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와 나 (Marley and Me, 2008)
반려동물을 통해 보는 인생


<말리와 나>라는 제목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제법 오래전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역시 반려동물들과 인간간의 이야기를
다룬 이누도 잇신 감독이 참여한 프로젝트 영화 <우리 개 이야기>때문이었는데, <우리 개 이야기>DVD 출시 당시 프리오더
이벤트로 '말리와 나'라는 제목의 도서를 증정하는 행사로 미리 책을 먼저 받아볼 수 있었고, 바로 이 책을 원작으로 영화화가
진행되었다는 것 정도를 미리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은 아직까지도 읽지 못하였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집에와 책 첫머리를
들춰 보니, 저자의 이름이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과 같은 '존 그로건'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저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것인데, 뒤늦게 생각해보니 한편으론 드라마틱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너무도 평범한 일상들의
이야기를 영화 화법으로 잘 풀어낸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말리와 나>를 처음부터 보려고 마음먹었던 이유는 반려동물에 관한 이야기 일것이라는 단순한 추측 때문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우리 개 이야기>가 그랬고, 고양이와의 애틋한 감정들을 소소하게 다룬 <구구는 고양이다>가 그랬으며,
애니메이션 <볼트> 역시 그런 이유에서 보게 된 영화들이었다. 이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조금은
신파적이고 미흡한 부분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별다른 불만없이 보게 되는건 영화 속에 담긴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 만으로도 어느 정도 개인적인 이유를 더해 충분히 만족스러운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인데,
<말리와 나>는 반려동물과 인간 과의 관계, 그 것 자체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영화는 분명 아니었다. 이 부분이 살짝 의외
이기도 했으며 다른 한편으론 결과적으로 더욱 만족스러운 부분이기도 했다. 매우 평범한 이야기들을 잘 풀어내는 동시에
잊지 말아야할 것들을 빼먹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시 의외의 만족스러움을 주었던 <인 굿 컴퍼니>가 떠오르기도 했다.


(아래 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선 맨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둘 다 기자로서 바쁜 날들을 보내던 존 그로건과 제니퍼 그로건 부부는, 덥석 아이를 키우기엔 부족한 시간들과 두려움으로
인해 먼저 강아지 한마리를 키워보게 된다. 이 강아지의 이름이 바로 '말리'이고, 이 녀석은 엄청난 말썽꾸러기다('말리'라는
이름은 유명한 레게 음악의 레전드 '밥 말리'에서 따온 것이다). 얼마나 말썽을 부리는지 집 안에 남아나는 것을 하나도 없을
정도로 못쓰게 만들고 나름 엄하다는 애견 교육관도 두손 두발 들어버린 정말 '최강'의 말썽꾸러기 강아지다.
처음 존과 제니퍼는 관객들이 생각했을 때 '와, 저 정도까지 참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리가 일으킨 사고(?)들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 보인다. 말리가 어떤 사고를 치던 신혼이고, 아직은 말리가 그저 귀여워만 보이는 존과 제니퍼에게는
다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런데 이 부부에게는 미묘한 갈등이 하나 있다. 둘 다 기자이지만 아내인 제니퍼는 좀 더 좋은 직장에서 명성이 있는 기자이고,
남편인 존은 작은 신문사에서 부고란 정리가 주된 업무인, 영향력이 아직은 별로 크지 않은 기자이다. 이런 갈등이 표면적으로
크게 폭발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지만, 결혼 생활이 계속되고 다툼이 일 때마다 이 부분은 조금씩 문제로 부각된다. 남편인
존은 아내에 비해 능력이 부족하다는 자격지심을 은연 중에 갖고 있으며, 아내인 제니퍼 역시 진심으로 남편을 응원해주기는
하지만 역시 마음 한 켠엔 이런 마음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부부 간 일종의 신분 구조에 대한 갈등은 존이 더 좋은
신문사로 스카우트 되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지만, 아이를 유산하고 다시 얻고 키우는 과정 속에서 부부 간의 미묘한
힘겨루기는 계속된다.




