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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The Battleship Island, 2017)

영화와 영화 외적인 것들의 필연적 충돌



류승완 감독의 신작 '군함도'는 처음 제작 사실이 알려졌을 때부터 기대와 걱정, 바꿔 말하면 반가움과 못마땅함이 존재했었던 논란의 영화였다. 흥미로운 건 기대하고 못마땅해하는 이유가 각각의 것이 아니라 동일한 점이었다는 거다. 화려한 캐스팅은 더 많은 대중들에게 기대를 갖게 하는 동시에 영화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간에 천만 영화라는 타이틀이 제작 단계에서부터 얘기된 점은, 더 많은 곱지 않은 시선을 이 영화에 갖도록 만들었다. 영화가 관객을 만나게 된 지금도 이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군함도'는 현재 가장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영화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가 담으려 했던 메시지나 내용적인 것에 대한 담론보다는 영화 외적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더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아, 물론 내용에 대한 이야기들도 논란이 되고 있긴 한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군함도'는 큰 규모의 제작비가 말해주듯, 처음부터 대중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즉, 더 많은 관객을 대상으로 한 영화임을 결코 간과할 수 없었던 영화였다. 혹자들은 이런 경우 작가로서의 감독이 상업적인 것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라며 평가 절하하곤 하는데, 내가 봤을 때 '군함도'의 경우 이건 포기라기보다는 선택에 가깝다. 작은 규모로도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대규모의 투자가 꼭 필요한 이야기가 있는데, 물론 '군함도'를 주제로도 충분히 훨씬 적은 규모의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류승완 감독이 만들고자 했던 건 기본적으로 장르 영화였고 대규모의 투자가 필요한 영화였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규모 세트 촬영과 이를 기반으로 한 스펙터클한 화면과 액션의 동선을 가능하게 해 확실히 진일보한 수준을 보여준다 (다른 얘기로 최근 논란이 되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리고 이 영화가 애초부터 작은 기획으로 시작했다고 가정한다면 '군함도'는 지금과 같은 액션 영화가 아니라 라즐로 네메스 감독의 '사울의 아들 (Son of Saul, 2015)'처럼 만들었어야 지금의 논란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논란은 없었을 거고, 배급사가 무리한 독과점을 시도하지도 않았을 거고 그리 많지 않은 관객 만이 영화를 관람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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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구성 측면에서 '군함도'는 장르 영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황정민과 김수안이 연기한 이강옥과 소희의 이야기는 쉽게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연상시킨다. 참혹함 속에서도 현실적인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서로가 서로에게 반드시 탈출해야만 하는 (특히 이강옥에게) 이유가 되는 이야기는 가장 전형적인 구조이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보편적 정서로 많은 대중들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소지섭이 연기한 최칠성의 이야기는 '군함도'의 또 다른 줄기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후 등장하는 박무영(송중기)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하나의 이야기에 잘 묻어나지 못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박무영의 이야기는 전개상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최칠성의 이야기는 필요보다는 선택 측면으로 개입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하나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기 어렵도록 만드는 장치가 아니었나 싶다. 박무영이 개입되는 시점부터 영화는 빠르게 탈출(재난) 영화로서 전개되기 시작하는데 개연성을 위해 몇 가지 장치들을 마련해두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조금은 급작스럽게 장르 영화로서 탈바꿈되어 달려 나간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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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군함도'는 장르 영화로서만 보았을 때 그리 나쁘지 않은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대규모의 촬영 현장에서 만들어낸 (CG가 아님을 확인시켜주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압도되는 측면이 있고, 그만큼 볼거리 측면에서도 러닝 타임 내내 지루하지 않게 몰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아쉬움을 남기는 측면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배경이 '군함도'라는 점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생각해보면 '군함도'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대규모 장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들까지 더해서) 참 어려운 도전이었구나 싶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군함도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과 이를 통해 전달하려던 메시지에 대한 부분은 물론, 탈출 영화로서의 스펙터클 모두 최대한으로 뻗지 못하고 아쉬운 지점에서 그치고만 느낌이 강했다.


