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 (重慶, 2007)
한계를 마주하다


재중동포 출신으로 <망종> <경계>등을 연출했던 장률 감독의 작품 <중경>.
사실 <망종>이나 <경계>등을 입소문을 통해 듣기는 했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아 영화를 접하지는 못했었기 때문에,
이 작품 <중경>이 저에게는 장률 감독과의 본격적인 첫 만남이었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런 영화를 보고 나서는 감상기를 쓰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어디선가 이 영화를 보고 난
한줄 감상평에 '흑먼지를 잔뜩 마신 기분이다'라는 말을 본 것 같은데, 저 역시 그와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조용하고 별다른 움직임이나 소란스러움없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지만,
오히려 이런 분위기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공포와 어두운 현실을 더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제 감상기에는 여러 번 영화 홍보를 위해 만든 문구들에 대한 느낌이 등장하곤 하는데, <중경>의 홍보문구는 영화를 한 마디로
잘 표현하고 있는 듯 합니다.

 '소리없는 폭발을 향해 달려가는 도시'

이 문구는 크게 멋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영화의 내용을 잘 함축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 영화는 이번 주 개봉할 장률 감독의 작품 <이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영화입니다. 두 영화가 본래 하나의 영화로
기회되었을 만큼 (아마도)많은 부분에서 <중경>의 이야기가 <이리>에서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중경>에서는
이런 점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만큼 '이리'에 관한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삽입됩니다.
바로 '이리역 폭발사고'로 다리를 잃은 한국인 캐릭터가 <중경>에 등장하는데,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히 지금은
'익산'이 되어버린 '이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이리로 부터 도망쳐온 '중경'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많은 부분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 영화는 여러부분에 있어서 마치 폭발 직전의 느낌을 주고 있는데, 앞서 말한 이리역 폭발사고의 이야기나(지금은 익산으로
불린다는 대사가 반복되는 걸 보면, '이리'라는 지명이 폭발 직전의 불안하고 혼란스런 점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주인공인 쑤이가 겪게 되는 삶의 변화, 그리고 '중경'이라는 도시가 처한 현실. 이 모두가 살짝 건들기만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듯한 폭발 직전의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극중 쑤이가 겪게 되는 일들과 그녀의 행동들이 한편으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중경이라는 도시가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삭막함으로 보자면 그녀의 행동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얼핏보면 쑤이의 행동은 단순히 아버지의 잘못된 행동에 의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후 그녀의 행동들을 보면 점차 그녀
스스로가 변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 외에는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고, 죽은 자를 부러워 할 정도로 이미 다들
죽어있는 도시인 중경이라는 공간에서, 쑤이는 점차 자신을 잃어가고 중경에게 지배를 당하게 됩니다. 그녀 역시 다른 사람들과
별 다른 것 없는 중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며, 결국은 모든 것을 그저 인정할 수 밖에는 없는 이들을 영화는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더 극적인 영화적 요소가 가미된 일반적인 작품이라면, 이런 도시에서 이에 지배당하지 않기위해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줄지 모르겠지만, 장률 감독의 시선에는 이러한 희망적 메시지보다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움과 '이미 한계를 넘어서 버렸다'라는 식의 경고와 안타까움이 더욱 느껴집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중경'의 모습은 시작부터 이미 한계를 마주한 모습입니다. 한계에 달한 도시는 이미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고 스러져가고, 영화는 그 안에서 '쑤이'라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담히 보여줄 뿐인거죠.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아마도 중경에는 쑤이보다 더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장률 감독의 이 이야기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리>로 이어집니다.
<이리>는 이번 주 개봉 예정인데,
글쎄요, <중경>보다는 덜 힘들게 볼 수 있을런지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드는군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스폰지에 있습니다.

  1. Favicon of http://intogroove.tistory.com BlogIcon 인생의별 2008.11.12 00:24

    저는 <중경>과 <이리> 다 봤는데요, 둘 다 꼭 보셨으면 좋겠네요.
    <이리>도 <중경>만큼 보는 게 참 힘든 영화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다르기도 한 영화라서요.

    • Favicon of https://realfolkblues.co.kr BlogIcon 아쉬타카 2008.11.12 00:26 신고

      원래도 볼려고 했던 영화이긴 하지만, <중경>을 보고나니 <이리>를 보지 않을 순 없을 것 같더라구요. 주중에 꼭 봐야겠네요

  2. Favicon of http://differenttastes.tistory.com/ BlogIcon 신어지 2008.11.12 13:07

    장률 감독의 전작을 보지 않은 분이 <중경>을 보면 어떨까 궁금했는데
    아쉬타카님이 '흙먼지를 잔뜩' 드셨군요. ㅎㅎ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