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 두 번째 싱글 'ATOMOS PART SECRET' 발매기념으로 열린 서태지의 콘서트에 갈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요즘 경제사정도 사정인데다가 신경 쓸 일도 많아서 서태지의 (난 누구보다 오래된 서태지의 팬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대장'이라고 부르기는 좀 닭살스럽더라;;) 이번 콘서트는 애초부터 가려고 생각조차 하질 않았었는데, 3월 14일 생일을 맞아 여자친구에게 뜻하지 않은 티켓 선물을 받게 되었고, 너무 비싼 가격과 공연일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예매한 탓에 비교적 앞자리는 아니었던 스탠딩 번호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췩소하려 하였으나 이미 취소가능 시간은 과거가 된지 오래;;; '그래, 그냥 보는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태지 공연인데!' 하며 보게 되었던 이번 콘서트. 개인적으로는 예전 'Zero'투어 때 라이브를 보고 못 보았으니 상당히 오랜만에 서태지의 라이브 공연을 보게 된 것이었는데, 아.....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뼈속 까지 서태지 팬인 내가 왜 이 티켓에 가격 따위를 논했던 것일까. 공연은 그 자체로 감동. 마치 화법 학원을 다니는 듯 멘트의 비중이 상당해진 서태지의 (준비해온) 멘트들에 또 한번 감동. 그리고 '웜홀 (Whomhole)'이라는 공연 제목 답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예전 곡들도 만나볼 수 있었던, 정말 최고의 공연이었다.




공연장에 3시간 쯤 전에 도착하여 줄을 서서 기다리길 오래. 드디어 입장이 시작되었고, 입장해서도 역시나 기다림을 겪은 뒤에야 오늘의 게스트인 '장기하와 얼굴들'의 무대를 만나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라이브를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실제로 공연장의 분위기는 그들의 음악을 아는 사람보다는(정확히는 퍼포먼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듯 했다. '싸구려 커피'의 랩핑이 나올 땐 이 곡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만 보일 수 있는 그 반응이 터져나왔고, '달이 차오른다, 가자'의 안무와 미미 시스터즈가 등장했을 때도 이런 반응이 나왔다. 뭐랄까, 전반적인 분위기는 드디어 말로만 듣던 장기하의 무대를 확인하는 자리였달까. 장기하는 위의 두 곡과 함께, 신보에 수록된 '아무것도 없잖어' '별일 없이 산다'를 불렀는데, 개인적으로는 '별일 없이 산다'가 그리도 신나고 거대한 곡인 줄은 정말 몰랐었다. 음반으로 들을 땐 그런 생각까진 하지 못했었는데, 실제 라이브로 들으니 올림픽 홀이라는 콘서트홀과도 잘 어울리고, 엔딩곡으로도 잘 어울리는 제법 큰 곡이었다. 특히 준비해온 컴백홈 댄스를 후반부에 곁들이는 센스까지! 여튼 이번 기회로 많은 태지 팬들이 장기하와 얼굴들의 팬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두 번째로 등장한 게스트는 '피아'. 피아의 무대는 여러 록 페스티벌이나 아니면 서태지 공연의 게스트로 이미 여러번 접했었는데, 다른 무대보다 서태지의 게스트로 설 때가 좀 더 '자연스러운듯(?)' 보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에 사로잡혔던 터라 이 타임에서는 체력비축의 시간을 가졌다.