특히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아픔을 제3 국의 시선이 아닌 당사국의 입장에서 그리고 있는 만큼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묘사에 (그것이 허구라 해도) 더 신중을 기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장르적 전개를 위해 총, 칼과 폭발에 스러져 가는 모습을 전쟁영화의 방식으로 잔인하게 묘사한 것은 그 참혹함을 부각하기 이전에 상처를 더 짓누르는 효과가 크지 않았나 싶다. 보통의 전쟁 영화에서 우리 편 혹은 우리 군이 죽음을 맞을 때의 묘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관객의 심리에서는 일본에게 강제 징용된 피해자들의 죽음을 맞는 장면이 훨씬 더 감정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받아들여진 측면이 분명 존재했다. 물론 여기에는 조선인들 간에 갈등 전개에 불만을 가진 이들의 반대가 더 컸을 텐데, 그런 측면이 더해지면서 이 대탈출의 서사는 완전히 살아나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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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기적인 정서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비극적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경우 관객들이 그 역사적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영화를 감상하는 데에 적지 않은 평가 요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군함도에서 벌어진 강제 징용 역사의 경우 최근 '무한도전'을 비롯해 몇몇 강의 프로그램이나 언론을 통해 이슈가 된 만큼, 관객들의 뇌리 속에는 깊은 상처와 슬픔이 최근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기에 이를 장르 영화로 소화해낸 (물론 영화가 담으려던 본질은 그게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영화 '군함도'가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또 정서적 거부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천만 영화. 천만 관객을 목표로 한 영화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의 논란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군함도'의 경우는 좀 더 양상이 복잡한 경우다. 일단 개봉일 기준으로 전체 스크린의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숫자의 스크린을 점유한 것 자체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참혹하고 끔찍한 심정이 들 정도로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설령 그것이 합법적일지라도 말이다. 


더 많이 보고 싶어 해서 더 많은 상영관을 가져갔다는 말은 얼핏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것이 문화 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건 불공정 거래에 가까운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점차 시일이 지나면서 '군함도'의 스크린 점유율은 줄어 가고 있지만 이후 개봉될 예정이라는 확장판의 소식까지 더해 만들어진 (만들어 내야만 하는) 천만 영화가 되어 간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까지 무리하지 않아도 충분히 목표로 했던 것들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실패를 몹시 두려워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뭔가 억지로 무리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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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별개로 이 독과점의 문제의 탓을 감독에게 돌리는 것도 정상적이지 못하다고 본다. 물론 관객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에 그 영화를 대표하는 인물은 감독이기 때문에, 더군다나 일부에서 실망하는 것처럼 류승완 감독이 평소 진보적인 태도로 스크린쿼터나 대기업, 자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주었었기 때문에 더 그럴 수 있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마치 이 모든 것이 감독의 의도인 양 또는 심한 말로 돈 맛을 알아 버린 감독이 투자/배급사인 CJ와 손잡고 변절 아닌 변절했다느니 하는 (사실 이것보다 훨씬 더 심한 수위의 표현들이 많다) 의견들은 수용하기 어려울뿐더러 다른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물론 이런 의견을 갖는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스크린 독과점과 관련해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류승완 감독 본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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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스크린 독과점과 관련한 부정적 의견들은 일부 의견들의 발언 수위가 너무 수준 낮다는 (욕설 수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수위의 대한 정도만 걸러 낸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선의 논의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 영화의 내용을 두고 벌이는 논쟁은 참으로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저의가 의심되는 움직임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군함도'를 두고 일본군에 대한 참상을 고발하는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찬양하는 가운데 조선인들끼리 다투는 내용을 담은 친일 영화라는 의견들이 있는데,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한 팩트부터 말하자면 '군함도'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짙게 깔린 동시에 단 한 명의 일본군도 미화하거나 그들도 피해자라는 식의 묘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친일파가 영화의 주된 갈등으로 등장한다.


