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시티 (24 city, 2008)
타인은 거론할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

<스틸 라이프>를 연출했던 지아장커의 신작 <24 시티>는 사실 보기 전부터 조금 겁을(?)먹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다름이 아니라 기존 그의 작품들과 비교해봐도 더 건조할지도 모르겠다는 이미 본 지인의 말 때문이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명절 연휴가 끝나고 출근한 첫날 저녁에 이루어진 시사회라 잠깐 졸긴 했지만, 영화가 끝난 뒤 진행되었던
허문영, 김영진 평론가의 씨네토크 덕분에 한결 영화에 대한 이해가 수월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이후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이루어진 <24 시티>는 중국 서남부 쓰촨성에 위치한 청두라는 도시에 있었던  '420 공장'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주로 군수물자를 생산하며 한 때 청두의 주요 생활 터전이기도 했던 이 공장이 국가의 정책 변경에 따라
재개발이 이뤄지고 이로 인해 '24시티'라는 최상급의 고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되면서, 이 곳에 살고 있던 혹은 일하고 있던
이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24 시티>는 거의 대부분의 러닝타임을 극중 인물들의 인터뷰로 채워가고 있는데, 다큐멘터리 형식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동장르의 작품들에 비해 상당히 긴 호흡의 인터뷰를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내용 자체가 크게 극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굉장히 사소하고 소소한 얘기거리 들이며, 인내심을 요할 정도로 상당히 길게 진행되곤 한다. 이를 통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 점은 우리가 자신이 모르는 (혹은 아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현실에 가까워 있다는 다큐멘터리 들을 보아도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극적인 요소를 위해 편집되기 마련이다(물론 이 영화 속 인물들의 인터뷰도 편집된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어쩌면 이렇게 길게 까지 듣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을 뿐더러 대부분이 별로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지아장커 감독은 의도적으로 별로 극적이지도 않고 어찌보면 별로 중요하다고 느껴지지도 않는 이야기를 아주 길게
늘어놓음으로서, 기본적으로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지하고 길게 들어준 적이 있는가에 대해 의문과 동시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듯 하다. 보통 같으면 이 긴 이야기 속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감독의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하려고 하겠지만,
지아장커는 정반대로 이렇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듣게 하는 형식 자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듯 싶다.
즉 누군가의 사정과 인생을 듣고 보는 것 만으로는 절대 이들의 이야기를 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말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가 끝나고 두 평론가 분들과 함께 했던 씨네토크를 함께 하기 전까지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말하려고 하는 바에 대해
약간 의문스러운 점이 있었다. 무언가 깨름직하긴 한데 정확히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얼피보면 <24 시티>는 '청두'라는 도시에 살았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재개발을 통해 사라져간 이 도시의 옛 모습을 그리며,
노동의 현장이었던 이 곳이 자본의 상징으로 변해간 것에 대해 연민과 이 속에 살았던 자들의 삶을 통해 중국의 현실을 다시 보게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었으나(거의 그럴 뻔 했음), 두 평론가 분의 의견을 듣기 전에도 이렇게만 보기에 <24 시티>는 무언가
이상한 부분들이 많았었다. 일단 이 영화는 리얼 다큐멘터리라기 보다는(허문영님은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로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극 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 노동자들도 있지만,
조안 첸 같은 유명한 배우들도 출연하고 있으며, 실제 노동자들의 이야기 가운데는 말그대로 '만들어진' 이야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노동자들의 이야기 가운데 '가짜'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은 영화가 끝난 뒤 알 수 있었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배우들이 출연해서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방식에서는 의아함이 들 수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인터뷰의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을 수 밖에는 없었는데, 어떤 이야기는 정말 사소함을 넘어서서 불필요하다고
까지 느껴지는 이야기도 있었고, 마지막 등장한 젊은 여성의 시퀀스는 결과적으로 이 의아함에 어떤 종지부를 찍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노동자의 딸 임을 부정하려고 했던 그녀가 결국엔 눈물을 흘리며 그래도 나는 노동자의 딸이다 라고
고백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러면서 그 공장을 허물고 생겨난 괴물같은 24시티에 부모님을 모시겠다는 다짐은,
무언가 어긋나 있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같은 공간 안에 놓여있지만 세대가 이어지면서, 같은 공간이
어떻게 달라 보일 수 있는지와 그 속의 인물들의 가치관도 얼마나 다르게 형성될 수 있는지를 연대기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고
생각했으나, 이 마지막에 등장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는 이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마무리 지어버리기에는 너무도 기이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열심히 노동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재벌 아들들의 사치 용품 쇼핑을 대신해 주며
쉽게 돈을 버는 것도 그렇고, 결국 이 상징과도 같은 24시티에 부모님을 모시겠다며 눈물 흘리는 라스트는 마지막 현재의 청두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그래도 니가 있어 찬란했다'라는 식의 자막과 더불어 이상한 기운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영화를 보면서 깜빡 속을 뻔할 정도로 동화와 이상함을 동시에 느꼈던 것은 바로 음악의 사용이었는데, <24시티>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와 영화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음악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거의 한 인터뷰 시퀀스 마다
하나의 테마 음악이 존재하고 있을 정도고, 이런 형식이 반복되다보면 나중에는 '아, 이 남자의 이야기 뒤에는 이 노래가
나오겠구나'하고 미리 짐작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이렇게 음악과 시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은 달리보면 굉장히 인위적이고
극적으로 묘사하려고 일부러 넣은 장치라고 생각되기도 하는데, 이 페이크의 수준이 굉장히 디테일한 터라 아주 깊게 들어가지
않으면 보이는 것 그대로를 믿기 쉬운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결국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를 통해 지아장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 영화를 본 것 만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 만으로 청두를 이해했다고 하지 말라, 혹은 중국의 현재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한 배우를 이 다큐멘터리 형식에 넣어가며 이 이야기가 가짜 일 수 있다는 걸 은연 중에 암시하고 있기도 하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들을 통해 이것들 만으로는 알 수 없음을 인정하라는 메시지로 들리기도 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허문영, 김영진 평론가와 함께 하는 씨네토크 시간이 있었는데, 여러모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특히나 리뷰에 언급했듯이 이 영화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 과는 다른 해석이 가능한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며 의아스러웠던
부분들에 대해 좀 더 명쾌한 해설을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영화에 해석에 대한 이야기들은 물론, 지아장커 감독의 영화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도 전해들을 수 있었으며,
이후 관객들의 열띤 분위기 속에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감독이나 배우들이 참여하는 씨네토크도 장점이 있지만, 이렇게 영화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경우,
영화가 끝난 뒤 좀 더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만족스러웠던 시간이었다.







