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커티스는 누가 뭐래도 로맨틱 드라마 작가 가운데 대중의 코드를 가장 잘 읽어내는, 또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에 있어서만은 탁월한 재주를 갖은 영화계의 이야기 ‘꾼’이다. 이러한 평가에 대한 원인은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썼던 전작들의 면면을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1994년작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을 통해 감독인 마이크 뉴웰 보다도 더 주목을 받았던 그는, 이 영화를 시작으로 이른바 ‘리차드 커티스 식 로맨틱 드라마’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노팅 힐>은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로미오와 줄리엣 류의 신분차이를 극복한 러브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사실 이 같은 류의 스토리는 이미 대중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진부한 스토리인지라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기도 하면서 가장 진부해지기 쉬운 소재인데, 리차드 커티스는 이러한 진부한 스토리를 이어가면서도 작은 소품같은 아이디어로 관객들을 지치게 하지 않고, 마지막 클라이맥스에 가서는 관객들로 하여금 다 알면서도 감동받을 수 밖에 없게 만드는데에는 가히 천부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노팅 힐>이후 그가 쓴 시나리오는, 당시엔 무명에 가까웠던 르네 젤위거를 단번에 스타덤에 올려 놓았던 작품 <브리짓 존스의 일기>이다. 평범한 여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이 영화 속 사랑이야기를 먼 남의 얘기가 아닌 가까운 자신의 이야기로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사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도 M.나이트 샤말란 같은 놀라운 반전이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같은 새롭고도 완벽한 스토리라기 보다는, 평범함 속에 작은 아이디어와 감동으로 관객에게 어필한 영화였다. 이러한 그가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마음껏 담은 영화가 어떠할지는 사실, 그리 어렵지 않게 예상되었었다. 하지만 리차드 커티스는 이번에도 역시 누구나 다 알고 있고 쉽게 예상되는 이야기를,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오를 때에 모두 다 감동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어 놓았다. 타이틀 속 그의 이야기를 빌려 이야기하자면, 자신의 쓰고 싶은 러브 스토리를 전부 영화화 하려면 아마도 평생을 다 써도 못할 것 같다고 생각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러면 한 영화안에 모두 표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었다고 한다. <러브 액츄얼리>에 에피소드 하나, 하나는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영화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을 만큼의 얘깃거리가 있는 스토리 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현실적으로도 그렇고, <러브 액츄얼리>라는 큰 틀안에 포함시킨 것은 참 잘한 결정인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나쁜 의미에서가 아닌, 좋은 의미에서 러브 스토리에 ’블록 버스터‘라 할만 하다.





몇 편의 러브 스토리를 하나로 집결시킨 블록 버스터 급 스토리 만큼, <러브 액츄얼리>에 출연한 배우들의 면모도 대단하다. 이미 리차드 커티스와 여러 번 함께 작업을 했었던 휴 그랜트와 콜린 피스 등을 비롯하여, 오랜만에 <스타워즈>의 제다이의 이미지를 벗고 평범하고도 진솔한 역으로 분한 리암 니슨, <미스틱 리버>에 숀 팬과 팀 로빈스, 케빈 베이컨의 숨막히는 연기 대결 속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았던 로라 리니, 이제는 연기 하나 하나, 표정 하나 하나에서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엠마 톰슨, 최근에는 <해리포터>의 스네이프 교수로 더 잘 알려진 알란 릭맨, <슈팅 라이크 베컴>과 <캐리비안의 해적>을 통해 주목받았던 키이라 나이틀리 등....특별히 한 두 명의 주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출연한 배우가 모두 주연급인 이 영화에서 배우들은, 마치 모두 같은 비율로 나뉘어진 영화 포스터와도 같이, 각자 정해진 스크린의 경계 속에서 자신 만의 연기를 함과 동시에,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연기를 펼치고 있다. 위의 언급한 배우들 말고도 우리 눈에 익은 배우들이 잠시나마 출연하는데, ‘미스터 빈’으로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영국 코미디 배우 로완 와킨슨도 잠시나마 ‘멀쩡한’이미지로 출연하고 있고, 용감한 영국 수상에게 제대로 한 방 먹는 미국 대통령 역할로는 빌리 밥 손튼이 출연하고 있다.



이 외에도 <와일드 씽>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데니스 리차드도 아주 잠시 출연하는데, 그야말로 아주 잠시 그것도 긴장이 모두 풀어질 무렵 등장함으로, 그녀의 팬이라면 영화를 반드시 끝까지, 끝까지 주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엽기적(?)인 노장 록 가수 역할로 열연한 빌 나이히와 깜찍한 비서 역할을 맡았던 마틴 맥커천 등은, 아직까지는 우리 귀에 낯설은 이름과 얼굴이지만, 이 영화를 통해 앞으로 나올 작품에서는 반드시 관객의 관심에 대상이 될 것 같다.




