용했겠지만 긍정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 전반적인 리듬감이나 균형을 위해 강약을 조절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데, '육룡이 나르샤'는 50부작 전체가 고른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한 회도 그냥 지나치는 화가 없을 정도로 짜임새 있고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는 빠른 리듬감을 보여주었다. 시청자들이 끝나고 나면 '벌써 끝났나?'라고 자주 얘기했던 건 그냥 팬심 만은 아니었다.


사극의 특성상 여러 인물들과 관계 들이 등장하는데 그 다양함을 복잡함의 나열이 아니라 깨알 같은 연관성으로 엮어 냈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서는 여러 다른 인물들과 관계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빠지고를 반복해도 완성도의 붕괴나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여러 회차가 다 인상적이었지만 그 가운데 하나만 꼽으라면 역시 25회를 꼽지 않을 수 없겠다. 땅새와 연희의 이야기가 감정적으로 절정을 치닫는 가운데, 땅새와 무휼, 영규까지 목숨을 건 액션 시퀀스는 과연 한국 TV드라마에서 이 정도 수위와 연출의 액션을 본적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손에 땀을 쥐는 엄청난 회였다. 액션 측면으로만 봐도 잠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긴 호흡으로 가져간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 액션 시퀀스를 비롯한 이 회차 전체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 밑바닥에는 땅새와 연희의 감정선이 아주 깊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육룡이 나르샤'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주제를 감정적으로 분출시킨 장면으로서, 볼거리와 감동을 동시에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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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스포라는 말이 있듯이, 실제 역사를 묘사하는 작품의 방식도 참 인상적이었다. 그 절정은 역시 정몽주와 이방원이 선죽교에서 나눈 단심가와 하여가 시퀀스였다. 누구나 학창시절 배우고 외워서 잘 알고 있는 이 내용을, 머리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전달해 내 이제야 비로소 두 사람의 진심과 심정을 해아리게 만드는 드라마의 힘은 대단했다. 이 밖에도 우리가 흔히 배워서 잘 알고 있는 수 많은 역사 속 순간이나 인물, 사건 들이 등장할 땐, 마치 이 사실을 이제야 처음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해 내는 연출이 돋보였다. 그러니까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우습게도, '그래서 다음에 어떻게 되지?'라는 궁금증 마저 들게 만들거나 혹은 '아..그래서 그랬던 거구나...'하며 비로소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나는 이것이 '육룡이 나르샤'가 달성한 가장 큰 성공이 아닐까 싶다.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 그것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뻔하다고까지 생각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놀랍게도 처음 듣는 얘기처럼 만들어 낸 연출과 구성은, '육룡이 나르샤'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마지막 회는 주로 에필로그를 담는 형식으로 그려졌는데, 보통 에필로그를 그리게 되면 축축 처지면서 정리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육룡이 나르샤'는 마지막 회에서도 마치 더 이야기를 끌고 가려는 듯한 에너지를 보여주며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50부작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SBS드라마인 '뿌리 깊은 나무'와의 연결고리가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방영했던 이 드라마를 '육룡이 나르샤'는 아주 영리하게 활용했다. 특히 마지막 회는 '육룡이 나르샤'의 50회이자 '뿌리 깊은 나무'의 0회 정도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그 고리가 단단했다. 실제로 많은 시청자들은 그 연결 고리를 하나 하나 발견해 내며 이 역사의 계속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뿌나'를 보며 느끼지 못했던 감정선을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말 다음 주 부터 '뿌나'를 방영하는게 새로운 드라마를 하는 것 보다 나을 지도 모르겠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이도(세종)를 이방원의 아역 연기자로 등장시킨 것도 정말 좋았다. 이도의 존재가 이방원이 꿈꾸었던 자신을 포함한 존재들의 가치를 모두 조금씩 닮아 있었다는 점에서, 그를 연기한 아역이 다름 아닌 이방원의 아역 연기자라는 점은 묘한 감동과 생각할 거리를 던지기에 충분했다.


50부작이라는 긴 호흡의 드라마를 쉬지 않고 긴박하게 달려 온 '육룡이 나르샤'는, 배우들의 놀랍고 가슴을 울리는 연기를 바탕으로 마지막회가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단단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익숙한 역사에 생동감을 불어 넣은 역대급 사극이었다.

아... 다음 주 부터는 정말 뭘 보지. 둘 중 하나는 봐야겠다. '육룡이 나르샤'를 1회부터 다시 정주행하거나 '뿌리 깊은 나무'를 다시 보거나.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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