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감독 특별전 - 'Taking Lee Ang' 이안을 만나다


이안 감독은 제게 있어 참 기복이 있는 감독이라 할 수 있겠네요. 지극히 개인적으로 영화마다 맘에 들고 안들고가 들쑥 날쑥 했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 '날쑥'보다 '들쑥'이 많기에 계속 그의 필모그래피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볼 수록 참 흥미로워요. 그는 대만 출신으로 서양에 동양의 정서를 전달하는 감독인 동시에 가장 서구적인 작품을 만드는 동양 감독이기도 하거든요. 1993년작 '결혼 피로연'이나 1994년작 '음식남녀' 같은 경우는 특히 영화제를 통해 서구 세계에 동양을 소개했다는 점만 봐도 굉장히 동양적인 정서와 '전통'의 느낌이 묻어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에 반해 1995년작 '센스 앤 센서빌리티'나 1997년작 '아이스 스톰' 같은 작품을 보면 과연 이걸 동양 감독이 만들었을까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분위기를 담은 작품이거든요.

그러다가 200년에 와서 '와호장룡'을 통해 다시 한번 전세계적인 관심과 함께 인기를 얻게 되죠. '와호장룡' 역시 따지고보면 굉장히 동양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것 같지만, 이를 그리는 방식에서는 이안 특유의 정서가 담겨있었죠. 즉, 전통적인 무협영화가 그리는 방식과는 조금 달랐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강호' 등 무협영화가 반드시 품고 있어야할 정서도 포함하고 있었구요). 그래서 '와호장룡'은 따지고보면 좀 묘한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이후 다시 이야기할텐데 이런 의미에서 '와호장룡'이 어쩌면 이안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일지도 모르겠네요. 바로 '색, 계'에 비해서 말이죠). 그런데 이 다음의 필모그래피는 더 놀랄만 합니다. 가장 미국적이라 할 수 있는 마블 코믹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헐크'가 바로 그 주인공이거든요. '헐크'는 이안이 연출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미국내 팬들의 반발이 상당히 심했던 작품이었죠. 결국 코믹스의 팬들에게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해 속편에서는 전면 리부트 되기도 했구요. 개인적으로는 이안의 '헐크'가 퍽 마음에 든 편이었어요. 왜냐하면 고뇌하는 히어로의 모습을 굉장히 심도있게 그려냈기 때문이었죠. 



(제가 꼽은 이안 작품 베스트 3에는 의외(?)로 '헐크'가 포함됩니다)


'헐크' 이후 그가 선택한 작품 역시 상당히 미국적인 정서를 담은 작품인 '브로크백 마운틴'이었죠. 여기서 '브로크백 마운틴'이 미국적이라는 이유는 이 영화가 동성애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주제 아니죠. 소재 맞습니다), 바로 산에서 양치는 카우보이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건 흑인이 판소리를 열창하는 것 정도는 못되더라도 어쨋든 동양인이 제대로 소화하기에는 매끄럽지 못한 소재와 배경이긴 하거든요. 하지만 이런 싱크로율이 이안 감독에게 통하지 않는 것만은 사실이었죠. 이미 그는 가장 서구적인 작품들도 여럿 연출했던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브로크백 마운틴'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울릴 수 있었던 건, 그 안에 담긴 핵심적인 러브 스토리의 깊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안 감독은 그 깊이를 훌륭한 두 배우에 힘 입어 더 깊은 울림으로 표현해 냈고, 또 한번 감독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죠.



('브로크백 마운틴'은 확실히 아무때나 문득문득 Rufus Wainwright의 곡과 함께 보고 싶어지는 영화에요)


이 만족스러웠던 '브로크백 마운틴' 이후 그가 내놓았던 작품이 바로 문제작 '색, 계'였죠.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아직도 문제작이라고 생각하는데, 영화적 기술이나 연출력은 확실히 더 깊어졌지만 (마지막 탕웨이가 연기한 '왕 치아즈'가 카페에서 나와 인력거를 부르는 그 쇼트의 무게감은 정말 대단했죠. 영화의 메시지가 문제라고 생각했음에도 이 장면에서는 감탄했던 기억이 있네요) 영화가 담고 있고 그리려한 메시지에는 분명 진중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색,계'의 핵심에는 '이' (양조위)와 '왕 치아즈' (탕웨이)의 로맨스가 있는데 문제는 이들의 신분과 배경이 되는 이야기 때문이죠. 나라를 배신한 매국노와 독립운동을 하려는 철없는 자 간의 로맨스를 단순히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러브 스토리'로 보기엔 이 둘 간의 간극, 그리고 영화 외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갈등이 많다고 할 수 있거든요. 예전 '색, 계' 개봉시에도 글을 통해 이야기했었지만, 여기에는 조국을 배신하고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동포를 잡아 고문하는 역할인 '이'를 양조위에게 맡겼던 부분과 '이'를 그리는 방식이 가장 핵심적인 논란거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극 중 양조위가 연기한 '이'는 팩트만 보면 매국노 중의 매국노지만, 이를 묘사하는 방식은 마치 개인적으로 굉장한 고뇌를 담고 있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감성적으로 변하는, 냉정하지만 따듯한 남자로 그려지거든요. 그런데 이 방식은 확실히 문제가 있어요. 영화 내내 '이'의 사상은 변하질 않거든요. 오히려 '왕 치아즈'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모든 운동원을 죽음으로 이끌고 말죠. 