묘한 공격 지점이 되고 있는 이 부분은 오히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가장 좋아하는 지점이다. '군함도'는 단순히 제국주의 일본 군의 참상을 평면적으로 그려내는 구도가 아니라 시대를 살아 남기 위해 스스로도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에게 기생해 목숨을 부지하려 했던 친일파들에 대한 적대심과 비판적 태도를 적극적으로 드러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예전 ‘지슬’에 대한 글을 쓰면서 가해자인 군인들도 사실 피해자라는 영화의 시선에 대해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비판적 의견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지슬'의 경우는 말했다시피 가해자를 일정 부분 미화하는 (군함도의 경우로 보자면 일본군을 미화하는) 경우고, '군함도'의 경우는 피해자 가운데 자신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어쩌면 가해자들 보다도 더한 악행을 저지른 또 다른 가해자인 친일파를 묘사하고 있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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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가 묘사하는 친일파 인물들의 비중은 오히려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전에, 내부에 숨어 있거나 오히려 큰소리치고 기득권으로서 여전히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친일파 세력의 청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즉 아직도 이러한 전후 청산의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만큼 선행되어야 할 역사적 심판에 대한 감독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소 신파적이라고 지적받는 마지막 장면 (김수안 배우의 응시) 같은 경우도 나는 이러한 심판과 감시의 눈빛이라고 생각된다. 


친일파들이야 말로 일본의 여러 가지 악행들이 점점 잊히거나, 친일파에 대한 존재는 지워버린 채 오로지 일본군의 악행 만이 강조되고 기록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텐데, '군함도'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그들에 대한 강한 심판과 감시, 다시 말해 그들의 악행을 반드시 역사에 기록해 미래로 전달해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이 있었음에도 많은 기득권 세력을 불편하게 만든 (더군다나 천만 관객을 목표로 한 대자본의 영화가) 메시지를 담은 영화라는 점에서 '군함도'를 응원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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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꼬부인 2017.08.08 17:07

    저도 동감이요..
    두 주먹 꽉쥐고 '친일파 청산'을 외치게 하는 영화였어요.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일본군을 찬양...한다는 게 어떤 부분에서 느껴지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명량 (2014)

