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플라이 (Butterfly, Le Papillon, 2002)
노인과 아이가 벌이는 현문현답(賢問賢答) 로드무비

2002년작인 프랑스 영화 <버터플라이>는 2006년에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바있는데, 정식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위드블로그와 함께한 시사회 기회를 통해 영화를 먼저 접할 수 있었다. 사실 2002년 작이라는 점도 그렇고,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저 '착해만 보이는' 아우라 때문에 그다지 보려고 애초부터 기획했던 영화는 아니었지만,
앞선 이유로 보게 된 영화는 생각보다는 덜 심심했고, 나름 이야기 거리를 담고 있었으며, 예상했던 대로 마음이 훈훈해지는
영화였다. 영화를 본 어제 명동 거리는 몹시도 추웠는데, 나비가 나는 따뜻한 풍광을 담은 영상과 노인과 아이가
주고 받는 알콩달콩한 대사들은, 적어도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마음 한 켠을 조금이나마 뜨듯하게 뎁혀주었다.


(이후 부터는 영화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출발 스포일러 여행 등을 통해 이미 알려져다시피 포스터에 등장하는 노인과 아이가 길을 떠나면서 벌어지게 되는 작은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다. 나비를 수집하는 할아버지 줄리앙과 이집 위층에 사는 외로운 소녀 엘자는 우연한 기회에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1년 내내 딱 며칠만 만나볼 수 있는 희귀한 나비 '이자벨'을 채집하려 떠나는 줄리앙의 여행에,
부모님이 잘 돌보지 않아 항상 외롭던 엘자는 줄리앙의 동의 없이 함께 하게 된다. 이렇게 떠나게 된 여행은 뒤늦게 딸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 엘자의 엄마에 의해 경찰에 실종 신고가 되고, 줄리앙과 엘자의 여행은 일종의 납치극으로 세상에
비춰지게 된다. 좀 더 코믹함을 강조하려는 영화였다면 납치극으로 오해된 과정을 좀 더 집중적으로 다뤘겠지만,
<버터플라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어쩌면 나중에 엘자 엄마와 줄리앙을 만나게
하기 위한 일종의 연결고리일 뿐이고 영화의 중심은, 이 둘의 여행과 그 과정 속에 담겨있다 하겠다.

엘자는 항상 외로운 자신의 삶을 버텨내기 위해 또래보다 훨씬 어른스러움을 넘어서 영특한 소녀라 할 수 있는데,
일단 관객은 이 맹랑한 소녀 엘자와 노년의 줄리앙의 대화 속에서 재미를 느끼게 된다. 때로는 너무 어른스럽고 때로는
너무 철없는 질문들은 던지는 엘자에게 줄리앙은 때로는 친손녀처럼 다정하게, 때로는 너무 귀찮아 신경질도 내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가면서 둘을 점점 서로를 배워가게 된다. 아이는 노인에게. 노인은 아이에게 말이다.




포스터에서 벌써 알 수 있었듯이 이 영화는 아이와 노인이 관계를 맺는 전형적인 영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노인과 아이가 등장한다고 해서 철없던 아이가 노인에게 지혜를 배워 결국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로 마무리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마츄어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왜 이래, 아마츄어같이). 대부분 노인과 아이가 등장하는 영화는
오히려 반대로 노인이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설정이 대부분인데, <버터플라이>역시 마찬가지다.
줄리앙은 여러 종류의 나비를 수집하는 일종의 수집가인데, 그가 이렇게 나비 수집에 몰두하게 된 이유는 영화 중반에야
등장한다. 바로 자신의 아들을 전쟁터에서 먼저 떠나보낸 기억 탓인데, 아들을 먼저 떠나보냈다는 죄책감은 줄리앙을
나비 수집이라는 일종의 도피처를 갖게 했고, 그것으로서 이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결국 항상 자신을 족쇠고
있는 짐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줄리앙은 엘자와 함께 여행하게 되면서 점차 하나 둘 씩 깨닫게 된다.