이것이 앞서서 계속 이야기한 동서양을 아우르는 이안 감독의 성향이 잘 못 표출된 예라고 할 수 있을텐데, 더군다나 이안 감독은 '색, 계'를 두고 중국 젊은이들에게 자신들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 라는 뜻에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미뤄봤을 때, 결국 '색, 계'는 이안 감독을 또 다른 이방인일 수 밖에는 없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작품이었죠. 



(이안 감독의 문제작 '색, 계'. 여기서 문제는 수위 높은 배드씬 때문이 아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색, 계' 이후 이안 감독의 신작이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되었는데, '테이킹 우드스탁'이 그의 새 작품이라는 소식을 듣고는 좀 안심을 한 편이에요. 왜냐하면 또 한번 동양적인 이야기 혹은 이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선택한다면 다시 한번 실망할까 두려웠기 때문인데 다행히(?) 또 한번 아주 미국적인 소재를 택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록 팬들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너무도 유명한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시작을 그린 '테이킹 우드스탁'은, 사실 감독의 여부를 재쳐두더라도 록과 우드스탁의 팬으로서 무척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는데, 이안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앞서 이야기했던 이유들 때문에) 좀 더 기대를 하게 된 경우라 할 수 있겠네요. 




분위기를 보아하니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무대 자체는 그려지지 않을 것 같지만, 이미 여러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확인한 적이 있는 이 유명한 탄생 스토리를 극영화로 어떻게 그려냈을지가 무척 기대가 되네요. 아마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관심이 많았던 록 팬들이라면 그 크기는 각자 다르겠지만, 그 분위기만으로도 만족할 만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밀크' 이후 점점 더 색깔 있는 배우가 되어가는 것 같아 주목하고 있는 에밀 허쉬와 최근작 '나잇 & 데이'에서도 잠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폴 다노의 출연도 기대 포인트이구요.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사실 이 글을 시작한 이유는, 이런 이안 감독의 작품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기획전이 있어 소개하려고 했던 거였어요 ㅎ 이대 내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7월 29일부터 8월 11일까지 '이안 감독 특별전 - 'Taking Lee Ang' 이안을 만나다'를 진행합니다. 신작인 '테이킹 우드스탁'은 물론 '브로크백 마운틴'과 '색, 계'도 만나볼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신작인 '테이킹 우드스탁'은 물론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브로크백 마운틴'도 한 번 더 보고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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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frankie88 BlogIcon 프랭키 2010.07.26 23:44

    확실히 이안 감독은 현 영화계에서 매우 흥미롭고, 별스러운(!) 감독임이 분명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스 스톰>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미국 중산층의 내밀한 부분을 어떻게 이방인일수밖에 동양감독이 이토록 치밀하게 그렸나 싶어서요.
    그뒤로 아쉬타카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놀라운 필모그래피가 이어져서 정말 혀를 내둘렀어요.
    그때 저희 친구들은 농담처럼 우리 시대의 진정한 코스모폴리탄, 이안-이라고들 했지만,
    어찌보면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인 동시에 경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이안 감독의 다음 작품이 항상 기다려지는 건.. 그의 영화가 다 어느 지점에 도달해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우드스탁을 어떻게 다뤘을까.. 궁금해지네요. ^^

    • Favicon of https://realfolkblues.co.kr BlogIcon 아쉬타카 2010.07.26 23:47 신고

      진짜 필모그래피를 보고 있으면 놀라울 따름이죠. '결혼 피로연'과 '센스 앤 센서빌리티'가 같은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라는걸 첨엔 믿기 어려웠었거든요 ㅎ

      '색, 계'에서 실망한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신작이 계속 궁금해지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

 

Brokeback Mountain, 2005
 
이안 감독의 최신작이며, 이미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등
여러 단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이라 잔뜩 기대했던 영화.
 
9시반이 넘은 시각, 그리 많지 않은 관객만이 함께한 채 관람했던 영화.
 
뭐, 처음에 알려진대로 '브로크백 마운틴'은 동성애를 소제로 한 영화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동성애'는 그저 '소제'일 뿐이지
결코 '주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동성애를 다룬 것이라 처음 접할때 다른 작품보다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 것은
사실이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는 말 그대로 소제였을뿐,
남자와 여자와의 사랑이야기가, 남자와 남자와의 사랑이야기로
그려졌을 뿐, 어차피 똑같은 러브 스토리이다.
 