영화, 그리고 영화 밖 이야기


'최종병기 활'을 연출했던 김한민 감독의 신작 '명량'을 지난 주말 보았다. 이미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명량해전을 영화 화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부터 이 영화엔 기대되는 바가 있었다. 더불어 흥행 관련해서도 어지간해서는 흥행 실패하기 힘든 소재라는 생각도 당연히 들었다. 여기에 사회적인 분위기까지 작용해서 마치 '레 미제라블'이 그랬던 것처럼 '명량'은 최단 기간 천만 관객 영화가 되었고 (여기서 굳이 독과점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다), 어쩌면 최대 관객 기록을 세울지도 모를 기세로 달려가고 있다. 흥행과 관련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일단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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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에 대한 중론을 모아보자면 초반 부는 지루하고,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내용 자체보다도 관객들이 더 많은 감동을 얻게 된 다는 점일 텐데, 후자는 확실히 그런 편이다. 이순신이라는 우리 역사상 가장 영웅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 만으로도, 그리고 이 이순신을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연기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없을 수가 없다. 즉 충무공 이순신은 어떻게 그려도 역사적 인물 자체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관객들로 하여금 호기심과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부분이 있고, 최민식이라는 배우 역시 이를 오버하지 않고 최대한 내면의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 것이 더 큰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던 것 같다. 물론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표현해 내기에 '명량'이라는 작품의 틀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던 것 같다. 이건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순신 외에 다른 캐릭터들은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하다. 특히 일본 장수 캐릭터들을 비롯해 이순신이 휘하 장수들은 각자의 이름 소개 외에는 별다른 임팩트를 만들지 못할 정도로,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기 보다는 그저 소품으로 존재하는 경향이 강했다. 특히 이 영화엔 이미 출연한다고 널리 알려진 배우들 외에도 까메오나 조연 형식으로 상당한 수의 이름 있는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활용에는 고개를 갸우뚱 하게 했다. 특히 진구가 연기한 임준영 캐릭터와 그의 아내를 연기한 이정현이 등장하는 액션 시퀀스는 여러 가지로 이상했다. 한국 영화가 자주 범하는 실수인데, 관객에게 '이 장면은 감동적인 장면이야, 감동을 받아야 돼'라고 강요하는 경향이 강해 오히려 이질감이 드는 장면이 많았다 ('명량'이 갖고 있는 정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이런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다수의 관객에게 실제로 감동을 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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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이야기를 한 김에 조금 더 해보자면, 이 영화는 각각 부분 부분은 그리 나쁘지 않은데 작품 전체로 놓고 보면 여러 가지로 어색하고 맞지 않은 구성이었다. 많은 이들이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한 초반 부도 개인적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다지 큰 기대가 없어서였는지 몰라도 왜군의 규모나 분위기를 보여주는 초반 장면들은 음악의 힘에 기대고 있는 부분이 크긴 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전달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내용과는 별개로 한국 배우들이 왜군과 그 장수들을 연기하는 상황과 제법 괜찮은 이미지가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고증의 문제는 별개다. 참고로 명량의 고증 수준은 그리 높지는 않은 듯 하다). 초반의 시퀀스들도 영화 전체와 마찬가지로 각각 별개로 놓여있고 유기적으로 엮여 있지 않은 부분이 분명 있지만,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순신의 이야기의 비중을 줄이고 왜군들의 이야기의 비중을 높인 것은 오히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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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외 적인 이야기로 '왜 지금 이순신인가?'라는 담론은 쉽게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들의 정부를 향한 불만 들이 가득 찬 시점에서 이순신이라는 리더의 모습은 국민들이 바라는 이상향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극 중 김태훈 씨가 연기한 캐릭터의 대사 중에 '왜 대장선이 맨 앞에 있어'라는 식의 대사가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이 집약적으로 이순신의 리더쉽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보통 리더는 뒤에서 빠져 있고 지시를 하게 마련인데, 명량의 이순신은 부하들이 모두 뒤에 빠져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자신의 목숨을 걸고 홀로 맨 앞에서 맞서 싸우는 리더쉽을 보여준다. 물론 리더라면 응당 이러한 모습을 손수 보여주어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 있는 우리들로서는 일종의 대리 만족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어 버려서 더 씁쓸한) 을 느낄 수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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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명량의 초반 부는 감정적으로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영화가 지루해서, 이순신 장군이 겪는 고초가 공감 되어서가 아니다. 바로 명량 해전이 벌어진 장소가 얼마 전 참혹했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던 그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물살을 바라보며 전략을 떠올릴 때 검고 빠른 바다가 스크린 한 가득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어찌 세월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우리가 세월호 뉴스를 들을 때 수 없이 많이 듣던 조류와 물 때의 이야기가 나올 땐, 그리고 검은 바다의 이미지는 세월호 사고와 정부의 무능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가 생각나 몹시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인지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클라이맥스 부분을 지나쳐 엔딩을 맞게 되어도 별다른 카타르시스는 느껴지지 않았다.

'명량'을 온전히 감상하기엔 세월호 사고의 상처가 너무 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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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년 (Juvenile Offender, 2012)

