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 _ H-Logic
자유로워진 효리의 새 앨범
이효리의 새 앨범이 최근 발매되었다. 핑클 1집 '블루레인' 시절부터 단 한번도 한 눈 팔지 않고 좋아했던 그녀의 신보라 이번에도 역시 일단 소장하고 보자는 작정이었다. 이렇게 음악에 관계 없이 음반을 구매하는 국내 뮤지션은 몇 있는데, 서태지의 경우가 음악과 소장욕구를 모두 만족시켜 주는 경우라면 이효리의 경우는 전자의 경우의 기복이 좀 있는 경우였다. 사실 이번 앨범은 지난 앨범에 대한 평범한 평가 때문에 기대치를 많이 낮춘 편이었는데, 일다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만족' 스러운 앨범이다. 영화나 음반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종종 하는 말이지만, 평가라는 것은 어차피 주관적일 수 밖에 없고 그 대상에 따라 기대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상대 평가가 될 수 없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그렇다면 뮤지션 이효리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그녀의 솔로 데뷔곡 '10 Minutes'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이 곡이 타이틀이 아니었더라도) 그녀에게 음악적인 기대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냥 단순한 핑클 시절부터 팬의 입장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와 적당한 곡들로 인기를 얻는 정도였어도 만족했을 것이다. 그런데 '10 Minutes'도 그렇고 종종 드러나는 그녀의 음악적 욕심과 국내 가요계에서 '이효리'라는 브랜드가 갖는 기회와 영향력을 살펴보았을 때, 그녀에게 단순히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만을 기대하는 것은 무언가 성에 차지 않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효리의 앨범들을 살펴보았을 때 그녀는 분명 개인적인 욕심과 대중적인 요구 사이에서 매우 갈팡질팡 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본인이 좋아하는 힙합이나 흑인음악에 대한 비중을 높이고는 싶지만,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이런 요소가 가미된 '가요'였고 특히나 발라드라는 장르에 대한 선호도 때문에 어떤 앨범이든 전체적인 앨범 컨셉과는 무관하더라도 발라드 곡을 넣을 수 밖에는 없었다. 물론 이렇게 넣은 발라드 곡이 대 히트를 쳐서 아예 이효리라는 뮤지션의 컨셉 자체가 바뀌어버리는 결과가 생겨버릴 수도 있지만, 어쨋든 효리의 발라드 곡들은 전부 성공적인 결과는 보여주지 못했었다. 그렇다하더라도 앞선 다른 외부적 요인들 때문에 이런 것들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이번 새 앨범 'H-Logic'에서 이효리는 과감히 하나의 컨셉으로 된 앨범을 만들어냈다. 따지고보면 이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영향력 있는 팝가수는 국내에서 이효리 만한 이가 없다고 생각된다(너무 당연한 거지만 인기에 집착하지 않고 음악성을 중요시하는 대부분의 국내 뮤지션들은 이런 것들에서 이미 자유로운 상태다).
일단 앨범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프로듀서진에 김도현의 이름이 빠진 것이 이채롭다(오로지 Special Thank's에만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효리의 솔로 대표곡인 '10 Minutes'을 비롯해, 솔로 이효리와 대부분을 함께 했던 프로듀서 김도현의 곡이 하나도 없음은 물론 프로듀싱을 한 곡도 하나도 없다는 것부터가 무언가 작정한 듯 보인다. 물론 지금까지 김도현의 곡 외에도 여러 프로듀서의 곡들을 타이틀로 내세우기도 하는 등 여러 변화를 주긴 했었지만, 어쨋든 매번 핵심에 있던 그와의 작업을 제외한 것은 분명 '과감함'이 엿보인다(무언가 결심한 듯한 부분은 영어 이름 표기 - HY0RI - 에서도 눈치 챌 수 있다). 그렇다면 여러 프로듀서들의 곡을 골고루 받은 것일까 라고 생각했는데, 대부분의 곡을 'BAHNUS'라는 프로듀서의 곡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번 앨범이 전체적으로 하나의 컨셉으로 이뤄져 있는 또 다른 이유다.