Brokeback Mountain에서 두 주인공은
대자연 속에서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영혼의 안식을 마음껏 누리지만,
산을 내려온 뒤의 삶은 에니스와 잭 모두에게
그저 잔혹한 현실일 뿐이었다.
 
잭은 세상에 틀을 깨고 이상향으로 나아가려는 용기를 냈지만,
결국 에니스는 현실에 붙들려 용기를 내지 못했다.
잭이 떠난뒤 그의 흔적들을 찾아낸 에니스가
슬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잭에 대한 그리움과 동시에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용기를 내지 못했던 후회가 컸기 때문이었을터.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잭의 시골집 방에서 피묻은 셔츠가 고이 간직된 것을 보았을때
어쩔 수 없이 슬퍼질 수 밖에 없었다.
 
이안 감독의 능력은 사실 <와호장룡>때 보다 이 영화에서 더욱
잘 드러나고 있다. <와호장룡>은 중국인으로서 자문화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자신있게 풀어감으로서 플러스 요인이 있었지만,
<브로크백 마운틴>은 6,7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완전 미국식 배경과 가치관등을 그려내고 있음에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이안이 감독인 줄 몰랐던 관객들이라면
동양인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사실 이안 감독은 이미 <센스 앤 센스빌리티>를 통해 이러한 편견을
무마해버린지 오래이긴 하다.
<기사 윌리엄>을 볼 때만 하더라도 아무도 이 남자가 이런 배우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잘하면 이런 류에 비슷한 틴에이지 팝콘영화를 몇 편 더
찍을 지도 모르겠구나...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그림 형제>같은 작품에
출연한 것을 보고는 조금씩 견해를 달리하게 되었으나 이번 작품을 통해
확고하게 이 남자, 히스 레저가 분명 배우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
 
제이크 질렌할은 내가 제대로 본 영화라고는 <투모로우>밖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왠지 기대가 되는 배우중에 한명이었다.
역시나 그 기대는 이번 영화를 통해 확실히 입증되었으며,
히스 레저와 함께 단숨에 배우로 인정받게 되었다.
(역시 배우는 작품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또 하나의 손꼽히는 러브 스토리이자
현실과 이상향 속에서 갈등하고 결국 그 속에서 용기를 내지 못하고
포기해버렸던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안타까운 두 남자의 이야기는 엔딩 크래딧을 다보고
극장에 불이 켜지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 여운을 남겼다.
 
 
 
글 / ashitaka

p.s/1. 의도는 아니었으나 <메종 드 히미코>이후에 바로 또 이 영화를 보게 되어
누군가에게 내 성향이 의심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을...윽...--;
 
2. 엔딩 크래딧에 윌리 넬슨의 곡 뒤에 흐르던 곡은 바로 내가 좋아하는
Rufus Wainwright의 곡이었다. 동성애를 소제로 한 영화에 그가 곡 작업을
했다는 사실도 재미있는 일인듯;
 
3. 로린 역의 앤 헤서웨이의 연기도 헤어스타일과 더불어
꽤 멋졌다 ㅋ,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알마 역할을 맡은 미쉘 윌리엄스라는
배우가 더욱 마음에 든다...(근데 프로필을 확인해보니 나와 동갑..윽...)

 



Brokeback Mountain O.S.T.
 
The Maker Makes _ Rufus Wainwright
 
 
One more chain I break to get me closer to you
 
One more chain does the maker make to keep me from bustin' through
 
One more notch I scratch to keep me thinkin' of you
 
One more notch does the maker make upon my face so blue
 
 
Get along, little doggies Get along, little doggies
 
One more smile I fake and try my best to be glad
 
One more smile does the maker make because he knows I'm sad
 
 
Oh lord, how I know
 
Oh, lord, how I see that only can the maker make a happy man of me
 
 
Get along little doggies get along little doggies get along
 
이 사슬을 끊고 네게 다가가고 싶어
 하지만 조물주는 또 다른 사슬을 만들어 나를 도망치지 못하게 하네
너를 향한 사랑의 눈금을 더 높이 그어가네
 너를 잊지 않으려고  하지만 조물주는 더 높이 금기의 벽을 쌓아가네
사랑은 언제나 슬픈 것
 
 오 주여, 저는 압니다
 저는 압니다 당신만이 제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걸
 
그것이 제게는 또한  굴레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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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엔딩 크래딧에 흐르던 루퍼스 웨인와이트의 곡.
 
엔딩 크래딧에 흐르는 윌리 넬슨과 루퍼스 웨인와잇의 곡은
이 영화의 여운을 함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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