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윌리스의 정체에 관한 놀라운 반전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M.나이트 샤말란 감독에게, [식스센스]는 더할 나위없는 자랑거리이자, 또한 늘 따라다니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런 그가 더 이상 전작과의 비교를 거부하며 철저하게 배일에 쌓여진 채 내놓은 작품이, 바로 이 작품 [싸인]이다.

- 식스센스는 더 이상 거론하지 말자

정말 그랬다. 개봉 전 극장에서 [싸인]의 예고편을 보았을 때에는 그저, 미스테리 서클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것밖에는 짐작할 수 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저 멜 깁슨이 출연한다는 걸 겨우 알정도 분량의 장면들과 빠른 카메라워크로 진행되는 미스테리 서클의 모습만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조금 더 효과적으로 관객들의 머릿 속에서 전작 [식스센스]를 지워버리기 위한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의도된 하나의 묘수였다.

[싸인]의 분위기는 조금 의외였다. 마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보는 듯한 감각적이면서도 인상적인 오프닝 장면부터가 그랬다. 또한 스릴러 장르의 특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 정도는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그림들이었지만, ‘스릴러’라기 보다는 ‘공포’로 불러도 좋을 만큼 영화 내내 심장을 조여 오는 긴장감은, 그의 전작들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부분들이었다. 또한 그가 좀 더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가미한 요소는 바로 유머였다. 이것도 상당히 의외였는데, 극도로 공포스런 분위기로 몰고 이끌다가도 곧바로 웃음을 참기 어려운 장면들을 배치하여 관객의 심장박동수를 이리저리 혼란스럽게도 하였다. (심지어는 가장 공포스럽고 감동적인 장면에서도 유머스런 장치를 배치하여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이 영화는 또한 흥미로운 상황과 공간의 설정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주된 사건은 모두 주인공 멜 깁슨의 한 한적한 옥수수 농장을 배경으로, 그의 집안에서 이루어지지만, 그렇다고해서 영화의 주된 원인이 되는 현상들이 이곳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 세계의 인간들을 공포에 몰아넣을 정도의 스케일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커다란 스케일의 장면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의 집안 TV를 통해 보여지는 뉴스만으로도, 오히려 더 두려움과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설정은 또한 미디어에 대한 의존도와 고립된 공간적 상황을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스케일과 혹 지루해질 수 도 있는 부동적 공간 설정을 우려하여, 영화 중반에는 가족들이 잠시 집을 나와 읍내를 구경하며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상황을 인식하는 장면을 삽입하였다.



영화 [싸인]은 제작초기에는, 이미 배우로서가 아닌 감독으로서도 오스카를 수상하였던 멜 깁슨과 아직 두 편밖에는 감독하지 않았었던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룰 것인가 하는 것도 관심거리였다. 하지만 샤말란 감독은 멜 기습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감독으로서 원하는 것을 100%주문했고, 멜 깁슨 또한 이를 충실하게 따르며 자신의 연기를 펼쳤다.



멜 깁슨 외에도 [글래디에이터]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펼쳤던 조와킨 피닉스도 새로운 장르에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할리 조엘 오스몬드의 연기가 워낙 뛰어났었던 지라 이와 비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만, 멜 깁슨의 아들, 딸 역할을 맡은 두 아역 배우들도, 최근에 대부분의 아역 배우들이 보여주는 어린이 답지 않은 성숙(?)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영화는 [식스센스]와 마찬가지로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을 지닌 탓에 스토리에 관한 이야기는 자칫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으로 삼가도록 하겠다.

비록 [식스센스]비스타 시리즈 타이틀이 두 장이 똑 같은 디스크가 수록되어 리콜 되는 어처구니 없는 오점을 남기기는 하였지만, 브에나 비스타는 DVD매니아들에게 있어서는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는 제작사라 하겠다. 일단 아나몰픽 와이드 스크린의 화질은 영화를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실제로 제작한 미스테리 서클도 실감나게 표현된다.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이전에 영화들에서도 유난히 음악을 쓰는 걸 싫어했다는데, [
언브레이커블]에서도 그러하였고, 이번 영화 [싸인]에서도 완성된 음악을 듣고서는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 밖 에는 없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고 한다. 또한 관객들이 느끼기에도, 감독은 어떨는지 모르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심장을 멎게 했던 것은 음악에 힘이 컸다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통해 듣게 되는 사운드는 상당히 높은 퀄리티를 보인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 영화의 특성상 실감나는 사운드는 옵션이 아닌 필수 요건인데,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음악들이라던가, 한적한 농장에서 들려오는 각종 벌레, 스치는 풀 소리들, 그리고 무엇인지 모를 존재가 가족들을 점점 조여 오며 내는 각종 효과음들은 좌우, 우퍼 스피커를 통해 실감나게 전달된다.

스페셜 피처로는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삭제 장면, 그리고 스토리보드와 멀티앵글이 포함되어 있다.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에는 [싸인]의 초기 구성과 스토리 구성, 감독의 해설로 들어보는 제작 과정, 특수 효과, 음악 제작 과정 등이 수록되어 있다. 다큐멘터리를 보다보면 샤말란 감독이 얼마나 꼼꼼하고 자신이 하고자하는 바를 100% 스크린에 나타내기 위해 노력하는지 느낄 수 있다. 스페셜 피처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서플 중 하나는 바로 샤말란 감독의 첫 외계인 소재 영화를 담은 짧은 필름인데, 그가 어린 시절 처음으로 만들고 촬영했던 공포(?)영화를 수록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샤말란의 연기 실력도 볼만 하다.

- 눈에 보이는 것만이 반전은 아닐 것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었다는 것만큼(설마 아직까지도 이 결말에 놀라는 분들은 없길 바라며..)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충격적인 결말은 없지만, [싸인]의 마지막 장면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내포하고 있는 의미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엄청난 반전이 될만한 사실이다.

마치 [미션 임파서블]에서 톰 크루즈가 사건을 되돌려 하나하나씩 추리해 나가듯, 멜 깁슨이 아내의 사고를 회상하며 놀라운 반전을 하나씩 알게 되는 컷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식스센스]그 이상의 소름을 돋게 한다. 영화에서는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는 덕에 모두를 구할 수 있었지만, 만약 정말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일일 것이다.

2003.03.11
글 / 아쉬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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