어쩌면 너와 나의 이야기



강이관 감독 연출, 이정현, 서영주 주연의 영화 '범죄소년'을 뒤늦게 보았다. 이미 주변의 호평으로 많은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품이었다. 2011년 '파수꾼'이 있었다면 2012년에는 '범죄소년'이 있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미묘한 감정이 용솟음 치는 작품이었다. 만약 지난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나의 2012년 올해의 영화 목록이 조금은 변경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영화는 '범죄소년'이라는 제목처럼 아주 특별한 상황에 놓인 듯한 한 소년과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포스터 속 문구에도 있는 것처럼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그래서일까? 가정 환경 탓에 소년원을 들락날락 하는 소년 장지구(서영주)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엄마 장효승(이정현)의 이야기는 어쩌면 너와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몰입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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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따지고보면 아들인 지구와 엄마인 효승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두 명의 '범죄소년'인 지구와 효승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구와 효승은 모자 관계이기 이전에 둘 모두가 같은 현실에 놓여있거나 같은 현실을 극복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효승은 지구를 낳은 엄마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지금의 지구와 비슷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이른바 범죄소녀였다. 즉, 청소년기를 방황하며 보냈던 소녀가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캐릭터라는 얘기다. 강이관의 '범죄소년'이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시간 대가 다른 두 명의 범죄소년이 하나의 이야기에서 만나는 동시에, 더 나아가 모자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범죄소년과 그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혀진다는 것인데, 처음에는 애초부터 이 두 가지 관계가 다 성립 (혹은 공감)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영화를 좀 더 곱씹어 보니 그렇지 않았더라도 의도와 다르게 이 두 가지가 모두 성립되는 영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두 명의 범죄소년의 이야기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중했던 영화가, 둘을 모자 관계로 설정하는 것 만으로도 자연스러운 화학반응을 일으켜 다른 한 편으로는 완벽한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로 읽혀지게 (범죄소년이라는 내용을 지우더라도) 되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생각은 두 배우, 특히 엄마인 효승 역할을 맡은 이정현의 대단한 연기를 보며 절로 들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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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년'이 좋았던 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를 일상 그 이상으로 특별하게 포장하려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자극적일 수 있는 청소년의 임신과 그로 인해 태어난 아이, 그리고 이런 이들이 가정으로 나아갈 수 없는 구조의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결코 선정적이거나 혹은 너무 미화하려 하지 않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렇다보니 오히려 지구와 효승이 처한 현실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는데, 여기서 놀랍게도 이 특별할 것만 같았던 이야기에 영화를 보는 '내'가 대입 가능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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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가난에 찌들리고 더 이상 갈 곳 없던 효승이, 얹혀살던 같이 일하는 미용실 원장에게 이제는 그만 집에서 나가달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처음에는 사실 그 미용실 원장의 입장이 더 공감되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이미 이 원장은 여러 차례 대가 없이 효승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거기다가 일자리와 집에 방까지 내주었기 때문에 이미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가달라는 말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집기를 부수고 바닥에 들어 누워 오열하는 효승의 모습에서, '왜 저래?'하는 짜증이나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하는 동정 섞인 마음이 아니라 '나는 왜 저렇듯 더 간절하지 못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효승의 방법이 옳았다라기 보다 그냥 처해진 상황을 극복하려는 방법이 결코 영리하거나 효과적이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해결해보려는 효승의 행동에서, 다르지만 같은 상황에 놓였었던 나 자신에게 '왜 너는 더 발버둥치지 않았어?'라며 후회섞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이 영화는 두 명의 범죄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세 명의 범죄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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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선택한 마지막도 그래서 더 만족스러웠다. 이들의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 하지만, 그보다는 아직 계속 진행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영화를 본 '나'의 이야기도 함께 끝나지 않았다는 걸 새삼 알려주었기에 더 깊은 인상을 준 작품이었다.



1.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보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요. 참 평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묘한 영화였습니다.


2. 이정현의 연기가 정말로 대단했어요. 너무 여러 장면에서 '와!' 하고 탄성이 나올 정도의 완벽함을 보여주어서 그렇게 깊게 영화 속 이야기에 공감한 상태에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연신 들더군요.


3. 강이관 감독의 다음 영화도 기대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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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13.01.24 18:03

    저는 이정현 팬이라서 이 영화를 봤어요 ㅎㅎ
    연기력 정말 좋죠 /ㅅ/

    영화자체는 너무 현실적인데, 그 현실을 어떻게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이 슬펐답니다.