이 영화의 이야기들은 매우 현실적이고 미묘한 감정과 갈등들을 보이지 않게 담아내고 있는데,
이 가운데 유일하게 비현실적인 요소를 들라면 남자주인공인 존의 태도일 것이다. 보통 같으면 힘겨루기에 있어 한 번쯤 크게
폭발할 것도 같은데 존은 말리가 친 사고들에도, 아내의 투정에도 거의 한 번도 화를 내지 않고 묵묵히 참아낸다.
존에게는 앞서 언급한 제니퍼와의 부부로서 갈등 외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가족을 위해 참아야만 하는 갈등도 존재한다.
그는 전쟁 기사를 쓰러 출장을 가는 친구 기자와 함께 기자로서 더 역량을 발휘하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가족과 말리를 위해
이런 꿈들을 스스로 많이 억제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해 가며 가족 중심으로 살아온 그의 인생은 전혀 다른 길로 성공을
이루게 된다. 본인은 그렇게도 '기자'를 원했으나 하는 수 없이 떠맡은 칼럼니스트 코너는 연일 인기를 끌어서 더 큰 신문사로
스카우트도 되고, 그렇게 원하던 기자가 된 이후에도 오히려 답답함을 느끼고는 다시금 칼럼니스트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런 점을 보면 역시 인생은 아이러니이고 무엇이 반드시 옳은 것응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듯 하다.
본인의 꿈과 이상을 이루는 것만이 행복한 것도 아니고, 반대로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만 사는 것 또한 반드시 옳다고 이야기
할 수 없음은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진리의 경지의 메시지이겠지만, 이 영화는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으로 이런 것들을
슬쩍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 외에도 이 영화는 겉으로는 신파극처럼'만' 보이지만, 그 속에 인생과 결혼, 그리고 가족에 대한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거의 드러나지 않도록 담아내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부부간의 직업적 상하구조로 인해 갖게 되는 고민들이라던가, 아이를
갖게 되면서 부부간의 변화가 생기는 부분, 그리고 모든 것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열정적이다가 시간이 갈 수록 애정과 관심이
식어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은연 중에 잘 표현해 내고 있다 하겠다.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미묘한 감정들을 이렇게
보일듯 말듯 배치해 놓은 시나리오가 매우 마음에 들었으며, 오히려 이를 대놓고 공개했을 때보다 더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영화의 마지막 존의 내레이션은 갑자기 너무 신파로 마무리 지으려는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앞서 이 영화에서 은근히 언급했던 현실의 이야기들을 다시금 정리하는 내레이션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얼핏보면 반려동물의 소중함과 애정만을 담은 내레이션과 마무리로 보이기도 하나, 결국 말리와 함께 했던 삶을 통해
인생에서 소홀히 했고 서로에게 상처주었던 부분들을 반성하고 스스로 껴안음으로서, 전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장치로 내레이션이 사용되고 있다 하겠다. 자신보다 짧은 인생을 사는 '말리'를 통해 자신의 삶 전체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랄까. 단순히 항상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것 정도만 이야기하려는 영화는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항상 곁에서 함께 한 존재라는 메시지에 울컥하지 않을 순 없었다. 특히 부부의 아들인 패트릭이, 어린 시절
촬영했던 홈비디오를 보는 장면은 너무도 인상적이었는데, 자신이 아기였을 때에도 항상 말리가 함께 했음을 예전 비디오를
통해 새삼 알게 되어 눈물 흘리는 패트릭의 모습은, 반려동물이 한 가족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의지 할 수 있었던
존재였는지 역시 새삼 느끼게 해주는 명장면이었다. 그리고 이런 영화라면 의례 주인공인 동물이 세상을 떠나는 장면이
나올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점차 나이를 먹어가면서 예전처럼 활발하지 못하고 점점 힘을 잃다가 목숨을 잃고 마는
장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신파라 욕해도 좋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너무도 슬프게 다가왔던 이유는 극 중 '말리'의 모습이, 예전에 개인적으로 함께 했던 고양이
'일루'의 모습과 너무도 겹쳐보였기 때문이었다. 일루는 말리처럼 엄청난 말썽꾸러기라서, 생전 처음 큰소리로 꾸짖어본 적도
있고 가끔은 귀찮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을 정도로 사건이 많았었는데, 영화 속 말리의 이야기와 일루의 이야기가 다른 점이라면,
영화 속 주인공들은 끝까지 말리를 가슴으로 품었지만, 나는 이사라는 형식적 핑계를 들어 결국 견디지 못하고 일루를 다른
사람에게 떠나보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끝까지 일루를 포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죄책감이 들었고,
회환이 몰려왔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더욱 슬픈 영화였으며, 또 한 번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매우(아주 매우)
고심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1. 두 주인공 배우는 알았지만 그 외에 캐스팅은 전혀 몰랐던 터라 앨런 아킨의 등장이 무척 반갑더군요!

2. 패트릭으로 등장한 아역배우는 <다크 나이트>와 <미스트>등을 통해 익숙했던 나단 겜블군이라 역시 반가웠습니다.

3.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까지 얻을 수 있었던 영화라 만족스러웠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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