1. 사실 이 날 피곤하기도 하고 영화 자체가 굉장히 '잠이 오도록' 진행된 터라 깜빡 졸기도 했었는데, 이런 잠을 확 깨버릴 정도로
   임팩트가 있던 순간 이후로는, 끝까지 집중하면서 볼 수 있었다.

2. 그 순간이란 바로 <첩혈쌍웅>에서 엽청문이 불렀던 노래가 영화 속에 등장했을 때였는데, 정말 잠이 확 깰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이 곡을 본래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스크린에서 이 곡을 만나니 그 감흥이란 이루 말할 수 없더라.




(24시티에 등장한 곡이 <첩혈쌍웅>처럼 엽청문이 부른 버전인지는 100% 정확하지 않지만, 그래도 인상적이었음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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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intogroove.tistory.com BlogIcon 인생의별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영진, 허문영 평론가들과의 대화에 가셨군요. 저도 가고 싶었는데 선약이 있어서ㅠ
    저도 처음 봤을 때는 졸음을 참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두 번째 볼 때 단단히 마음을 먹고 가서 봤지요ㅋㅋ

    2009.01.30 20:38
    • Favicon of https://realfolkblues.co.kr BlogIcon 아쉬타카  수정/삭제

      확실히 졸음이 참기가 쉬운 영화는 아니었지만, 나름 흥미로운 형식의 작품이라 생각해볼 만한 영화였던 것 같아요

      2009.02.01 23:16 신고
  2. Favicon of http://www.cha2.co.kr BlogIcon 차이와결여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 분 평론가들의 사진이 아주 잘나왔네요.
    끝나고 가는 길에 '김영진'님과 엘리베이터를 우연히 같이 타고 갔는데, 나가시면서 인사하시더라구요..ㅎㅎㅎ

    아.. '지아장커'가 좀 더 친절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ㅡ.ㅜ

    2009.02.04 16:09
    • Favicon of https://realfolkblues.co.kr BlogIcon 아쉬타카  수정/삭제

      저도 이래저래 다양한 자리에서 김영진 평론가 분을 뵙게 되어 혼자 친숙한 느낌입니다 ^^;

      지아장커 감독, 확실히 친절한 스타일은 아닌것 같아요;;

      2009.02.05 00:07 신고
  3. 방문객  수정/삭제  댓글쓰기

    24시티 영화를 보고, 영화의 의미를 더 자세히 알아 보고 싶어서 여기저기 자료를 찾다가 들르게 된 사람입니다.. ^^

    위 글을 읽고 나서 ..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ㅎㅎ

    ㅎㅎ

    그런데,, 혹시 영화에서 '자오강' 얘기 후에 나온 노래제목을 혹시 아세요? ㅎ 노래가 좋아서 원곡을 듣고 싶은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구요 ㅎ

    제가 중국어를 잘 몰라서 가사를 한글로 쓰자면.. 아마 "아주 먼 옛날에 넌 내안에 있었고, 나도 네 안에 있었지~ "
    이런 가사였는데. ㅎㅎ 남자가 부르구요~ 혹시 아시면 댓글달아 주시면 고맙겟습니다~ ^^

    2010.06.0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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