러브 액츄얼리>가 기프트세트로 출시된다고 하였을 때, 수록되기를 가장 간절히 바랬던 아이템은 바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었다. <킬 빌 Vol.1>과 마찬가지로 <러브 액츄얼리>또한 적재적소에 삽입되어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사운드트랙은 극장을 나온 관객들로 하여금 아주 오랫동안이나 그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하였다. 타이틀의 서플을 보다 보면 알 수 있지만, 감독인 리차드 커티스는 영화음악에 남달리 신경을 쓰고 애착을 갖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역시 대단한 음악광인 것도 알 수 있다(영화 음악에 관련된 서플엔 감독의 영화 음악 선택에 관련된 인터뷰가 담겨있는데, 마지막 장면에 삽입될 음악을 놓고 자신의 집안에 음반들을 알파벳 AA, AB의 순서로 들어보고 BEA에서 Beach Boys의 곡을 골랐다고 하니, 그의 음악에 대한 세심함과 소장하고 있는 음반의 규모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러브 액츄얼리>에 사운드트랙은 대부분의 사랑 받는 사운드트랙이 그러하듯 곡 자체가 좋은 곡들로 선곡된 것에 더하여, 적재적소에 사용되었다는 것에 있다.



화려한 듯 하지만 그 속에서 남다른 외로움을 느끼는 수상에 깜찍한 일탈을 함께 했던(또한 휴 그랜트의 꽤 괜찮은 댄스실력도 맛 볼 수 있었던) Girl Aloud가 리메이크한 ‘Jump'. 영화 속의 리메이크 버전이 고스란히 수록된 ’Christmas is All Around'. 컴템포러리 재즈로 대중의 사랑을 흠뻑받은 노라 존스의 ‘Turn Me On', 머라이어 캐리의 최고의 캐롤 히트곡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우리 귀에 너무도 익숙한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등이 수록되었다. 이 외에도 텍사스(Texas), 조니 미첼(Joni Mitchell),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등의 주옥같은 곡들 또한 수록되어 있어,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권할 만한, 사운드트랙 시디 한 장만으로도 충분히 소장 가치가 있는 음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한 곡도 버릴 것이 없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먼저 최근 출시된 타이틀은 기프트세트와 일반판 모두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디자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프트세트는 많은 이들이 정말 크리스마스 선물 다운 기프트세트와 패키지 디자인을 기대하였을텐데, 이미 많은 분들이 실감하셨듯이 결과적으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 패키지로 출시되었다. 가장 말이 많은 것은 박스패키지인데, 박스 디자인은 그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되지만(물롬 많은 분들이 여기에도 불만을 재기하고 있지만은..), 디스크를 수납한 형식이 조금은 아쉽다. 차라리 디스크를 박스 안에 빨간색 아마레이 케이스를 하나 더 추가하여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오랜만에 기프트세트 다운 기프트세트를 기대했던 많은 이들에게는 조금은 아쉬운 패키지가 된 것 같다. 하지만 본편의 화질과 사운드는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액션이나 SF 장르가 아닌지라 화질은 그다지 기대하지 않고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나, 인물의 클로즈업 장면을 비롯한 대부분의 영상은 상당한 수준급의 화질을 보여주었다. 특히 인물의 클로즈업이 유난히 많은 영화답게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레퍼런스급의 화질을 보여주고 있다. 사운드는 역시 장르가 드라마인지라 특별히 채널의 분리도나 우퍼의 활약을 기대할 만한 장면이 많지 않지만, 위에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사운드트랙이 흐를 때는 제법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다. <러브 액츄얼리>DVD타이틀에 또 하나 눈에 띠는 점은 바로 메뉴 디자인이다. 간결하고도 단순한 색감과 이미지를 통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실 <러브 액츄얼리>가 그것도 기프트세트의 경우에도 1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것은 조금은 의외이다. 아직까지 SE나 다른 버전의 출시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러브 액츄얼리>정도면 2장 분량으로 출시되어야 마땅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총 1장의 수록된 서플먼트들도 아주 흥미롭다.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음성해설 중 하나로 기억될 감독과 주연 배우들이 참여한 코멘터리는, 오랫동안 함께 작업을 해온 이들이 함께해서 그런지 좀 더 친근하고, 다양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장난기어린 배우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단지 한 장면에 출연했을지라도 감독인 리차드 커티스가 배우 하나 하나에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스크린에 배우들이 스쳐 지나갈 때 마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언급하며 느낌을 전달하는 부분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코멘터리 외에 삭제장면도 수록되어 있는데, 감독이 먼저 삭제장면에 관한 짧은 설명을 한 뒤 삭제장면이 흐르는 시퀀스는 상당히 좋았다. 그리고 ‘The Storytellers'라 이름 붙여진 서플에는 메이킹 다큐 성격의 영상이 수록되었는데, 배우들과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 제작 뒷 얘기와 촬영장의 에피소드를 전해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영화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사운드 트랙에 관련된 서플에서는, 감독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음악이 쓰이게 된 계기와 전하려고 했던 느낌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영화 속 빌리 맥의 ’Christmas is All Around'의 뮤직비디오와 몇 가지 영화 예고편을 수록하고 있다.




글 / 아시타카

200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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