피아의 무대가 끝나고 어느 정도의 준비시간이 지난 뒤 드디어 막이 열리며 등장한 서태지 밴드! 첫 번째 곡은 이번 싱글에 수록된 'Juliet'이었다. 사실 이후 'Coma'를 들을 때도 그랬지만 확실히 음반으로 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단순히 공연장에 분위기에 휩쓸려 흥분된 상태라 그랬다기 보다는 라이브로 듣는 곡들의 느낌이 훨씬 좋았고 이 느낌은 다음 곡인 'Bermuda [Triangle]'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Juliet'이랑 'Coma'는 아직 곡도 다 외우기 전에 라이브를 접한 경우였는데, 라이브로 들으면서 곡을 더 효율적으로 배운 경우랄까. 'Juliet'에서의 태지의 보컬은 더욱 여린 부분이 강조된 미성이었는데, 예전과 비교해서 (로미오 컨셉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ㅎ) 좀 더 가녀린 목소리였다. 'Bermuda [Triangle]'같은 경우는 이미 매우 익숙한 곡이라 신나게 동참할 수 있었는데 확실히 음반으로는 이미 질릴 정도로 들었던 곡이었지만(안 그런 태지 곡이 어디있겠느냐만은) 라이브로 듣는 곡은 역시 틀렸다. 굉장히 섬세한 드럼 리듬과 태지의 보컬도 좋았고. 이미 이 두 곡만으로도 웜홀에 심하게 빠져들어 버렸다.

그 다음은 'Heffy End' 였는데, 라이브에서 이 곡이 그리도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들릴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이 바로 뒤에 이어진 '로보트'와 더불어서 가사가 갑자기 뇌리 속에 박혀와서 살짝 울컥하기도 했을 정도였으니. 이 앨범을 통해 가장 좋아하는 곡들이었던 이 두 곡을 오랜만에 들으니 감회도 새롭고. 얼마나 크게 노래를 따라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로보트'의 후렴구는 정말 목청이 터져라 따라 불렀던 것 같다. '로보트'가사는 정말 왜 이리 슬펐는지. '축복된 인생에 내가 주인공은 아닌가봐' 이 부분 ㅠ



사진출처 - 서태지 컴퍼니

그 다음 곡은 이 날 공연 중 가장 인상적인 곡 중 하나였던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수록곡 '이제는'. 태지는 '이제는'을 부르기 전에 설명하면서 예전 인형 매고 나와서 코 만지고 그러던거 생각나냐며 얘기했는데. 아, 정말 그 때가 떠올랐다. 그 1집 콘서트 비디오는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모를 정도로 외웠었는데(심지어 밤 중에 몰래 비디오 가게에 붙어있는 공연 포스터를 떼어오기도 했었다), 그 얘기를 서태지가 직접 하니 그 때도 떠오르고, 그 당시의 마음도 떠올랐다. 태지는 또 그 때가 17년 전이라는게 믿겨지지 않는 다고도 했는데, 정말 십 1,2년도 아니고 17년 씩이나 된 일인지 나도 그제야 세어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장기하처럼 친구 두명과 서태지와 아이들 장기자랑을 했던게 벌써 17년 전이라니. 여튼 '좋은 너를 위해서'라는 말로 시작된 '이제는'은 그래서 더 감동이었다. 팬들도 차마 따라부르지 못하고 감회에 젖는 팬들이 많았었고. 태지도 유난히 그 때를 그리워하는 것 같아 내 마음도 울적해졌다.

그 다음 곡은 'TAKE 5'였는데, 역시 이 곡의 하이라이트는 점프! 그래도 14일날 왔던 매니아들보다는 박자를 잘 맞춘다는 칭찬을 들었으니 그것으로 만족. 팬들은 역시나 직접 만들어온 노란 종이 비행기를 날렸고 태지가 그 중 하나를 직접 잡아서 다시 날려주기도. 그 다음 곡은 '10월 4일'이었는데, 아주 작정하고 '첫 사랑을 생각하면서 만든 노랜데요' 하며 굳이 이유를 다시 끄집어내서 팬들의 질투를 유발시키려는 태지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ㅎ 그리고 베일에 쌓여있던 세션 기타에 소개도 있었는데, 여성 팬들은 여기저기서 잘 생겼다며 수근거리기도 ㅎ 여튼 차분한 분위기에서 '10월 4일'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 다음 곡은 'Moai'. 두 번째 싱글의 칭찬글들로 인해 이스터섬에 모아이가 잔뜩 삐져있다는 멘트로 시작한 모아이는 정말 예술 그 자체. 이 곡은 앨범으로 들을 때 정말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곡이었는데 라이브로 듣는 모아이의 감동도 대단했다. 이번 공연을 함께하면서 들게 된 생각은 태지가 지난 싱글과 이번 싱글을 발표하면서 공연의 레퍼토리가 기존에 비해 훨씬 풍부해졌다는(기존에 비해 훨씬)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모아이도 그렇고 그 다음 이어진 '휴먼드림'도 풍부한 레퍼토리 중에 한 곡이었다. '휴먼드림' 역시 라이브로는 처음 만나는 곡이었는데, 아, 그 쫄핑크 댄스를 실제로 보니 더더욱 흥겨웠다. 곡 전체에 안무가 있는 곡이라 잠시나마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향수도 느낄 수 있었고. 신나는 느낌은 여기서 최고조! 노래가 끝나고 들어가는 쫄핑크들의 배와 엉덩이를 툭툭 쳐주는 태지의 모습도 재미있었다 ㅎ



