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오를 때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쓴 웃음을 짓게 되는 영화가 있다. 개인적으로 어느새 부턴가 이런 우울한 스타일의 영화들을 찾고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표현이 썩 어울리지는 않지만, 최근 이러한 욕구를 시원하게 해갈해줄 만한 작품을 하나 접하게 되었다.

 쥬드 로, 나탈리 포트만, 줄리아 로버츠, 클라이브 오웬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 '클로저(Closer)'가 바로 그것이다. ‘클로저’는 국내 관객들에게 외면당한 것과 같이 관객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기 보다는 씁쓸함과 불편함을 전달하는 영화다. 차마 보기 힘들 정도의 끔찍한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고도의 심리 게임으로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스릴러도 아니지만, 서두에 언급했던 것과 같이 극장을 나오면서 결코 즐거운 기분으로 나서기는 힘든 영화인 것 같다.

이러한 이유는 바로 너무나도 사실적인 사랑에 대한 묘사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 네 남녀의 사랑은 마치 누구나 맘속으로는 다 알고 있지만 자신의 이미지를 고려해 차마 말 못하는 공공연한 비밀들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또한 누구도 선뜻 말하기 꺼려하는 소유와 이기적인 얼굴을 한 현실적인 사랑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에 끝에 돌아오는 비참하고도 참담한 현실 또한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어쩌면 마이클 니콜스 감독은 결코 우아하고 아름답게만 포장할 수 없는 사랑에 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거꾸로 가장 아름다운 배우들을 주연으로 캐스팅 했는지도 모르겠다.


'클로저'에서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씁쓸한 분위기로 이끄는 것은 바로 음악이다. 사실 영화 시작과 함께 흘러나오던 노래의 첫 소절을 듣고 ‘아, 이 노래는 내가 분명 좋아하게 될 거야’ 하는 확신이 들 정도로, '클로저'는 시작부터 음악에 압도당한 채로 감상을 시작하게 된 케이스였다. 영화의 첫 부분 길거리에 많은 사람들 가운데 쥬드 로와 나탈리 포트만이 슬로우 비디오로 서로를 마주보며 지나치게 되는 장면에서 흐르던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의 'The Blower's Daughter'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압축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대부분의 사랑받는 O.S.T가 그러하듯 이 영화만을 위해 따로 만들어진 곡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듣는 이에 가슴에 오랫동안 남는 곡이다.


데미안 라이스는 개인적으로도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지만, 사실 'The Blower's Daughter'가 수록된 데뷔 앨범 'O'는 이미 2003년에 발매되었다. 아일랜드 출신의 싱어 송 라이터인 데미안 라이스는 데뷔 앨범으로 영국과 미국의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기도 했다. 포크 록이라는 장르의 특성처럼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무엇을 강요하고 요구하기 보다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울림이 느껴지게 만드는 곡들이 담겨있다. 조용한 서두에 반해 폭발하는 감정으로 마무리한 'Delicate'를 시작으로, 여성 보컬이 매력적인 미디움 템포 곡 'Volcano', '클로저'에 수록되어 강한 인상을 주었던 'The Blower's Daughter', 현(絃)이 돋보이는 'Amie' 등 거르고 버릴 곡 하나 없는 완성도 높은 앨범이라 하겠다.


'클로저'는 수 백 만 명이 볼만큼 친절하고 유쾌한 영화는 아니지만 소리 없이 잊혀져 버리기에는 너무 아쉬운 작품이다. 또 하나 74세의 노장 감독이 연출한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욱 믿어야 할지 모르는 연출력과 젊은 감각도 놀랍다.
뭣 하러 돈 내고 씁쓸하고 우울해 지는 영화를 보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을 수 있지만, '클로저' 정도면 데미안 레이스의 곡과 함께 한 없이 우울해져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에비에이터’의 하워드 휴즈처럼 노랫말을 자꾸 되 네 인다. 'Can't take my eye's off you..Can't take my eye's off you...'.

2005.03.03


Damien Rice - the Blower's Daug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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