그리고 가사 역시 이효리가 욕심을 버림으로서 더 나아진 결과를 나았다. 사실 국내 가수들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오르면 새 앨범에 자작곡을 수록하곤 하는데, 그저 '저, 이제 제가 직접 만든 곡과 가사도 담았습니다'라는 한 마디 이상은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은 편임을 미뤄봤을 때, 오히려 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이효리의 이러한 선택은 짚고 넘어가야겠다(재밌는건 가장 효리가 썼을 법한 'Scandal'의 가사도 다른 이가 썼다. 물론 많은 이야기를 나눴겠지만, 어쨋든 작사가의 이름은 다른 이가 올렸다).
그런데 이런 똑같은 잣대는 누구에게나 불리함으로 작용할 수 밖에는 없다. 여기서 또 예를 들면 그 각각과 싸워야 할지도 몰라 다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그 어떤 뮤지션도 직간접적으로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는 없는데, 그것을 어떻게 자신만의 것으로 표현해 내는가가 각각의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이런 점들은 사실 '이효리'라서 당할 수 밖에는 없는 집중 포화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몇몇 제법 유명한 가수들은 앨범이 거의 표절이 확실시 되는 경우도 많았으나 전혀 이슈가 되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대중이 표절이던 아니던 별로 관심이 없고, 표절이라 하더라도 이슈가 될 확률이 적기 때문에 언론도 여기에 별로 달려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효리의 경우는 다르다. 작은 건수라도 터트리면 이슈가 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악세서리 하나까지 다 누구 거네를 비교하려 들고, 더 문제는 정작 레이디 가가가 누구인지도 몰랐던 사람들 마저, '레이디 가가 따라했다며'라고 확인 절차 없이 그냥 '또 그랬구만'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진짜 노래 가사처럼 '기가 막힌 스캔들'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스타일링에서는 조금 부족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앨범은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그 만족에 대부분은 노래의 취향을 떠나서 하나의 스타일로 끝까지 밀고간 끈기 때문이었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솔로 이효리 최악의 곡은 누가 뭐래도 '잔소리'다. 언젠가 가요의 사이클이 되어버린, 그러니까 댄스 다음 발라드 혹은 발라드 뒤 강한 댄스 아니면 요정 다음 여전사로 이어지는 컨셉 말이다. '잔소리'는 그런 풍토에서 나온 최악의 작품이었다. 이효리에게 그런 어설픈 소몰이 발라드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고, 그 가사는 국내 가요사를 통틀어 최악의 가사 후보로 꼽힐 정도다 (그 싱글 앨범을 사고 얼마나 눈물 흘렸던가 ㅠ). 그런데 이번 H-Logic에는 이런 짜맞추기 발라드가 없다. 전체적으로 컨셉에서 어긋나는 곡이 하나도 없다. 이건 사실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 가요는 '앨범'이 아닌 '곡'에 모든 촛점이 맞춰지다보니 매번 안지켜지는 부분이라 할 수 있을텐데, 효리의 새 앨범은 이런 풍토에서 자유로워지는 앨범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이효리가 가야 할 길을 이런 스타일이 아니었나 싶다. 레이디 가가 논하며 스타일의 표절을 논하는 이들 조차, '어랏, 이거 좀 괜찮은데' 혹은 '이건 좀 의왼데' 할 정도로 기존 가요들 보다는 훨씬 더 컨셉에 충실한 곡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음 곡 'Feel The Same' 같은 경우가 슬로우 템포의 곡, 즉 발라드가 오는 구성에 포함된 곡이라 할 수 있는데, 들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이건 발라드라기 보다는 그냥 '슬로우 템포'다. 이건 아무래도 프로듀서의 역량이라 해야할텐데, 말도 안되는 발라드 대신 이런 슬로우 템포의 퀄리티 있는 곡을 삽입한 것은 이번 앨범의 쾌거다. 곡이 좋고 덜 좋고를 떠나서 말이다.