사진출처 - 서태지 컴퍼니

그 다음 곡은 'T'ik T'ak' 이었는데, 앞 두곡에서 살짝 비축했던 체력을 다시 소비할 수 있었던 곡이었다. 어찌나 리듬에 맞춰서 몸을 흔들었는지 이 때부터 이미 몸이 난지 내가 몸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 도달, 공연을 더욱 실감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공식적인 마지막 곡 'Coma'는 잘 알려졌다시피 불타버린 숭례문에 관한 메시지가 담긴 곡인데, 개인적으로는 음반으로 처음 들었을 때 이전 싱글들에 비해 약간 심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왠걸. 극적인 요소와 멋진 구성. 라이브로 들으니 더 멋진 곡이었다. 이번 공연은 전체적으로 무대 또한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예전 U2의 무대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넓은 반원형 모양의 대형 구조물을 통해 다양한 영상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뮤직 비디오 뿐만 아니라 콘서트를 위해 준비된 영상들이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되었으며, 후반부에는 화면 분활을 통해 태지와 밴드 멤버들을 각각 비춰주는 구성도 보여주었다. 물론 이런 영상 효과 외에 하늘에서 뿌려진 금빛 꽃가루와 폭죽의 사용도 무척이나 만족스러웠고.

'Coma'가 끝난 뒤 밴드는 무대 뒤로 돌아갔고 팬들은 앵콜을, 태지는 다시 돌아와 앵콜곡을 선사했다. 마지막 곡은 다른 곡도 아니고 무려 '내맘이야'였는데, 아...이 곡을 라이브로 듣게 될 줄이야. 본래도 좋아하는 곡이긴 했지만 라이브로 듣는 '내맘이야'의 임팩트가 이리도 클 줄은 몰랐다. 정말 남은(어쩌면 이미 남아있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에너지를 모두 불사르며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몸을 흔들었는데, 아, 이러다가 저 밖에 대기한 엠뷸런스를 내가 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어서 2절 후반부엔 잠깐 따라부르는 것을 중단해야만 했을 정도로, 당췌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다른 곡들도 그렇겠지만 '내맘이야'를 라이브로 들어보지 못하고 이 곡을 들었다고 하는 것은 분명 이 곡에 대한 실례일 정도로, 아...정말 최고의 라이브요, 마무리였다.




그렇게 마지막이 끝나고 태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뒤 풀려버린 다리를 고쳐 세우며 공연장을 천천히 빠져나왔다.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목소리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고 감동적인 공연이었다. 내가 태지팬임을 새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공연이었으며, 그간 예전 만큼 관심을 갖지 못한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멋진 공연이기도 했다. 항상 서태지의 음반이나 공연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내게 있어 서태지는 단순히 좋아하는 뮤지션이라기 보다는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기를 함께했고 지금도 함께 하고 있는 특별한 존재이다. 그래서 곡 하나하나에 추억이 담겨있고, 서로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관계인 것이다.

고마워요.



1. 서태지 처음 등장했을 때 그 머리스타일과 바뀐 안경에 이미지가 흡사 F4의 김현중 같아 사뭇 놀라기도. F4부럽지 않은 꽃미남인듯!

2. 언제부턴가 공연을 보고 그의 멘트를 듣고 있노라면, 부쩍 외로움을 느끼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도 그랬다.

3. 역시 난 태지매니아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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