파란만장 (Night Fishing, 2010)

박찬욱과 어어부 프로젝트의 콜라보레이션



박찬욱 감독과 동생인 미디어아티스트 박찬경 감독의 프로젝트 단편 영화 '파란만장'을 뒤늦게 IPTV를 통해 관람하였다. 공개 당시에 워낙에 아이폰으로 촬영한 영화라는 사실로 화제가 되었던 단편영화였는데, 극장 상영 기회는 아쉽게 놓쳤지만 쿡TV를 통해 이제야 만나볼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었던 건 당연히 박찬욱 감독의 연출작이라는 점 때문이었는데, 홍보의 포커스는 아이폰 4였지만 개인적으로 아이폰 4 촬영은 양념일 뿐, 단편이긴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신작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갖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단순한 이런 호기심 정도여서인지 오광록 외에 이정현이 출연한다는 사실은 영화를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보게 된 박찬욱/박찬경 형제의 단편 프로젝트 '파란만장'은, '박찬욱 + 아이폰 4' 라기 보다는 오히려 '박찬욱 + 어어부 프로젝트' 가 더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 (주)모호필름. All rights reserved



일단, 그래도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다 라는 트랜드와 맞물려, 박찬욱 같은 전문가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화는 어느 정도의 퀄리티일까? 라는 궁금증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닌데, 그런 측면에서 '파란만장'은 마치 '봐, 아이폰 4로 이런 장면도 찍을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의도된 장면들을 여럿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마케팅과 기술적 포인트에 맞춰 작품을 만들 박찬욱 감독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런 포인트를 포함하려고 의도한 부분은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 영화와 거의 차이점을 느낄 수 없는 앵글을 비롯해, 아웃 포커싱이라던가 스마트폰이라면 아마도 취약점이 아닐까 라고 생각되는 어두운 밤 장면, 더 나아가 수중 촬영에 이르기까지, 영화 촬영 카메라로서 아이폰 4가 갖는 기술적 가능성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적절히' 배치 했다는 점인데, 가끔 3D입체 영화의 경우 너무 기술을 보여주어야 겠다는 의도 때문에 본편과는 어긋날 정도의 연출이나 장면이 등장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는 점에서, '파란만장'은 이런 기술적 가능성의 노출과 작품의 분위기가 잘 균형을 이룬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한 발 더 나아가 얘기하자면, 스폰서인 올레KT와 박찬욱 감독의 팬들을 모두 적당히 만족시키는 작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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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이 재미있는 이유는 단편이라는 특성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편은 단순히 장편에 비해 분량이 짧은 것이 아니라, 단편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호흡과 분위기가 있어서 매력적이기 마련인데, 이를 모를리 없는 박찬욱/박찬경 감독은 단편만이 낼 수 있는 맛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낚시터와 밤이라는 공간과 시간의 설정, 그리고 굿을 벌이는 또 하나의 시퀀스는 기괴함과 모호함이 맞물려 관객들로 하여금 흥미를 자아내는 동시에 별다른 앞뒤 설명 없이도 어렵지 않게 단편 속 '순간'에 빠져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오광록과 이정현 두 배우의 연기를 들 수 있을텐데, 이정현이 표현한 캐릭터의 경우 얼핏보면 극중 캐릭터라기 보다는 (특히 노래할 때) 가수 이정현의 모습이 겹쳐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런 이질감이 '파란만장'만의 아우라를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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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두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 작품의 기괴함과 단편 맛의 맛을 내는데 가장 인상적인 재료는 어어부프로젝트의 음악이 아니었나 싶다. 평소에도 아방가르드하고 독창적인 음악과 퍼포먼스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어어부프로젝트의 음악은, '파란만장'이 더 단편스럽도록 그리고 더 기괴한 리듬을 갖도록 하는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박찬욱 감독의 전작 '복수는 나의 것'을 통해 함께 작업한 적이 있었던 어어부프로젝트는, '파란만장'을 통해 또 한번 다른 아티스트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리듬과 공기를 작품에 부여하고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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