리쌍의 '게리'와 함께한 '그네'는 사실 살짝 위험한 곡이다. 뭐랄까 컨셉에서도 살짝 벗어나고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을 대비해 준비한 느낌도 있는데 (더군다나 연막으로 먼저 공개하기도 했고), 여튼 살짝 위험하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는 'Scandal'이다. 곡도 괜찮지만 좋아하는 건 역시 그 가사 때문이다. 이효리가 자신을 둘러 싼 스캔들에 대해 시원스럽게 이야기하는 걸 들을 수 있는데, 곡 후반부에 스킷으로 들어간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 부분은 내가 다 후련하더라. 듣는 동안 나도 모르게 '씨익'하고 웃을 수 있었던 통쾌한 곡이었다. 그래, 이효리는 이래도 된다. 더 자유롭게 할말 하는 편이 좋다! 이번 앨범의 의외의 곡 중 하나는 대성과 함께한 'How Did We Get'이었다. 음악을 듣기전 대성이 피처링했다는 것만 보았을 때는, '야, 이거 패밀리 스타일로 웃고 즐기는 곡 아니야?' 했었는데 웬걸. 괜찮은 듀엣곡이 나왔다. 사실 많은 가수들이 앞선 분위기로 이런 관계를 이용하여 피처링 곡을 수록하곤 하는데, 이번에도 잘했다. 오히려 대성이 보컬이 빛나는 순간이다.
써놓고 보니 칭찬만 한 것 같지만 (워낙에 악플에 시달리는 그녀라 나라도 칭찬만 해야겠다는 일종의 '쉴드' 글이기도 하다), 칭찬 받을 만한 점이 분명한 앨범이었다. 이효리는 자신의 위치 때문에 그 동안 자유스럽지 못한 부분이 분명 있었는데, 이번 앨범 역시 100%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씩 자신에게 지워진 짐에서 해방되어 스스로 가고 싶은 길을 가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대중가수는 (특히 이효리 같은 위치에 있다면) 대중들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반대로 너무 의식하게 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앨범 'H-Logic'은 그녀의 자유로움과 당당함을 엿볼 수 있어서, 팬으로서 만족스런 앨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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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이때까지 쌓아온 '안정된 위치'에 안주하기보다
조금더 과감히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지향하는 모험을 선택했던게 바람직했던거 같아요!
전 앨범처럼 깜찍하고 귀엽고 섹시한 걸스 힙합이 아닌,
좀더 강하고, 터프하고, 거친 힙합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특색을 잘 살려서,
그녀만의 색깔로 덧칠해 낸 느낌이에요!
오랜만에 상업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잡을 기세로 나온 앨범이 아닌가 합니다!
이 리뷰 보니 더 사고싶어지는데요?[웃음]
잘봤습니다 ! :D
ps. 레이디가가와 그녀를 비교하는건... 글쎄요, 조금 아닌거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누가 더 우월하다, 누가더 잘났다라고 말하는건 아니지만,
음악쪽으로 따져봤을 때 레이디 가가는 '싱어송라이터'이고,
이효리는 아직까진 '프로듀싱'에 의존하는게 강하단 생각도 들었어요...
아, 물론 패션면에서는 그녀는 이미 레이디가가와 맞먹는, 혹은 그 이상의 트렌드리더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도 생각해요!
그리고 싱어송 라이터/셀프 프로듀서로서의 그 가능성 또한 이 앨범에서 조금 엿볼수 있지 않았나 해요. -
ttt 2010.04.15 22:57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그대로 써주셨네요.
앨범 전체를 들으면서 너무나 흐뭇했고, 제가 다 벅찼던 것 같아요.
핑클 멤버였을 때는 별 관심이 없었고, 솔로 데뷔 후에는 음악보다는 이미지로 좋아한 편이었는데,
이제는 진짜 음악으로 좋아하는 가수가 되었습니다.
대중들은 이전보다 조금 시큰둥할지 몰라도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해준다면 장땡이죠!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보컬이나 춤이 좀더 다듬어졌으면 해요.
자기 색깔이나 카리스마는 이미 넘치고도 남을 정도니..
조만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뮤지션/퍼포머로 자리잡을 듯 합니다. -
헤이헤이 2010.05.05 14:50
이번 앨범 저도 질러야 겠어요.
질러서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네요 ㅋㅋ
앨범 퀄리티도 훨씬 높아졌고 전체적 분위기를 보면서 진짜 신경썻구나라는 느낌이 확 들더군요.
리뷰 정말 잘 쓰셨어요. 저도 스캔들의 이효리가 삐~~할때 ㅋㅋ 씨익했죠.
효리누나.. 이제는 대중가수만이 아닌 뮤지션다운 모습이 보여요 이제부터 이효리 팬될래요 ㅋㅋㅋㅋ
이효리다운 이효리가 되는 느낌? ㅋ 횰누나가 이런글 봤음 조켔다.
(가가와의 비교는 어쩔수 없는 현실인가..... 난 둘다 조은데...ㅎ) -