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 것 많았던 추노의 마지막
(혹시 몰라 스포일러 표시합니다. 당연히 추노 마지막 회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추노'는 구조상 처음부터 누군가가 마지막에 죽을 수 밖에는 없는 이야기였다. 단 누가 어떻게 죽을 것인지 혹은 누가 살아남을지가 관심거리였는데, '추노'는 이렇듯 '누가 죽고 사느냐'에만 몰입하고 있던 시청자들에게, '왜 살아남고' '왜 죽어야 했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인상적인 엔딩을 선사했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누가 죽네마네'하며 손가락으로 그 경우의 수를 꼽아보았던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황철웅은 집으로 돌아가,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불편한 아내에게 기대어 눈물을 흘린다. 이는 극중 내내 터지지 않았던 유일한 황철웅의 감정의 폭발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너무 깊게 잘못 되어 버린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준 황철웅의 마지막 진솔한 눈물은, 대길과 송태하의 눈물에 버금가는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대길과 언년이, 송태하의 마지막은 사실 앞선 이들에 비하면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바이고 전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감정이 울컥하는건 어쩔 수 없었다(물론 여기에 가장 큰 공은 '대길'이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창조해 낸 장혁이라는 배우 덕택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세상을 바꾸려 했던 남자와 세상을 바꾸려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된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운명을 선택해야 했던 한 여자의 이야기. 그렇게 한 세상을 살 다간 이들 이야기의 마지막은 예정되었던 대길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사실 다시 생각해봐도 대길의 죽음이 인상 깊은 것은 장혁의 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업복이와 황철웅의 마지막 보다 메시지 측면에서는 대단할 것이 없는 엔딩이었으나, 그 마지막에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장혁의 공이었다. 그리고 애초 '추노꾼 = 현상금 사냥꾼' 이라는 설정으로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을 연상시켰던 '추노'는 엔딩 장면에서는 아예 완벽한 오마주로, 이런 논란 아닌 논란에 대해 깔끔한 마침표를 찍었다. <카우보이 비밥>의 말할 것도 없는 팬인 나로서는, 그 오마주에 소름이 돋을 수 밖에는 없었다.
어쨋든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았던 마지막을 (특히 업복이와 황철웅 때문이었다) 선사한 추노. (아, 그리고 초복이가 해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장면은 마치 <매트릭스 3>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라클이 사티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아, 이제 무슨 재미로 수요일, 목요일을 보낸다니.
이제 정녕 추노가 끝났다는 것이 말이여 당나귀여.
보너스.
광고 이후 나온 정말 '추노'의 마지막 장면.(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spedr.com/10b6i
p.s 1. 내가 정녕 죽은것인지 아닌지 어심을 읽으시게
2. 나는 전반적으로 맞아 죽지 않았나 싶은데
3. 형님들, 남아로 태어났으면 블루레이 한번은 출시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4. 이히히히히, 나 천지호야, 나 마지막회 안나왔다고 잊지마, 천지호야~~~~~~~
이제 이런 성대모사 연습한거 다 어디 써먹나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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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20%이상 아쉬워요. 2010.03.26 01:53
쩝, 좌의정이 그렇게 죽으면 섭하죠.... 극 마지막에 좌의정이 껄껄 웃으면서 끝나야 되는 데.... 아쉽네요....
그리고 오포교가 백정이 되면 더 심한 녀석이 찾아온다... 이래도 쥐어뜯기고 저래도 쥐어뜯기는 세상이라 할 지언정 세상은 커가면서 점점 왜 그리 명암을 그렇게 또렷하게 그려야 하는 것인지 쓰리네요.
결국 여성들이 살아남았다는 건 정녕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자 함일까요? 철웅의 부인의 입장에서 볼 때 언년(혜원)과 설화는 진정 말해줘야 할 부분이라고 느꼈는데 ㅎㅎ. 짝귀가 어찌될지 나오지 않았고, 대길과 태하는 죽는다...
대의를 위한 그들 노비의 움직임이 소원성취된 것이 갑오경장에 와서라고 하지만 결국 보복이 보복을 부른다는 논리가 당세대에서 끝내고 싶다는 표현(업복이 그분과 좌의정을 죽인다. 직접적 원한 관계의 해결)을 한 것 참~ 좋지만 실제 우리가 잘 아는 모 이야기에서도 그렇듯이 인생이란 사람의 숫자만큼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생각하면 작가의식의 개입이 강한 마무리를 보여준 추노였습니다. 역시 웃으라고 보는 드라마 정도라고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요소가 존재하는 거죠. 쓰리네요. 사실 그게 의도에서 끝나고 다른 사건에 의해 제거되거나 해야 실질 논리에 오히려 가까울 수 있죠.... -
stophead 2010.03.26 20:18
1. 저도 대길이나 송태하의 엔딩보다는 업복이와 황철웅의 엔딩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에게 제가 여태껏 보아온 한국 드라마 중에 최고의 작품이 되어버린 추노는 영원히 기억 속에 남을 것 같네요..
2. 황철웅 역의 이종혁씨나 업복이 역의 공형진씨는 워낙에 연기력이 출중한 것으로 유명한 배우들이지만, 장혁씨는 정말 이번 추노를 계기로 배우로써 새로운 레벨로 발돋움한 것 같습니다. 아마 엄청나게 쏟아부은 에너지 탓에 당분간 이대길 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봅니다.
3. 여전히 추노에서 옥의 티 2가지를 뽑자면 첫째는 가슴 모자이크 사건(사실 지나치게 남성적인 드라마이고, 워낙에 남성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독차지한 탓에 이런 여성 네티즌들에게 견제(?)아닌 견제를 받은 것은 아닐지 의심해봅니다 ㅋㅋ)..
그리고 둘째는 정황상 죽은 게 분명해 보였던 왕손이와 최장군이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이 것도 왠지 네티즌을 의식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이들이 살아 돌아와서 개그 캐릭터로 전락하는 터에 황철웅에 대한 대길이의 분노는 온데 간데 없어졌거든요..이 점은 아마 끝까지 아쉬울 것 같습니다.. -
애기동자 2010.03.27 03:27
저도 왕손이와 최장군 부분이 좀 아쉽기는 했습니다. 왕손이와 최장군은 죽는걸로 마무리가
될줄 알았는데 캐릭터의 '인기'때문에 시청자를 위한 배려 차원에서 살려둔것 같습니다.
실제론 죽어야 할 인물이기 때문에 극의 흐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병풍 캐릭역할로
마무리가 된것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최장군은 그렇다 쳐도 왕손이는 황철웅이 다시 잡자고 했을것 같은데...)
월악산에서 송태하+언년이+짝귀 일행의 행보를 알았기 때문에 대길이가 어디어디로 가 있어라
했더라도.. 만약 실제 '살아있는' 캐릭터 였다면 추노패 의리상.. (그간의 행동으로 보면)당연히
대길이 뒤를 받쳐주러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쩌면 그런 기대를 하지 않게끔 최장군도 심한
부상에서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왕손이도 계속 회복시키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죠...
(한데.. 게속 싸우고 고문당하던 대길이, 송태하 회복력은....? ^^)
황철웅과의 대결 후 관군들 다시 몰려올때 은근히 등장을 잠시 기대 했습니다만..
막상 달려와주면 추노패 3인방이 떼죽음 당할수도 있겠다 싶어 안오길 잘했단 생각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