사슴을 잡는 것은 밀렵 행위고 나비를 수집하는 것은 고귀한 행동으로 넘어가려던 안이한 생각은, 순수한 소녀의 눈에는
똑같은 나쁜 행위로 보였을 뿐이고, 가장 단순하고 뻔한 질문들만 던지는 엘자의 물음에 답하면서 줄리앙은 잊고 있었던,
아니 이미 알고 있었지만 쉽게 인정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인정하는 방법을 점차 배우게 된 것이다.
중간에 들린 민박집에서 계속 고장한 시계만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가 등장하는데, 이는 은유적으로 줄리앙의 삶을
표현하고 있고, 이 고장난 시계를 줄리앙이 수리하는 것은 또 다른 은유라 할 수 있겠다. 마치 가지도 않는 시계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처럼 줄리앙은 돌이킬 수 없는 일에(다른 말로 하면 꼭 자신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에),
죄책감을 버리지 못하고 아파했던 것인데, 이 고장난 시계를 줄리앙이 직접 수리해 준다는 것은 그가 스스로 이 짐을
벗어버리는 점을 배우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줄리앙에게 엘자는 매개체라고 보면 되겠다. 줄리앙은
이 꼬마소녀의 맹랑한 대답들처럼 다 알고는 있지만 미처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엘자를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버터플라이>가 전형적인 로드무비라고 보기는 어렵짐나, 이 영화의 주제는 로드무비라는 영화의 장르적 특성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로드무비라는 것이 무언가 깨달음을 얻으려고 길을 떠나곤 하지만, 따지고보면 대부분은 길 위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길 위의 것들을 통해 처음부터 자신의 내면에 있었던 것을 깨우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버터플라이>는
줄리앙의 로드무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그렇게도 희귀하고 갖고자 했던 나비 '이자벨'을 스스로 놓아주는
장면은, 드디어 줄리앙이 아들을 잃은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된 것을 상징한다(이자벨을 찾으려고 떠났던 여행이었는데,
사실은 처음부터 이자벨의 애벌레가 자신에게 있었다는 설정은, 주제를 설명하는 매우 직접적인 은유일 것이다).
엘자 엄마의 이름이 '이자벨'이라는 것은 이 영화가 숨겨놓은 귀여운 설정 중 하나였다. 원제인 '나비(Le Papillon)'에서도
알 수 있듯, 고치를 벗고 스스로 나와야만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줄리앙에게 씌워진 고치를 벗고 나비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실 영화 초반 엘자가 던지는 질문들은 아이의 순수함에서만 던질 수 있는 이른바 '현문'이다. 어린 아이와 나이 많은 노인은
서로 닮아 있는 것처럼, 엘자가 던지는 질문들은 표현에 있어서는 단순하지만 때묻은 어른들이 선뜻 대답하기에는 쉬운 질문들이
아닌데, 줄리앙 역시 처음에는 어른의 시각으로 '왜 이런 질문들을 하느냐'라는 식의 '우답'들을 내어 놓는다.
영화가 다 끝나고 엔딩 크래딧에는 두 배우의 문답 형식으로 이뤄진 노래가 흐르는데, 이 가사들을 보면 영화 초반에는
'우답'들을 내어놓던 줄리앙이 이 노래 속에서는 엘자의 '현문'에 맞춰 '현답'들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문현답 (愚問賢答)'이 아닌 '현문현답 (賢問賢答)'. 이 곡이 단순히 귀여운 불어발음과 재미있는 가사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엘자를 연기한 클레어 부아닉은 그 깨물어주고 싶은 불어 발음과 더불어 웨인 루니를 연상케 하는 외모까지(웨인 루니의
귀여운 모습을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수긍할 수 있을 듯), <버터플라이>의 전체 온도를 2도 쯤 상승시키는 귀여움을 선보였다.
어른스러운 아이, 맹랑한 아이 캐릭터는 여럿 있어왔지만, '엘자'를 보면서 크게 지루함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프랑스의 유명배우인 미셸 세로의 편안한 연기도 엘자와 좋은 콤비를 이뤘던 것 같다(참고로 미셸 세로는 2007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화려하고 치밀한 영화들 가운데 <버터플라이>는 분명 조금은 심심한 영화이긴 하지만, 그래도 심심한 영화치고는 지루하지
않았던 영화였다.


1. 돌틈에 대신 들어간 그 남자아이는 어찌되었는가?
 '난....혼자 몸이 작았을 뿐이고, 그냥 할 수 있냐길래 할 수 있다고 했을 뿐이고, 이미 몸에 로프 감겨 있고!, 엄마 보고 싶고 ㅠㅠ'

2. 예전 조르디가 불렀던 노래 이후 오랜만에, 아이가 부른 중독성있는 (불어로 부른) 곡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예슬아~' 이후 대화체로 이뤄진 인상적 곡이기도 하고 ㅎ



3. 아무리 프랑스에 사는 할아버지 라지만 'NBA'를 모르다니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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